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관련 기관, 농민 신뢰부터 얻어야

  • 입력 2018.03.09 11:39
  • 수정 2018.03.09 13:56
  • 기자명 김순재 전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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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지역에서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농민들은 농업 관련 조직(기관)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들에게 보탬이 되라고 국가가 만들어 놓은 조직은 여럿 있다. 그 조직들 중 일상에서 농민들과 자주 부대끼며 사업을 하는 곳은 한국농어촌공사, 농업기술센터, 농협 같은 조직이다.

이곳들은 농업·농민들에게 꼭 필요한 조직이지만 농민들의 인식은 좀 부정적인 측면이 많아 보인다. 농어촌공사는 농업의 여러 기반 시설들을 유지관리하면서 농민들을 지원하고, 농업기술센터는 행정부의 최일선에서 농업지원부분을 집행하고 있으며 농협은 농업 자금 운용을 원활히 해가며 판매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왜 농민들에게 꼭 필요한 사업을 하는 조직에 대해서 농민들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은 걸까?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농민을 지원하기 위해 업무를 대행하도록 설립한 조직들에 대해서 농민들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해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농업의 전망이 불투명하고, 농민의 삶은 위태로워 보이는데 농업 관련 기관의 종사자들은 상대적으로 안정돼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싹트는 자연스러운 불만이라고 본다.

기본적으로 농업의 불안정성은 우리나라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1차적인 해결주체는 명백히 농민 스스로여야 한다. 국가의 시책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농민들에게 있음에도 많은 농민들은 남 탓을 한다.

농민들의 삶은 불안하고 불확실해 보이는데 상대적으로 농업 관련 종사자들은 안정돼 보이니 자연스럽게 이질감을 느끼며 불평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질감은 안정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서 풀어가야 하는데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럴 의지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러니 생산자인 농민과 그 업무의 중추적인 지원조직 간에 신뢰하는 선순환이 아닌 불신의 악순환들이 반복됨으로써 농업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것 아닌가.

농업경제 전쟁에서 안정적인 위치에 있는 전투원들이 야전에 있는 전투원들을 선제적으로 보호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 자신들의 안위를 지나치게 중심에 두고 그 역할을 소홀히 하니 농민들이 불신하고 있는 것이다.

농업 관련 조직들의 설립 이유와 목적이 분명히 명시돼 있음에도 조직 구성원들이 직장인으로서의 삶에만 충실한 형국이 되니 조직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농민들은 관련 조직들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불투명한 농업 전망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농업 관련 기관 직원들은 농민들의 신뢰를 쌓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한 지역농협의 농자재센터에서 농민들이 농자재를 구입하며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민은 위태로운데…

조직의 설립 목적이 명백히 법률로 정해져 있음에도 직장인이 돼버린 농업 관련 기관 종사자들이 능동성을 포기하고 수동적으로 변하면 해당 조직은 창조성을 상실하고 실적과 관성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얼마 전 어느 모임에서 듣기로 농업 관련 조직의 일부 보직자에 대해 ‘업무는 서류에만 명시돼 있으며 실질적으로는 거의 없고, 업무에 비해서 비용은 매우 높은 편이고, 정년이 다가오니 몸 사리기에 소홀하지 않으며, 노후도 상당히 보장돼 있지만 갖지 못한 것은 유일하게 책임감’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농업 전망이 불투명하고, 농민은 위태로워 보이는데 안정적인 위치에 있는 조직 구성원들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지 않는다면 충실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열심히 일하고자 노력하는 구성원들도 많겠지만 그 조직 내에서 오히려 조직 본래의 역할을 방해하는 이들은 가장 안정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단순히 농업 관련 조직에 있는 사람들만의 문제는 아니고 우리 사회 곳곳에 산재해 있는 문제이다. 안정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몸을 사리며 자기중심적으로 변하면 현장에서 생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매우 힘들어진다.

자신의 삶에 대한 보호장치가 일정정도 마련된 사람들이 조금만 적극적으로 나서주면 농민들의 삶이 훨씬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현실에서는 그러하지 않으니 매우 안타까울 때가 많다.

