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의 농사직썰] 민주·민권·민생이 근본인 사회를 꿈꾸자

  • 입력 2018.03.04 19:29
  • 수정 2018.03.04 19:33
  • 기자명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1월 24일 인류문명이 저지른 ‘이상 한파와 미세먼지, 그리고 유기농업의 쇠락’에 관한 ‘농사직썰’ 결론부분에서 이제는 이윤과 효율 위주의 성장 일변도 정책에서 지속가능한 자연환경 생태계와 안전한 삶을 우선시하는 재생사회 정책으로 전환할 때이고 그 해법의 90%는 정치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현 상황의 정치구조에 극도의 불신감을 감추지 않고 있는 많은 지인들이 내게 어떻게 그 해법의 90%가 ‘정치’에 달려 있다고 결론짓느냐고 힐난하듯 반문(反問)한다.

농업도 살리고 사람도 살리고 사회도 살리는 길은 나라의 근본인 민주·민권·민생에 충실하는 것이다. 그중 생명산업인 농업을 올곧게 살리는 일에 온 국민이 일차적인 가치를 둬야 한다. ‘기승전 돈이 아니고 생명이 우선시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여성농민들이 양파 모종을 심기 위해 밭고랑 사이로 이동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색깔론과 편 가르기는 여전

아닌 게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계는 바야흐로 색깔론과 편 가르기가 판치고 1%의 많이 가진 자들의 천국으로 변하고 있다. 민주, 민권, 민생 회복을 위한 적폐청산도 편 가르기와 색깔론에 파묻히고 만다.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점 국민들 시야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듯하다.

그 대신 대한민국은 대기업(재벌) 공화국이며 주권은 재벌에게 있고 권력은 대기업 자본과 돈으로부터 나온다로 다시 써야 할 형편이다. 민주주의(Democracy)가 아니라 대기업 자본주의(Corporatocracy) 세상이다.

돈(이익)만 바라보고 돈의 힘에 기대, 정치하고 정당을 하는 것도 예사로 본다. 돈이 이데올로기를 만들고 돈이 정치를 지배한다. 대기업 자본의 이익 말고는 모든 가치가 종속된다. 그리고 대기업 자본주의의 본산지인 미국은 무조건 옳고 선하다고 믿는다.

해방 이후 이 땅 어린이들 사이에서 “소련이라 속지 말고, 미국이라 믿지 마라, 일본은 일어선다. 조선아 조심하라”라는 동요가 유행했었다. 그리고 6.25 동란이 터졌고 일본 경제만 한국 내전 특수로 패전의 침체에서 경제 대부흥을 이뤄냈다. 미국과 소련을 따르던 국내의 종미, 종소파들은 교차해서 된통 서리를 맞았다.

그 무렵부터인가 우리 사회 곳곳에선 사리를 분명히 따지며 올곧은 말을 하면 무조건 묻지마 빨갱이로 몰아붙였다. 그 사람들과 후예들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한 북한 응원단들의 가면을 일컬어 ‘김일성 가면’이라고 시비하며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이라고 비아냥하길 주저 않는다. 이건 무지의 소치도 아니고 색깔론도 아니다. 그냥 관습이 됐다. 이 같은 행태와 맹목적 색깔론에 대해 이제 뜻있는 국민들은 식상하다 못해 지쳐있다.

북핵과 미사일은 분명 위험한 짓이며 나쁜 것이지만, 선제 타격 불사론을 외치는 미국 트럼프 정부는 물론, 또 6.25 전란의 특수를 노리는 듯 그를 부추기는 일본 아베 정권도 우리 국민들에게 위태롭기는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의 자주와 안보를 우리 국민 스스로 똘똘 뭉쳐 지켜야 할 이유이다.

정명을 잃고 허덕이는 민주, 민권, 민생

공자(孔子)의 정명론(正名論)에 따르면,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면 민주주의(民主主義), 바꿔 말해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면 민본주의(民本主義)가 돼야 한다. 요컨대, 백성들이 나라를 다스려야 진정한 민주주의요, 민본주의이다. 대의민주주의 하에서는 국민이 그들의 대표로 국회의원을 뽑고 대통령을 직접 선출해 나라를 다스리게 한다.

그런데 국민들이 뽑지 않은 재벌기업 자본과 돈의 권력이 나라를 들었다 놨다 좌지우지 하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코포라토크라시이다. 그 풍토에서 삼성공화국 또는 현대공화국이 탄생하고 사법부, 행정부, 입법부가 그 하부기관이 된다.

선출 정치가들이 돈 권력과 야합한 정상배(政商輩)로 둔갑해 활개치고 정치꾼들의 집단인 정당들 역시 편 가르기와 색깔론 등 안보장사로 재미 보는 돈 권력의 하수인을 자임한다. 가장 정의롭고 공정해야 할 사법부도 재벌공화국에 봉사한다.

정명주의 대로라면 대통령이 대통령다워야 대통령이고, 관료가 관료다워야 참 관료이듯, 농부도 상인도 기업가도 각기 농상공인다워야 참 농민이요 상인이며 공업인이 아니던가. 제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이 돈의 권력 앞에 제자리를 잃고 헤매고서야 민주주의도 민본사상도 본연의 빛과 생명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게 된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민본주의가 이탈한 나라에서 백성의 권리와 삶(민생)이 온전할 리 없다. 생존이 불안한 서민 대중들 중에 눈치깨나 밝은 자들은 이 곳 저 곳을 기웃거리며 떡고물을 받아먹으랴 정명을 찾으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 피해자가 다름 아닌 춥고 배고픈 서민 대중이며 중소 상공인, 농민들 자신인데도 그러하다.

