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촌 갑을 구조

  • 입력 2018.02.09 13:31
  • 수정 2018.02.09 13:32
  • 기자명 우희종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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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간은 권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 간에 벌어지는 소위 갑과 을의 관계로 인한 부조리한 소식으로 한창이다. 갑을 관계에 의한 불평등 내지 착취 구조가 우리사회에 전 방위적으로 자리 잡은 것은 불행히도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은 심지어 검찰 조직 내에서도 성폭력으로부터 수사 외압까지 여러 유형으로 횡행하고 있었다.

더욱이 그런 갑질에 대한 증명조차 힘든 문단계에서도 유명 시인의 파렴치한 행동 폭로를 계기로 새삼 재조명되는 상황이다. 결코 조직폭력배나 불법 사업체도 아닌, 사회 정의를 수호해야할 집단이자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민을 다룰 문인들까지 약자에 대한 폭력이 그처럼 일상적이었다는 것은 우리사회가 어느 정도까지 병들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다행히 이런 상황이 공론화된다는 점에서 그나마 개선에 대한 희망을 보게 된다.

우리사회 산업구조에서 보면 농축산업은 약자에 속한다. 중공업 내지 첨단 산업에 대한 1차 산업 홀대의 역사는 이미 반세기를 넘었다. 다행히 먹거리를 생산하는 전통 기반이라는 점에서 그나마 국가 지원이나 보상 등에 있어서 비교적 배려 받고 있을 뿐이다. 국가의 표면적인 배려 이면에는 출구 없는 농축산업 현장의 분위기가 반영돼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보니 농축산업에서의 정부 지원과 보상금 수령에 있어서 또 다른 갑과 을의 권력 구조가 눈에 보인다. 세금으로 이뤄진 정부 지원을 특정 집단이 과도하게 가져가게 되고 다수를 차지하는 실질적인 약자들은 구체적 지원이나 보상에서 별로 혜택 받지 못하는 구조이며,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불가능한 체제이자 문화다.

제한된 규모의 농축산업 부문에서 자본을 가진 자들에 의한 기득권과 이들이 정부와 함께 만들어 내는 부익부빈익빈 구조는 다수의 땀 흘리는 소규모 농축산인들에게 미래희망을 빼앗은 것은 물론 농촌 건강성 회복에 장애가 된다. 이에는 거대 농협이나 대규모 농축산 기업, 유통업자나 외지 농지 소유자 등도 그리 될 수 있으며 이들의 동맹과 더불어 이를 방치하는 정부 부처도 그 예외는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벌 총수가 다양한 범죄행위로 구속되더라도 그 처벌이 사회 약자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임은 최근 탄핵받은 정권과 궤를 같이 했던 삼성 사례에서 잘 나타난다. 농촌 사회에서조차 자본이 갑을 관계의 축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울지 몰라도 이에 안주한다면 건강한 농축산인 양성과 더불어 국내 농촌 문화 형성은 불가능에 가깝다.

조선시대 기록에도 있듯이 뜻있는 이들의 탄식을 자아낸 농촌에서의 가진 자들의 악질적 착취는 역사적으로도 유명하다. 이는 현대사회에서도 그리 변하지 않았다. 사회에서 배려 받지 못하는 취약 부문으로서의 농축산업 부문이 이를 극복하고, 고령의 농업 인구가 젊어지며 미래 국내 식량 기반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내부의 갑질 문화 척결과 함께 다양한 이해집단 간의 수평적 문화 형성에도 힘을 모아야 한다.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 각종 자유무역협정이 나라의 살 길로서 제시돼 장기간 국내 산업구조에서 을의 위치에 선 국내 농축산업의 입장에서 보면 현 상황에 대한 문제 해결로서 외부에 대한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접근될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지만, 자체의 건강한 체질개선이 병행된다면 더욱 힘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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