장기근속 직원들, 농협 사업에 적극 나서야

농협은 조합장을 필두로 한 직원들로 일상의 업무를 수행하는 집행부가 꾸려져 있다. 농협 내에서 가장 확실한 비정규 계약직인 조합장의 경우, 근무기간의 연장을 위해서라도 조합원들을 위해 적극성을 띄고 일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일부 그러하지 않은 곳도 있지만 대다수 조합장들은 기본적으로 열심히 하겠다고 농민들에게 약속을 하고 조합장이 됐고 그 약속에 대한 실천을 일상적으로 농민들에게 요구받고 있으니 농민들의 여러 어려움을 어떤 형태로라도 함께 하기 위한 노력들을 한다.

경험으로 볼 때, 농협 근무 15년차 내외의 직원들은 상당수가 제 몫을 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것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하지만 20년차 내외에서부터 30년차에 이르는 상당수의 직원들은 업무를 수행할 상당한 능력을 가졌음에도 오히려 조직의 사업을 위축시키는 경우가 허다했다.

실제로 이 정도 위치에 있는 분들의 상당수가 적극성을 띄거나 적극성을 띄는 직원들이 일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채 전체 사업을 위축시켜 궁극적으로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생긴다.

농협은 단 3%의 문제 발생으로 전체 사업을 망치는 경우도 생긴다. 간단한 예로 1,000억원을 대출해준 농협이 1,000억원의 3%인 30억원의 부실이 발생하면 해당 농협은 이름을 떼어내고 법인을 합병해야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1,000억원을 대출해 줄 농협이면 예금을 포함한 상호금융 총액은 2,500억원에 달해야 하고 상호금융총액 2,500억원에서 30억원은 실제로 1.5%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1.5%라는 사소한 수치로 4~50명이 근무하는 지역농협 한 곳을 망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대개 그 정도의 문제가 발생하면 여러 관련자가 있는데, 이미 사업의 내용을 숙지해 소극적으로 덮으려고 주력하다가 부실의 덩치를 키워서 몰락하는 경우이다. 부실화돼 합병된 농협들의 대다수가 전체 사업에서 5% 미만을 그르쳐서 그리된 경우다.

사실이 그렇다. 이런 경우에는 조직 내의 중요 보직자들이 꼼꼼하게 업무를 살피지 않았거나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발생하는 문제의 책임은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궁극에는 대부분이 농협의 주인이라는 조합원들의 몫이다.

농협 사업에 왕도는 없다

농업협동조합 교육을 희망하는 분들의 경우 ‘우리 농협이 … (이러저러한데) 해결책은 뭡니까?’라며 강의자, 토론자에게 묘수를 묻기도 한다. 농협이 사업을 벌이며 나타난 부정적인 여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묘수는 없다. 협동조합 사업은 늘 상식에 기반해야 하고 묘수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어느 농협이 부담스러울 정도의 고정투자로 갈등을 빚고 있을 때, 해당 농협의 자산 상태와 향후 사업 전망 등을 살펴보면 당연히 철회하거나 설득이 필요한 경우가 많았다.

향후 전망이 매우 불투명한데 고정투자를 심각하게 많이 하려는 경우에는 당연히 상식선에서 생각하고 규정을 따질 필요가 있고, 반드시 해야 하는 사업임에도 조합원 중에서 반대하는 경우가 있으면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대화할 내용을 서로가 막고 대립하면 기본적으로 해당 농협의 사업은 어려워진다.

예금 금리는 이웃 농협과 비슷하지만 상대적으로 여신 금리가 이웃한 농협에 비해 높은 농협의 조합원들은 대출이자를 낮출 방법이 뭐냐고 묻는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예금 600억원 가량을 가진 농협이 대출을 250억원 가량 시행했는데 다른 농협에 비해 대출이자가 비싸니 낮출 방법이 뭐냐고 물으면 답을 어찌 하겠는가?

그런 농협은 대개 예금 관련 업무를 보는 직원이 여섯명 정도고 대출 관련 업무를 보는 직원이 세 명 정도다. 그런 구조는 이미 1980년대에 정리를 했어야한다. 그러나 지금도 많은 지역농협들이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상호금융에 관한 내용들은 이미 오래전에 자금의 운용을 사실상 통폐합하고 각 지역농협들은 지역 특성에 맞는 경제 사업에 주력했어야 하는데, 각각 다른 법인의 구조를 갖고 있다 보니 매우 열악한 금융환경을 지역민에게 제공하고 있다.

