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성장통

  • 입력 2018.03.16 11:26
  • 수정 2018.03.16 11:29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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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전이나 흥부 놀부 얘기를 너무 많이 듣고 자랐던 것일까요? 착해야 한다, 참아야지, 사람이 그러면 쓰나? 그러게요. 착해야지요. 어려운 사람은 도와주고, 약자에게는 양보하고, 웬만하면 따지기보다 감싸주고, 남의 허물은 덮어주고 참고참고 참다가 곪아 터지는 요즘 세상입니다.

구점숙(경남 남해)

끝없는 성추행 고발의 행진. 터질 것이 터지는 것이라 여기며 차라리 변화의 시점으로 잡자고 하면서도, 특정인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 감춰져 있던 우리의 이면을 보자니 착잡해지기도 합니다. 사람처럼 복잡하고 다면적인 존재가 또 있을까 싶어요.

내가 당사자 아니라고 비난만 하고 있을 수도 없고, 내가 피해자 아니라고 방관해서도 안 될 것이고, 나는 절대 그럴 일 없다고 부정해서는 '사람'을 제대로 이해한다고 볼 수도 없으니 이참에 집단의 지혜를 모아 보는 것이 어떨까요? 그렇잖아도 여기저기서 문제를 던지고 있으니까요. 권력을 가진 자들의 위력에 의한 성추행 말입니다.

그런데 그 권력이라는 것이 결코 고관대작들만을 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부부나 가족사이는 물론이거니와, 마을 내에서도, 지역사회에도 힘의 관계가 있어 다양한 형태의 갑질로 나타납니다.

절대주의 시대, 권위주의 시대에는 약자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가 않잖아요. 그나마 세상이 조금 바뀐 탓에 약자들도 비로소 용기를 내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그러니 여기에 힘을 더 보태보면 어떨까요?

지금 분위기로는 피해를 폭로한 사람들도 여전히 제2, 제3의 피해를 보는 구조입니다. 그 여자가 실은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이나 주변관계도 털리고 있다하니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다지요.

한 때 성평등 교육이 직장까지 확장되다가 멈춰 섰습니다. 이참에 5인 사업장까지는 물론이고 농촌에서도 각 마을까지 성평등 교육을 실시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서구의 복지국가에서도 성평등이 복지문제의 시작이라 한다지요? 국민소득이 올라가고 경제력이 세계 몇 위라고 자랑하더라도 그 내실은 곪아서 언제 터질지 몰라 긴장하고 있다면 어디 선진국을 꿈꾸겠습니까?

요양보호사들이 독거노인들께 심심찮게 추행을 당한다는 이야기, 식당종업원들이 고객들에게 당하는 추행 등이 내 이웃들의 실제 모습입니다. 그렇더라도 이웃의 눈이 무서운 이곳 농촌에서 ‘미투’가 일어날 리는 더욱 만무하잖아요. 그들이 말하지 않고 참으며 모욕감을 견디고 있어서 모를 따름이지요.

그렇다고 눈감고 그들만의 이야기로 내버려 둘 수는 없지요. 합의된 연정이 아닌 폭력으로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 범죄가 되는 세상입니다. 당하는 사람은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니까요. 안타까운 것은 무엇이 범죄행위가 되고 가해가 되는 지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 농촌의 현실이지요.

농촌지역 내 모든 회의에 성평등 교육을 실시하는 것을 제도화하는 지혜로 쓰라린 가슴을 위로했으면 합니다. 그러고도 한참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온전히 변하기까지는요. 그래도 이참에 뭐라도 하면서 상처를 돌아보면 온 사회가 성장하는 계기가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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