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남동생 뒷바라지 그만해라

  • 입력 2018.03.04 19:11
  • 수정 2018.03.04 19:13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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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가뭄이 극심하더니 때맞춰 봄비가 제법 굵게 내립니다. 너무 매말라서 월동작물들의 자람이 걱정되던 통에 반가운 봄비가 내리니 값으로 치자면 억만금은 될 성 싶습니다. 땅속 것들도 부랴부랴 새순을 뾰족뾰족 내밀 것입니다.

구점숙(경남 남해)

나물캐는 처녀도 없고 나무하는 총각도 없으니 봄바람에 겨운 연정이 싹틀 리 만무하지만, 농민들에게 봄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이 비가 내리고 나면 마을안길에는 이른 아침부터 경운기 소리가 울려 퍼지겠지요.

겨우내 구상해 온, 여느 때와 별 다를 바 없지만 새로운 기대를 주는 농사를 하나 둘 시작해 볼 참이지요. 마을회관 또는 어쩌다 길에서 마주치던 마을분들을 이제는 들판에서도 만나게 됩니다.

작은 동네에서 마을분들과 만나 잠깐의 인사를 나누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요. 짧은 인사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헤아립니다. 낯빛과 목청으로도 기운을 읽고는 합니다. 그 중 유독 반가운 어머니가 한 분이 계십니다. 물론 나 혼자 반가울 것입니다.

이 분, 지혜로움이 남다르십니다. 이제는 다 커버린 자식들이 아직 어릴 때, 맏딸이 제 남동생과 함께 타지에서 자취를 하느라 고등학생인데도 아침마다 도시락을 몇 개씩 싸며 고생을 했다하지요. 그것이 내내 미안하던 지라 아이들을 대학 보낼 때는 아들과 딸의 대학 지역을 따로따로 선택하게 했다 합니다.

더는 남동생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하지 말라는 뜻이었겠지요. 심지어는 공장에 다니며 남동생이나 오빠의 등록금을 마련하던 일도 다반사인 시대였지요. 그렇게 가족에게 당연시 되던 딸의 헌신을 당연시 하지 않았던 지혜로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형편이 나아서? 그럴 리가요.

나 아닌 누군가가 나의 생활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을 하는 것을 온당하게 느끼며 성장한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차별을 당연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여자니까 이러해야 되고 남자니까 그래도 된다는 것, 차별의 시작이지요. 남녀는 기본이고 약자에게는 억압하기 쉽고 강자에게는 비굴해지기 쉽습니다.

물론 곤란하고 거친 시대라 무엇이든지 구분 짓고 규정하는 것이 쉬웠겠지요. 그 거친 시대를 살아온 어른들이 있었기에 이만한 여유가 생겼을 것입니다.

지금의 교육이사 보다 평등에 가깝지만 그 시대에는 학교교육도 세상도 가정도 불평등하기 짝이 없었으니 그때 딸아이의 당연한 헌신을 말렸던 어머니는 분명 차원을 달리하시는 분이십니다.

앞장서서 여성의 권리를 주창하지는 않았지만 조용히 가정 내에서 평등과 권리를 실천해 오셨으니까요. 온화한 표정을 지니신 그 어머니, 마음속에는 불꽃을 지니셨으니 어쩌다 마주칠 량이면 먼저 인사를 건네게 되고 반가움도 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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