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했지만 역시나 … 농정개혁위 전국 공청회 충북서 시작

공청회 세부 계획, 농식품부 일방 변경 논란 속에 치러져
인사말만 하고 떠난 장관 … “현장 목소리 듣는다더니”

  • 입력 2018.02.25 00:42
  • 수정 2018.02.26 09:06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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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직속 농정개혁위원회가 전국 순회 공청회를 지난 19일 충북도청에서 시작한 가운데 강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이 우리 농업·농촌의 현실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정개혁위원회(공동위원장 김영록 농식품부 장관·정현찬 가톨릭농민회장, 농정개혁위)가 지난 19일 충북도청에서 전국 순회 공청회 첫 일정을 시작했다. 200여명의 농민, 도·시·군 관계자, 유관기관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공청회는 현장과 소통하겠다는 ‘형식’만 갖췄을 뿐 농민들의 답답한 심경을 속 시원히 풀어줄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농정개혁위가 첫 공청회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통해 변화된 지점을 갖추지 않는다면 앞으로 치러질 8회의 각 지역 공청회는 ‘시간 낭비’가 될 것이라는 게 농민들의 이구동성이다.

폭넓은 소통·현장 개혁 과제 도출 취지

농정개혁위가 충북을 시작으로 3월 말까지 9개도 순회 공청회 계획을 밝히면서 내건 취지는 ‘문재인정부의 농정개혁 성과를 현장으로 확산하고 현장 농민들과 지자체 요구사항 수렴 및 농정개혁 과제 발굴’이다. 19일 충북도청 대회의실에는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가운데 농정개혁위의 첫 공청회가 시작됐다.

공동위원장인 김영록 장관은 인사말에서 “농업도 제대로 대접받고, 대변신을 통해 크게 발전하는 비전과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시·도 순회 공청회를 통해 현장 목소리를 듣고 여기서 나온 말은 장관이 직접 챙겨 볼 수 있도록 발전방향을 만들고 적극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김 장관은 무허가축사 문제로 국회 설명회가 있다며 양해를 구한 뒤 행사 시작 20여분 만에 퇴장했다. 농식품부 김종훈 차관보, 오병석 농촌정책국장, 이주명 농업정책국장, 김인중 식량정책관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지만 농민들에겐 ‘무성의하다’는 인상을 남겼다.

김영록 농식품부 장관은 이날 인사말만 마친 뒤 국회 일정을 이유로 행사 시작 20여분 만에 퇴장했다. 한승호 기자

“이 시기 놓치면 농정개혁 없어”

이날 공청회는 농식품부가 ‘2018 농식품부 주요업무 계획’, ‘2018~2022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계획’ 등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당일 농정개혁위 농정분과위원장인 최정섭 목표대 교수가 ‘농정개혁위 활동경과 보고’로 축소됐고, 강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이 한국 농업·농촌의 현실에 대해 농민의 관점에서 발표했다.

강광석 정책위원장은 “오늘 공청회는 ‘현장 농민에게 듣는다’는 부제가 있어 전남 강진에서 논농사와 고추농사를 짓는 내가 나왔다”고 인사한 뒤 “농가소득이 3,700만원이라지만 농사지어 번 돈 보다 농외소득으로 채워지는 것이 현실이다. 또 농민 소득 양극화 문제 역시 대농이 많이 벌어서 심화되는 것이 아니라 중소농의 몰락이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농업·농촌의 극심한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 강 정책위원장은 “헌법 개정에서 경자유전을 국가의 의무로 명시하고,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 헌법 명시, 농민기본소득 보장 등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농사는 때를 놓치면 안 된다. 지금은 새 농정 파종의 적기다. 새 정부 출범 1년을 앞둔 이 시기를 놓치면 농정개혁은 없다”고 단언했다.

충북 농민들, 직불금·농업예산·쌀값·친환경농업 등 질문

공청회 핵심인 현장 농민들의 질문 시간은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가 맡아 진행했고, 사전 질의서를 받거나 몇몇 질문은 즉석에서 들었다.

김남운 전농 충북도연맹 정책위원장은 농업예산과 관련해 질문하면서 “쌀값이 회복되면서 변동직불금 예산 중 불용액이 5,000억원대다. 가뜩이나 부족한 농업예산에서 이 돈이 다른 농업예산으로 전용이 가능한가”를 물었다.

김인중 식량정책관은 “변동직불금 예산을 다른 예산으로 바꾸기는 현재 상태에서 어렵다. 하지만 세출예산이 부족해서 이월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부분으로 충당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고 답했다.

김 정책위원장은 이어 “농업예산 중 직접지불금을 50% 높이겠다고 한 대통령 공약은 어떻게 되는가”를 궁금해 했고, 김 식량정책관은 “직불금 비중을 높이는 것은 노력 중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중장기적 관점에서 직불금 개편을 고민 중이다”고 전했다.

김봉기 충북 친환경농업인연합회 회장은 “친환경 퇴비를 쓰는데 배합비율이 정확치 않다고 생산을 못하게 하는 것은 과도한 제재이고 적절치 않다”고 토로했다. 이태근 흙살림 회장 역시 “비료퇴비 포장을 보면 고정성분과 배합비율이 있다. 고정성분은 누구나 지키는데 문제는 배합비율 표시다. 우리나라 퇴비업체가 1,000개가 넘는데 기계적으로 비율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어느 나라도 퇴비의 배합비율까지 표기하는 경우는 없다. 농식품부에 수차례 얘기했지만 잘 모른다. 장관이 시행규칙만 바꾸면 해결되는 문제다”고 전문가로서 견해를 밝혔다.

특히 충북 단양지역에서 임차농민의 처절한 현실을 전하는 농민이 있어 많은 참석자들의 안타까움과 공감을 샀다. 한연수 씨는 친환경 사과 농사를 짓기 위해 20년 임차계약을 맺었으나 10년이 지나자 과수원 일부가 팔리면서, 이로 인해 땅주인과 송사에까지 이르렀으나 1, 2심 모두 패소했다.

김도경 전농 충북도연맹 의장은 농촌현장에 가득한 농식품부에 대한 불신을 지적하며 “재고쌀로 골머리를 앓고 있으면서 밥쌀을 수입하는 정부, 가격이 조금 오르면 농축산물 수입카드부터 꺼내는 정부, 임차농의 피해대책 마련에 굼뜬 정부…, 농민 편에 서지 않는 정부가 바로 적폐다. 재고쌀 대책마련을 위해 대북지원 등을 고민하는가”를 묻기도 했다.

이날 자신을 ‘54년차 농사꾼’이라고 소개한 한 농민은 “대통령 하나 바뀌었을 뿐 그 밥에 그 나물이다. 정말 새로운 농정이 필요하다. 60년차 농사꾼이 됐을 땐 좀 좋은 모습을 보고 싶다”며 “농사꾼도 허리 좀 펴고 살자. 오늘처럼 공청회 하려면 다른 지역에 가지도 마라”고 쓴소리를 해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날 이시종 충북도지사는 “최저임금이 전 사회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데 우리 농민들은 왜 최저임금제 도입이 안 되나. 극심한 어려움 속에 처한 농민들에게 최저임금제든 기본소득제든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가 하루빨리 도입돼야 한다. 농정개혁위에서도 이 사안에 대해 적극 검토해 달라”고 말해 역시 박수를 받았다.

농정개혁위 전국 순회 공청회 두 번째는 오는 28일 경상북도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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