[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재촌탈농은 죽 이어지고

  • 입력 2018.03.23 09:58
  • 수정 2018.03.23 10:29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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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영농철이 돌아오니 괜스레 마음이 바빠집니다. 감자부터 심고 동부콩 넣을 준비며, 여름농사를 지을 땅에 거름을 넣고 갈아야 하는데 봄비가 꽤나 잦습니다. 봄비더러 일비라 하더니만, 아직은 아닙니다. 이런 날은 봄비맞이 칼국수 번개모임하기 딱 좋지요.

구점숙(경남 남해)

비교적 가까운 옆 동네의 후배들을 찾습니다. 칼국수 먹게 00도 부르라니까 안 된답니다. 병원에 취직했답니다. 어머나, 이를 어째? 간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나는 농림부 장관도 아니고 도청 농정국장도 아닌데 이 젊은 여성농민의 탈농에 대해, 왜 이다지도 안타깝고 지역농업과 한국농업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지 모르겠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라 치면, 거름의 발효정도를 알아보려고 맛을 본다는 남편과 그렇게 죽이 맞던 녀석이, 지난 여름 그 뙤약볕에서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깔깔거리며 콩단을 같이 묶던 그 열정이 이대로 묻히게 된다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지역에서 그 중 대농입니다. 농사의 규모나 상품성도 월등한 농가에 속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하면 농민도 살만하다고 말하며 소득을 자랑해마지 않았습니다. 그 신념의 어디에 틈이 있었을까요? 현실과 신념사이의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얼마나 컸을까요? 남 보기에는 번듯한 농가가, 기실 그 내막이 꽤나 복잡했던 것이지요. 번듯해 보이는 우리 중 상당수가 그런 것처럼요.

아마 60세를 넘긴 농가였다면 그 규모의 생산과 매출이면 별다른 생각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미 지출은 순수한 농업생산비 중심일 것이고, 다른 것은 굳이 줄이려 한다면 줄일 수 있는 부분이겠지만, 매년 늘어나는 교육비와 생산기반 마련을 위한 농가부채도 꽤나 무거웠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장고 끝에 탈농을 결심한 것이겠지요.

직장생활도 힘들겠지만 필경 뙤약볕에서의 노동보다는 쉬울 것입니다. 쪼그리고 앉아 기는 작업이며 10키로가 넘는 농작물을 옮기는 작업도 없을 것이요, 눈·비·바람·가뭄·서리 때문에 목 메달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매달 주어지는 소득은 농업소득보다 안정적이겠지요.

매월 소득이 있는 여성이 그렇지 못한 여성농민보다 가정 내에서 지위가 높다는 것은 뻔한 사실이니까요. 이러니 젊은 여성들은 웬만하면 농사짓기를 피하고 싶을 수밖에요. 요양보호사, 카운터 캐셔, 주방보조 등등의 자리가 끝없이 유혹을 합니다.

그때 생명을 키우는 농사야말로 으뜸이고, 농업이 세상의 근간이 된다는 신념 외에 실질적인 측면, 즉 소득이나 노동력 차원, 여성농민의 사회적 지위 때문에 이농을 고민할 필요가 없어야 하는 것이 우리가 가야할 농업과 농촌의 방향이 아니겠습니까?

누가 그런 말을 해주고 어떤 장치가 우리를 농업으로 끌어당기고 있나요? 농민단체 행사장의 축사에서나 들을 수 있는 말들 이외에 말이지요. 여성농민의 역할과 가치와 지위의 불균형이 정책으로 보완돼야 할 요소임을 알면서도 어디에서도 각론으로 못 들어가고 있습니다. 무엇을 손대야 할 지 모르니까요.

셋이 같이 칼국수를 못 먹게 돼서일까요? 왜 이렇게 화가 나고 속상한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여성농민 바우처카드 들고 놀러가자고 한 약속을 지키지도 못 했는데 말입니다. 어느 길에, 지금 당신이 가는 길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쓰여 있던가요? 지금 젊은 여성이 농업을 떠나는 것은 한국에서 가장 슬픈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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