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걷다가 만난 인연

  • 입력 2018.03.11 12:16
  • 수정 2018.03.11 12:21
  • 기자명 한영미(강원 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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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미(강원 횡성)

전국적으로 걷기 좋은 길이 많이 생겼다. 남들이 가는 곳은 가봐야 한단 생각으로 유명한 길을 찾아 걷기여행을 다니기도 했는데 정작 우리 지역을 걸어 다니진 못했다. 가까운 거리도 차로 이동하고 ‘빨리빨리’ 일들을 처리하며 산다.

얼마 전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단이 원주·횡성 구간을 지나면서 횡성에서도 몇 분이 참석을 했다. 참여한 분 중 국선도 사범님이 있었는데 탈핵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대로로 걸으면서 느낀 불편함을 토로하면서, 운동도 좋고 탈핵홍보도 좋지만 내 몸을 해치면서 하는 운동은 독이 된다면서 건강한 걷기를 해보자고 제안한 바람에, 몇 사람이 횡성걷기모임을 만들었다. 횡성에도 걷기 좋은 길이 많다. 처음으로 선택해서 걸은 길이 횡성호수길이다. 호수길을 걸어보라고 횡성에 오는 사람들에게 권하며 걸어본 것처럼 자랑도 많이 했지만 정작 난 처음 걷는 길이다. 알음알음 모여 여덟 명이 함께 걸었는데 다섯 명이 처음 걷는 길이란다.

전날 내린 비로 언 땅이 녹아 진흙길을 걸어야했다. 흙이 덕지덕지 붙은 신발을 들여다보며 조금이라도 흙이 덜 묻는 곳을 골라 발걸음을 내딛다보니 어린 시절 흙길을 걸어 학교 다니던 시절이 떠올랐다. 횡성호수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흙길이다. 날씨도 좋고 산이랑 어우러져 호숫가는 절로 감탄사를 뱉어낼 정도로 아름다웠다.

걷는 사이사이 호숫가에서 불어오는지 골짜기에서 불어오는지 모를 따뜻한 기운이 몸을 휘감아 돌자 “이 바람 느꼈나요? 와 봄이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재잘대며 사진 찍어가며 행복한 걷기를 하던 중 일행 한 분의 걷는 모습이 처음과는 다르게 한쪽 다리가 뻐쩡다리가 되면서 점점 틀어지는 모습을 보게 됐다. 아침에 허리를 삐끗했는데 ‘걸으면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왔다는데 횡성호를 반쯤 돌아올 적부터 쉬다가 걷기를 반복하면서 “어쩌지, 어쩌지” 하면서 부축 받으며 걷던 중 더 이상 못 걸을 정도가 됐다. 허리에서 내려온 통증이 다리까지 뻗치면서 일행들이 다리를 주물렀지만 그 고통이 심해 결국 오솔길에서 신문지를 깔고 눕는 신세가 됐다.

119를 부르자는 의견에도 좀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부르지 말라고 하니, 허리가 아파서 수술까지 했었기에 그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는 나로서는 뭐라도 해야 했지만 마음만 동동거릴 뿐이었다. 관광객들은 오가면서 “왜 그러냐?” 질문도 하고 쥐 난 다리 푸는 방법도 알려주기도 하고 관심 갖고 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무슨 일이냐?”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서로 전하는 와중에 단체관광을 온 여성분들 중 한 분이 팔을 걷어 부치고 지압을 해줬다.

아픈 건 허리인데 뭉친 종아리를 풀어내고 넓적다리 엉치뼈를 차례로 지압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처음엔 만지는 대로 자지러지는 소리로 고통을 호소하더니 점차로 끙끙 소리를 내고 일어나 앉을 수 있을 정도로 해놓고, 서둘러 일행들을 놓치면 안 된다고 길을 재촉하며 갔다. 덕분에 가까스로 부축해 큰 길까지 내려온 다음 집까지 모셔다 드리면서 오늘 만난 인연을 생각했다. 몇 년 전 배운 지압이라는데 자기 자신이 처한 조건은 잠시 뒤로 하고 불편한 사람을 살리는 데 유용하게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배워서 남 주자’의 의미를 다시금 떠올린다. 단체로 관광을 왔으니 자신만 떨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그냥 스쳐 지나갔을 수도 있었는데 감사하고 고맙다.

자연과 어우러진 임도와 오솔길로 이어지는 횡성호숫가 아름다운 길에서 만난 인연은 언제 또다시 연결될지 모른다. 다만 산을 좋아하고 걷기를 좋아하는 분인 듯한데 다음 달 걷기로 한 횡성명품 소나무길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 뿐이다. 일행 분은 그날 허리 삐끗한 데 좋다는 멧돼지 쓸개즙 술을 챙겨 먹고 주무셨단다. 아무리 아파도 병원가기는 싫은 아줌마들의 세상살이는 서로 닮는가보다. 멧돼지 쓸개즙 술 먹으면 허리 아픈 것이 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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