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배추 동해, 보상은 더 막막

폭설·한파에 피해 심각 … “멀쩡한 배추 찾기 힘들어”
수확·출하 못한 배추에 후작 포기하는 경우도

  • 입력 2018.02.23 15:24
  • 수정 2018.02.23 15:27
  • 기자명 박경철·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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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장수지 기자]

이례적인 폭설과 한파로 해남 월동배추 재배농가들이 고충을 겪고 있는 가운데 지난 20일 전남 해남군 황산면의 한 배추밭에서 최경민씨가 동해를 입어 수확하지 못한 배추를 갈라 배춧속을 내보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20일 전남 해남군 곳곳의 배추밭엔 아직 수확 못한 배추들이 가득했다. 이미 수확을 마쳤을 시기건만, 이례적인 폭설과 한파로 동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해남군은 겨울철에도 비교적 온화한 날씨 덕에 우리나라 월동배추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주산지로 손꼽힌다. 하지만, 올해 1월 중순부터 2월 상순의 평균기온은 -6~-8℃로, 평년의 -1.5~-5℃ 보다 3℃ 이상 낮았고, -11.7℃까지 떨어진 한파와 폭설까지 이어졌다. 때문에 현장 농민들은 수확하지 않은 배추 대부분이 동해를 입었을 거라며 피해규모가 막대할 것으로 추정했다.

해남군 산이면의 배추 재배 농민 김중옥(57)씨는 “배추 농사만 약 30년 정도 지었는데, 끊이지 않는 한파와 10cm가 넘게 쌓인 눈도 처음”이라며 “원래 배추가 얼었다 녹는 것을 반복하지만, 올해는 녹을 새가 없어 구가 크지도 못하고 동해까지 입어 밑동이 썩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다시피 동해가 심해 우리 밭은 물론 인근 대부분의 배추밭에 아직까지 배추가 많이 남아있다. 2월 중순까지는 수확을 마쳐 후작 준비를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도 대책이다 뭐다 정해진 게 없어 사실상 올해 후작마저 포기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황산면의 최경민(38)씨는 재배중인 배추 1만7,000평 중 계약하지 않은 3,700평 정도의 배추 처리에 곤란을 겪고 있다. 최씨는 “정부가 마련한 지원을 받으려면 배추를 전부 폐기해야 되는 데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묶은 끈을 풀고 바닥 비닐도 뜯어야 해서 허리 펼 틈도 없다. 더구나 애써 키운 배추를 눈앞에서 트랙터로 뭉개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영 좋질 않다”고 말했다. 또 “겉잎을 까면 속은 멀쩡하고 올해 유독 가물어 배추가 달고 맛있기 까지 해 쌈배추로 판매 하는 것도 고려중”이라며 “여러 방안 중 그나마 손해를 덜 볼 수 있는 게 뭔지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농림축산식품부(장관 김영록, 농식품부)는 지난해 12월 재해복구비 지원단가를 인상했다. 이에 농약대와 대파대 20개 항목의 지원단가가 평균 2.8배 인상됐고 피해 농가에 채소류 농약대 168만원/ha, 엽채류 대파대 410만원/ha을 지원해 신속한 영농재개와 경영안정 기능을 강화하겠다 밝힌 바 있다.

 

정부 지원은 어떻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 대책에 많은 관심이 몰리고 있지만, 현장에선 피해 지원 규모나 대상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주먹구구식으로 일 처리를 하고 있다며 농식품부의 피해 지원 대책과 해남군의 행정 처리에 쓴 소리를 쏟아냈다.

일단 농식품부와 해남군은 피해 지원 대상이 현행 재해대책법상 농업인으로 한정돼 있고 계약재배의 경우 소유권이 농가에서 농협이나 상인에게 넘어간 경우라 지원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해남군 각 면사무소에서도 피해 지원 신청을 받으며 농가로부터 계약재배를 하지 않았다는 확인서를 받고 있다.

해남군의 농가 70% 가까이는 상인과 계약재배를 통해 출하하고, 25% 정도는 농협과 계약재배를 하고 있다. 비계약재배 농가는 10%도 안 된다. 결국 피해 지원 대상이 그만큼 축소되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농협이나 상인 계약재배 농가에 대한 구원책도 필요하다는 게 농가들의 목소리다.

특히 농민들은 생산량 조정을 위해 정부가 계약재배를 독려해왔음에도 이를 이유로 피해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더군다나 농협 계약재배 농가들은 계약금과 중간 정산으로 받아야할 돈의 70%밖에 받지 못했다며 농가에도 피해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인과 계약재배를 한 농가들도 마찬가지다. 이미 정산은 마쳤지만 더 큰 피해를 보기 전에 손해를 보고 처리를 한 만큼 이에 대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상인들은 손해가 막심해 농가에 계약을 파기하고 지원금을 타도록 유도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상인과 계약재배를 한 산이면의 농민 민모(68)씨는 “계약을 한 상인이 배추 상태가 좋지 않다고 가져가질 않는다. 3,000평에서 300만원을 건졌는데, 생산비에 못 미치는 적자는 물론이고 배추가 밭에서 썩고 있어 일거리까지 늘었다”고 말했다.

농민들의 목소리를 종합하면 애초에 농가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책인 만큼 이미 동해로 고통받아온 농민들이 더 손해를 보지 않도록 섬세한 행정이 필요하다는 요구다. 더불어 피해 지원이 어느 선까지 이뤄지는지와 그 대상자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필요하다.

한편, 월동배추 피해와 관련 농가와 계약재배를 진행한 지역농협의 경우 농협도 피해 지원 대상에 포함될 수 있도록 건의하고 있고, 농협중앙회 차원의 피해 지원도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해남군에선 “수확 마무리 시기인 2월 중순에 복구 지원이 확정된데 따른 행정적 어려움이 있었다”며 “금주 중으로 조사를 마치고 최대한 피해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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