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협궤열차③ 사람이 밀고 가는 기차
[그 시절 우리는] 협궤열차③ 사람이 밀고 가는 기차
  • 이상락 소설가
  • 승인 2018.03.0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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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선 협궤열차의 제한속도는 시속 50킬로미터였다. 기관 자체가 50킬로미터를 넘으면 안 되도록 설계돼 있었기 때문에 40이나 45킬로미터로 달리는 것이 보통이었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시속은 고작 25킬로미터에 불과했다. 어째서 그런 통계수치가 나왔을까? 왕년의 협궤열차 기관사 박수광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이상락 소설가

“물을 끓여서 동력을 얻는 증기기관차 시절에는,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기기 무척 어려웠어. 기관사 밑에 기관조사가 두 명 있었는데 그 두 사람은 열차를 운행하는 내내 끊임없이 석탄을 퍼 넣어서 불을 때야 하거든. 중노동이었지. 여름철이면 그 좁은 기관실이 요즘의 맥반석 사우나실 저리 가라 할 만큼 달아올라서 숨이 탁탁 막힐 지경이었다니까.”

석탄 넣는 일도 무조건 퍼 넣기만 하면 되는 작업이 아니다. 일정한 화력을 꾸준히 유지하려면 양을 잘 조절해가면서 연료를 공급해야 한다. 특히 약간이라도 경사가 진 구간을 운행하려면, 미리 석탄을 넣었다가 오르막길 직전에 최고의 화력을 만들어야 한다. 만일 불 조절을 잘 못 해서 엔진이 꺼지기라도 하면 기관조사들은 기관사로부터 ‘빠따’를 맞을 각오를 해야 했다.

“겨울철, 용현역에서 송도역으로 향하는 그 길을 우리는 ‘마(魔)의 오르막’이라고 불렀어. 경사가 별 것 아닌데도 요놈의 꼬마 열차는 차체도 작고 힘도 약하다 보니 그 언덕길을 채 오르지 못 하고 멈춰버리기 일쑤였거든. 특히 철로에 눈이 쌓인 날이면….”

아닌 게 아니라 멀쩡하게 잘 달리던 기차가 바로 그 ‘마의 오르막’ 직전에, 눈 쌓인 레일 위에서 헛바퀴를 돌리다 멈춰버린다. 기관조사 두 사람이 삽을 들고 내려가서는 철로에 모래를 뿌리며 앞으로 나아가고, 그 뒤꽁무니를 열차가 설설 기며 따라간다. 그러나 이내 다시 헛바퀴질이다. 결국 차장이 호루라기를 입에 문다.

“다들 내려요! 할머니 할아버지만 빼고 다 내려서 기차에 달라붙어 미세요!”

보따리 장사꾼도, 통학하는 학생들도, 모처럼 나들이 나섰던 승객도…군소리 없이 내려서는 힘을 보탠다.

“저 송도고개만 올라채면 되니까 기운 내서 한 번 밀어봅시다. 거기 젊은 사람들, 주머니에서 손 빼고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내서 좀 세게 밀어 봐요! 멈추지 말고 더 세게! 거기 뒤쪽학생들, 뭣하고 있어! 더 세게 밀어!”

드디어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요즘 승객들 같으면 열차가 중간에 멈춰 서기만 해도 기관사나 차장에게 항의하고 빨리 가지 않는다고 재촉하는 등 일대 소란이 벌어졌을 법한데, 오히려 기관사나 차장이 승객들에게 힘껏 밀지 않는다고 타박하고 야단을 쳐도 군말 없이 따랐다고 하니, 당시의 협궤열차가 주민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짐작할 만하다. 그러니까 평균시속 25킬로미터는 이처럼 승객들이 열차를 밀고 가기도 하고, 고장이 나서 아예 멈춰서기도 하고, 언덕길을 거북이걸음으로 설설 기어 올라가는 속도까지를 모두 합해서 낸 평균값이다.

‘칙칙폭폭’ 소리를 내는 그 증기기관차는 물을 데우는 데에 석탄만 사용했던 게 아니었다. 석탄대신 벙커씨유를 쓰기도 했는데, 연료가 달라졌다 해서 꼬마 열차가 갑자기 힘센 장사가 되는 건 아니었다.

“내가 기관조사 생활을 하다가 기관사 시험에 응시해서 합격한 때가 1973년이었는데, 그해 여름에 있었던 ‘어천굴 사건’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니까요.”

어천은 수원 종착역 바로 직전의 역이었는데 만만치 않은 고갯길인 데다 하필 언덕에 2백여 미터의 터널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굴착된 이 터널은 워낙 오래된 데다 해방이후 보수를 전혀 하지 않아서 천장에서 물이 줄줄 샜다. 따라서 늘 레일이 젖어 있어서 미끄러웠다.

“그날따라 군자역에서 소금을 잔뜩 싣고서 바로 그 어천굴 들머리에 이르렀는데….”

그 굴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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