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협궤열차⑥ 추억 속으로 사라지다

  • 입력 2018.03.23 09:56
  • 수정 2018.03.23 09:58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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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에 개통한 이래 70년대 말까지 수원과 인천을 잇는 교통수단으로서 제 몫을 톡톡히 해냈던 협궤열차는, 8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오히려 지역발전의 장애물로 찬밥 취급을 당하게 된다. 수원-인천 간 산업도로가 뚫리고 수도권 전철이 생겨나면서, 협궤열차는 더 이상 지역주민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상락 소설가

게다가 인천시에서 남동공단을 조성하는 데에도, 협궤철로가 가장 큰 걸림돌로 등장했다. 드디어 1979년, 송도에서 남인천에 이르는 구간이 폐쇄되었고, 1992년에는 소래에서 송도까지의 협궤철로에서마저 기적소리가 사라졌다.

협궤열차의 기관차도 세월 따라 변화를 보였는데, 70년대 중반부터는 석탄이나 벙커씨유로 보일러를 달궈 동력을 얻던 증기기관차가 디젤 기관차로 대체되었다. 디젤 기관차는 기관실이 객실과 분리된 게 아니라, 흡사 버스처럼 객실의 맨 앞쪽에서 기관사가 열차를 운전할 수 있도록 돼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디젤 기관차는 증기기관차에 비해 차체가 대단히 가볍다는 점이었다.

수인선 협궤열차의 마지막 기관사였던 박수광씨로부터, 차체가 너무 가벼워서 생긴 에피소드 한 토막을 들어보자.

한 번은 은퇴를 앞둔 선배 기관사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문병을 갔다는데, 그 노 기관사는 침상을 내리치면서 하염없이 섧게 울고 있더란다. 두 사람의 대화는 이러하였다.

“선배님, 의사한테 물어보니 골반 뼈에 금이 좀 가기는 했어도 곧 아물 거라고 하니까 이제 그만 울음 그치고 기운 차리세요.”

“이건 자존심 문제야. 협궤열차 기관사로서의 자존심이 휴지조각이 돼버렸다니까.”

“뭘 그렇게 자학을 하십니까. 선배님이야말로 우리 수인선 협궤열차의 산 증인이십니다.”

“무사고 기록이 깨져서가 아니야. 이건 일생일대의 모욕적인 사건이라고!”

“건널목 사고였다면서요. 충돌했던 트럭 운전사도 다치지 않았고, 우리 열차 승객들 중에서도 큰 부상자가 없었다는데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십니까. 선배님만 쾌차하시면 되지요.”

“이 사람아, 내 몸 조금 다친 것 때문에 이러는 것 같나? 그때 기차를 몰고 가는데, 건널목에 트럭 하나가 비키지 못하고 어슬렁거리고 있더란 말이야. 그래서 브레이크를 잡았지. 우리 열차가 끼익하고 미끄러지다가 그 트럭하고 꽝, 부딪친 거야. 그런데, 트럭은 멀쩡하게 제 자리에 서 있는데, 우리 열차가 그만 자빠져버린 거라고.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트럭은 가만있는데 기차가 자빠졌다고 깔깔대며 웃는 거야. 자존심이 상해서 콱, 죽어버리고 싶더라니까.”

1995년 12월 31일. 수원역 협궤열차 대합실에는 유례없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수인선 협궤열차 노선 중 끝까지 남아 있던, 수원에서 안산의 한양대역 구간을 마지막으로 운행하는 날이었다.

꼬마열차를 마지막으로 타보기 위해서, 예전에 협궤열차를 이용해 보따리 장사를 했던 사람들이며, 그 열차로 통학을 했던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몰려들어서 열차는 금세 초만원을 이뤘다. 그 마지막 열차를 몰고 갈 기관사는, 20년 전 기관사조사로 협궤열차에 탑승한 이래 그 꼬마 열차와 온갖 애환을 함께 해온 박수광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기관사가 차에 올라타야 앞쪽으로 가서 운전을 할 텐데, 발 디딜 틈이 없었던 것이다.

그때, 군자역에서 남인천역을 왕래하며 쌀장사를 했던 관수엄마가 소리쳤다.

“우리 기관사 아저씨를 눕혀서 받쳐 들고 공중으로 전달합시다!”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기관사 박수광은 승객들의 손에 떠받쳐져서 객실 천장 밑으로 하여, 앞자리로 옮겨졌다. 협궤열차 기관사로 일해 온 25년의 노고에 대한, 마지막 승객들의 감격적인 헹가래 답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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