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농업] 포전(圃田)담당제 바로 알기

  • 입력 2018.03.02 16:11
  • 수정 2018.03.02 16:13
  • 기자명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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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경제나 농업 관련 소식을 접하다 보면 몇 년 전부터 ‘포전담당제’란 용어가 많이 등장한다. 말 그대로 협동농장이 공유하고 있는 농지 가운데 일정 면적의 농지(포전·圃田)를 농가에 맡겨 경작하도록 하고 생산성 결과에 따라 소득분배가 이뤄지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외부에서는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에 나타났던 생산청부제와 유사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그러한 인식의 이면에는 북이 협동농장을 폐지하고 자본주의적 농업으로 전환하는 신호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이는 북의 농업관리방식 변화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로 나타나는 오류로 보여진다.

중국의 생산청부제는 인민공사를 전격적으로 해체하면서 도입된 방식이다. 인민공사와 같은 협동농장이 사라지면서 그 빈 자리를 개별 농가에 경작을 맡기는 생산청부제로 대체한 것이다. 하지만 북의 협동농장은 여전히 건재하고 농업과 식량 생산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협동농장의 해체 혹은 폐지에 관한 그 어떤 작은 징후나 실마리조차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따라서 포전담당제 도입을 협동농장의 해체 혹은 폐지의 신호로 인식하는 것은 과도한 주관적 기대감이 낳은 인식의 오류라 할 수 있다.

오히려 북이 꾸준히 시행해 왔던 사회주의 농업관리방식의 역사적 변화과정의 연장선상에서 포전담당제를 이해하는 것이 더욱 타당하고 설득력이 있다. 누구나 동의하듯이 포전담당제 도입의 목적은 인센티브의 확대이다. 즉, 더 많이 생산할수록 더 많은 소득분배를 보장함으로써 농민의 물질적 욕구를 자극해 노동의욕을 높이려는 취지로 도입된 제도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센티브 방식은 협동농장 초창기부터 도입·시행돼 왔던 작업반 우대제, 1990년대 중반 도입된 분조관리제, 2000년대 중반 이후 시행된 소규모 분조관리제 등의 연장선상에 있다.

북은 협동농장 초기부터 소련 콜호즈(집단농장) 방식의 문제점이었던 ‘평균주의’를 배격하고, “능력에 따라 일하고, 일한만큼 분배받는” 인센티브 방식을 도입·시행했는데, 초기엔 대략 100~150명으로 구성된 작업반 단위, 1990년대 중반엔 15~20명 규모의 분조 단위, 2000년대 중반부터는 5~12명 정도의 소규모 분조 단위로 인센티브를 적용했다. 소규모 분조의 경우 두서너 농가로 구성돼 생산성에 비례해 소득분배를 받았는데, 몇 년 전부터 도입된 포전담당제는 소규모 분조에서 개별 농가 단위로 바꾼 방식이다. 이러한 변화는 지난 2002년 북이 발표한 「사회주의경제관리개선조치」에 이미 포함된 농업관리방식의 변화조치들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포전담당제를 비롯해 협동농장의 책임경영제도, 기업의 독립채산제 등은 모두 북이 일관되게 강조하는 ‘실리 사회주의’의 주요 구성요소들이다.

게다가 농업성(농업과학원) - 도 농촌경리위원회 - 시군 농업경영위원회 - 협동농장(관리위원회)으로 이어지는 농업관리체계가 지금도 견고히 유지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협동농장 내부의 노동조직과 작업방식 및 소득분배 방식의 변화로서 포전담당제를 이해하는 것이 실체에 부합하는 해석이다. 협동농장 해체 혹은 폐지의 논거로 활용하는 것은 인식의 오류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포전담당제가 어느 정도 확대됐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자료가 없다는 점이다. 포전담당제 시범(본보기)사업을 거쳐 점차 확산되는 추세인 것은 분명하지만 포전담당제가 기존 소규모 분조관리제를 어느 정도 대체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아마 이 부분은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상호교류가 진전된다면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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