그중에서도 경제적으로 ‘식량 식민국가’인 우리나라에선 생명산업에 종사하는 농민들이 가장 천대받고 무시당한다. 코포라토크라시의 1차 피해자가 된다. 왜냐하면 대기업 자본은 외세에 빌붙어 값싼 해외농산물을 수입할수록 자기들에게 이익이 더 많이 생기고 부를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열악한 산업인 농업이 붕괴돼야 자기들의 이익과 부와 세를 더 불릴 수 있다. 그래서 그 하수인을 자처하는 정상배들 일수록 농업, 농촌, 농민 문제를 외면하는데 그치지 않고 한수 더 떠 농업포기론을 부추기기도 한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막스웨버는 일찍이 그의 명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지구촌이 종국에는 탐욕의 자본주의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꽃을 피워 정상배들의 천국이 될 수 있음을 암시했다. ‘양심이 결여 된 과학, 영혼이 없는 학문, 상식이 안 통하는 정치, 이성이 빠진 종교, 염치가 없는 사법부, 그리하여 풀뿌리 백성이 죽어가는 나라’의 탄생을 예지했다.

그 결과 자본의 탐욕이 지배하는 과학, 정치, 학문, 종교, 사법 사회가 시나브로 가장 열악한 산업과 취약한 사회계층부터 짓밟는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로 변하게 된다. 그 순간 인류 역사에 가장 어두운 시간, 죽어가는 나라(degenerative nation)로 전락하게 된다. 돈 권력의 위력 앞에 무릎 꿇는 사법재판(예,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석방) 사례는 그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다.

자본주의 3대 요소 토지, 노동, 자본 중 자본을 가진 기업권력이 가장 먼저 노리는 것이 토지 겸병이며 노동력 지배이다. 자본주의는 태생부터 토지 등 부동산 자산의 사유극대화가 목표이며 수단이다. 짧지 않은 필자의 정부 정무직 재직 중에 청탁성 압박과 유혹을 가장 많이 받은 부문이 토지용도변경 허가와 국공유지 불하 요구였다.

그 정점은 어마어마한 간척지 공유지를 사유화 해 상공업 용지로 용도변경을 로비한 수십조 원짜리 청탁성 협박이었다. 난다 긴다 하는 기라성 같은 정관계 인사들과 막강한 언론을 동원한 로비는 가히 죽음의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그 간척지를 더 훌륭한 공공요지로 개발할지언정 절대 특정 자본에게 몽땅 이윤을 몰아주는 특혜조치는 안 된다는 DJ 대통령의 엄중한 교시는 지금도 존경해 마지않는 현명한 판단이었다.

사라져 가는 우리 밀 농사를 정부를 대신해 살리려다 파산한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의 수십억 원 부채를 탕감시켜 주라던 대통령의 입에서 그 같은 공공의식의 토지공개념이 정책으로 표현될 수 있었던 것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선(善)한 만남의 사례이다.

근본으로 다시 돌아가자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의 특징은 더러운 인분(똥)이 가득 차 악취가 진동하고 벌레들이 꼬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언제나 그 선두에는 정상배들이 자리한다. 그래서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시중에서는 정상배들을 일컬어 교도소 담벼락 길을 걷는 서커스맨에 비유해 삐꺽 잘못 디디면 교도소 안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우스갯소리를 수군거린다.

정상배들의 행태에 대항해 ‘국회의원, 정치가들에게 최저시급제를 적용하라’는 SNS 상의 벌떼 같은 요구가 어느 정도 진정제 구실을 할 수 있을까? 입만 열면 ‘종북, 좌빨’ 색깔론만 떠들고 태극기와 미국 국기 심지어 이스라엘 국기를 휘날리며 나라 말아먹은 극우 수구 정당과 정상배들을 어떻게 하면 제자리로 돌아오게 할까. 근거 없는 색깔론과 무고한 편 가르기 정쟁이 소용이 없음을 깨닫게 해야 한다.

백성들의 소리가 하늘의 소리이며 하늘의 소리를 따르지 않는 역천자(逆天者)는 반드시 망한다는 소박한 진리와 진실을 일깨우는 일이 우선이다. 돈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언론이 바로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도 안 바뀌면 민주, 민권, 민생의 정도로 감연히 맞서 일어선 국민들의 함성이 4.19 혁명이나 프랑스 대혁명처럼 승화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역사적 진실 앞에 겸허해야 한다.

이제 우리 모두가 냉철하게 민본사상과 정명주의로 도덕을 재무장 할 때이다. 나라의 근본은 백성이며 백성들은 (올바로) 먹고사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는 세종대왕의 가르침과 실천을 따라 가는 길 뿐이다. 나쁜 먹거리(예, GMO)는 퇴출시키고 나쁜 정상배들도 몰아내야 한다.

자연환경 생태계도 살리고 사람도 살리고 악취 투성의 정치, 종교, 학문, 산업, 사회도 살리는 길은 누가 뭐라 해도 기본(민주, 민권, 민생)에 충실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생명산업인 농업을 올곧게 살리고 덩달아 생태계와 민생의 삶을 안전하게 간수하는 일에 온 국민이 일차적인 가치를 둬야 한다.

농업(먹거리) 먼저, 민생(안전) 먼저, 민권·민본 먼저인 사회를 우리 모두 함께 대망해 보자. ‘기승전 돈!이 아니고, 생명이 우선시 되는 사회! 정상배는 가고 경세가(經世家)만 모이는 나라!’가 그 해답이다.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의 우리 농정에 대한 속시원한 돌직구, ‘농사직썰’을 매월 1회 게재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