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협궤열차⓶ 남인천역 광장에 ‘반짝시장’이 열렸다   
[그 시절 우리는] 협궤열차⓶ 남인천역 광장에 ‘반짝시장’이 열렸다   
  • 이상락 소설가
  • 승인 2018.02.25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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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인선 협궤 철로의 총연장은 52킬로미터였다. 협궤열차의 역들을 수원을 기점으로 짚어보면 ‘수원-고색-어천-야목-사리-일리-고잔-원곡-군자-달월-소래-남동-송도-용현-남인천’ 등으로 이어진다. 

기차역마다 승객들이 가지고 타는 물품들이 달랐다. 야목역은 조그만 간이역이었으나 농산물을 팔러 인천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몰려서 이용객이 가장 많았다. 보릿자루나 콩자루 등을 가지고 타는 경우 화물운임을 따로 내야 했다.

 “곡식 자루를 갖고 타면 당연히 화물표를 따로 끊어야 되거든. 그런데 그거 몇 푼 안 내겠다고 보따리를 치마 속에 숨기는 아주머니들이 있어요. 차장이 그걸 모르나? 다 알지. 그렇다고 여자의 치마폭을 들출 수는 없어서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지고…허허, 참, 볼만 했어요.”

 왕년의 협궤열차 기관사 박수광씨가 들려준 얘기다. 하지만 협궤열차를 이용하여 보따리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열차 승무원들과 너나들이로 지낼 만큼 친근했기 때문에, 작은 곡식자루 한둘의 운임은 눈감아주기도 했다. 

 기차가 소래역에 닿으면 풍경이 달라진다. 새우나 조개나 꽃게 따위의 해산물을 양푼에 담아 머리에 인 아낙들이 줄줄이 올라타고, 객실은 순식간에 비릿한 갯내음으로 채워진다. 

 군자역의 화물은 단연 소금이었다. 일제 통감부에서 조사한 기록에 따르면 1925년 군자 지역에 575정보(570.3㏊)의 염전을 조성했다는 내용이 올라있다. 이후에는 소래에도 염전이 개발되었다. 그래서 협궤열차를 ‘꼬마열차’라 부르는 한편으로 ‘소금열차’라 칭하기도 했다. 일제가 수인선 협궤철로를 건설한 목적이 거기 있다. 

일찍이 인천의 주안에 대규모 염전이 조성돼 있었음을 감안하면 일제는 협궤철로를 개설하여 ‘군자-소래-인천’으로 이어지는, 소금 수탈을 위한 벨트를 마련하려고 했던 것이다. 물론 이와는 별도로 만들어진 수여선(수원-여주 간)협궤열차의 경우 여주, 이천 지역의 쌀을 수탈해가기 위해서 깔았던 철로이고. 
  
 기차가 남인천역에 도착하면 장사꾼들의 움직임은 두 편으로 갈린다. 협궤열차의 화물칸에 쌀을 몇 가마씩 운반해온 쌀장수들은 제법 규모가 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화물칸에서 내려진 쌀가마는 손수레꾼에 의해서 역사 바깥으로 운반되고, 거기서 다시 용달차에 옮겨 싣는다. 쌀장수 아낙네들도 자신들의 쌀가마니와 함께 용달차에 올라탄다. 이 쌀장수들은 인천의 주택가를 여기저기 돌면서 쌀을 몇 되 씩, 혹은 몇 말 씩 나눠 팔고 돌아온다. 

 그렇다면 야채 몇 단이나 콩 몇 됫박, 또는 생선이나 조개 따위를 이고 진 소규모 보따리 장사꾼들은 그런 물건들을 어디에다 처분했을까? 

 평시엔 텅 비어있던 남인천역 광장은 수원 발 협궤열차가 도착하자마자 북적거리는 시장판으로 변한다. 남인천역 인근의 주민들이나 식당주인들도 때를 맞춰서 광장으로 몰려든다. 

 “싱싱한 배추가 왔어요. 풋고추 사세요! 시금치도 있어요!”
 “이거 봐, 펄펄 살아 있지? 싱싱한 소래 꽃게 사요! 새우도 있고 조개도 있어요!
 “마늘쫑 이거 얼마 안 되니까 다 들여가지 그래!”
 “아주머니, 내가 단골인데 꽃게를 딴 사람한테 팔면 안 되지!”

 불과 30여분, 길면 한 시간 동안 섰던 이 장을 ‘반짝시장’이라고도 했고 ‘깡시장’이라고도 했다. 한 시간 쯤이 지나면 역전광장은 거짓말같이 텅 비어버리고, 물건을 판 시골 사람들은 인근 식당에서 국밥이나 국수로 요기를 한다. 물론 남정네들은 막걸리 한 잔씩을 곁들이고. 

 수원행 꼬마열차가 다시 기적을 울리고 출발한다. 돌아가는 협궤열차의 승객들 손에는 떠날 때와는 사뭇 다른 물건들이 들려 있다. 

 “뭘 그렇게 많이 샀어?”
 “빨래비누가 떨어져서 몇 개 샀고, 주전자하고 세숫대야는 큰집에서 부탁한 것이고, 냄비는 이웃집 할머니네 거야. 용남이 엄니 보따리엔 뭐가 들었는데?”
 “애기들 양말 몇 켤레하고, 큰 맘 먹고 시엄니 겨울 쉐타 한 벌 샀구먼.”
 “효부 났네. 아이고, 내 정신! 순임이 엄니가 베개 호청 사오랬는데 깜박 했네, 쯧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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