그러한 금액이 100조가 된다고 가정하고 지역 농민들이 0.5%의 금리를 추가로 부담하고 있다면 농민들은 추가이자만 일 년에 무려 5,000억원을 더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조속한 시간 내에 지역농협들은 상호금융 통폐합 운용 체계를 갖추는 게 시급하다. 농협 사업에서 묘수는 없다고 말했듯 협동조합 사업에는 왕도가 없다.

긍정은 긍정을 낳고

그러면 직원들이 수동적으로 변해 자기 이익을 중심에 둔 경우에는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하는가? 오랜 기간을 농협에 근무한 직원들 중에서 상당수는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적극적으로 나섰다가 그에 따른 책임을 본인이 져야하는 경우가 발생한 사례들이 있었거나 그러한 동료들을 봐온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몸 사리기가 익숙해져 있는 것으로 보였다.

어쨌건 해당 직원에게 과한 책임을 떠넘기는 것을 봐온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소극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직원들에게는 조합원들이 기본적으로 애정을 바탕에 깔고 대해야 한다.

대다수의 농협 종사자들은 양식이 바르고 성실하다. 그런 종사자들이 소극적으로 변하며 자기중심으로 변했거나 조직이 그러하다면 농협의 주인이 주인답게 애정으로 대하고 설득하며 함께 일을 해나갈 방향들을 제시해야 한다. 직원들을 탓하기에 앞서 임원들이 먼저 모범이 돼야하고 협동조합의 이념들을 실천해 나가야 한다.

얼마 전 어떤 농민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서둘러 창고 문을 닫으려기에 “왜 창고 문을 닫느냐?”며 억지로 창고 문을 열고 보니, 대량의 농산물 포장지가 창고 안에 적재돼 있었다. 포장지를 보니까 농협을 통해 계통 구매한 것이 아니었다. 농가에 “왜 계통 구매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니, 농협이 비싸서 그랬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농협에 전화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고 농협은 실사를 통해서 조치하겠다고 답했다.

농협 사업이 잘못됐으면 농가가 나서서 바르게 잡아야 한다. 피하면 일을 더 꼬이게 만드는 것임에도 농민들은 회피해 버리려고 한다. 이런 사소한 일들은 일상에서 늘 일어날 수 있는데 어떠한 경우에도 피하면 안 된다.

예전에 근무했던 동읍농협이 지금 시행하는 사업들을 보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가 또 다른 긍정을 불러 온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동읍농협은 고령 농가를 위해 벼 육묘사업을 지원했는데, 이제는 대농가들을 위해 벼 묘를 싹틔워 공급하는 사업도 육묘사업에 얹어서 지원하고 있다.

농민들에게 병충해 방제를 위해 공동제조로 석회유황합제를 공급했는데, 이제는 유아등(벌레를 유인해 잡는 방제등)을 농협에서 제조해 농가에 공급하고 있다. 벼 병해충 공동방제사업을 했는데 이제는 과원의 비래성 해충 공동작업도 농협에서 시행하는 계획이 잡혔다.

조합원들이 제안한 것을 시행사업으로 농협이 받아 안거나 직원들의 적극적인 제안을 농협 사업으로 시행해 많은 농민들이 해당 사업에 참여하도록 유도한 경우라고 본다.

인근지역에 비해 대출금리가 심하게 높았던 농협이었지만 직원들이 적극 나서고 책임자들의 책임 있는 관리 하에서 예수금을 늘리고 대출액을 늘리면서 총 사업량을 증가시켜 결과적으로는 대출금리를 낮춰도 경영이 가능한 상태가 되도록 만들었다.

협동조합 사업들은 더디고 시간이 걸린다. 그 내용들을 진행하는 시간 속에서 조합의 주인인 조합원들은 직원들을 긍정적으로 대해야 한다. 어차피 함께 해야 하는 같은 업종의 종사자들이지 않은가?

‘김순재의 농협 빗장풀기’를 매월 1회 연재합니다. 창원 동읍농협 조합장을 역임했던 김 전 조합장이 들려주는, 늘 곁에 있으나 잘 알지 못했던 농협 이야기에 함께 귀 기울여 볼까요.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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