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농사가 와 이렇게 돼삣노”

[ 르포 ] 경남 진주 시설 청양고추 재배농민 박갑상씨
20년 전 시작한 400평 하우스 농사 2천평으로 늘려
청양고추 가격 2년 째 대폭락 … 하우스 늘어 시장 ‘혼란’

  • 입력 2018.02.09 11:19
  • 수정 2018.02.09 11:51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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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지난 5일 경남 진주시 대산면의 한 시설하우스에서 박갑상씨가 청양고추를 수확하고 있다. 2년 연속 폭락한 청양고추 값에 박씨는 “농사짓는 게 꼭 도박하는 심정”이라며 “하우스 농사는 언제 죽어도 죽을 일만 남은 셈”이라고 말했다. 한승호 기자

“아무리 하우스 고추 값이 없다 해도 시세가 이 꼴은 아니었다. 빚은 갚고 살았으니까. 근데 작년 수확 끝나고는 농협 빚조차 못 갚을 지경이 됐다. 게다가 먹고는 살아야 할 것 아닌가. 빚이 빚을 물고 가는 기라.”

올해 20년차 하우스 농사를 짓는 경남 진주 대산면 농민 박갑상(54)씨가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작년 3월부터 하우스 고추 값이 대폭락을 해 결국 진주 주산지에서 ‘산지폐기’라는 초강수를 둔 끝에 출하량을 조절해 나갔다. 

그런데 올해는 작년보다 더 어렵다. 작년에는 초반 시세가 10kg 1박스당 6~7만원 선을 유지하다가 2~3월에 값이 곤두박질쳤는데 올해는 아예 초반부터 박스당 2만원, 바닥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박씨는 20년 전에 금산면에서 400평의 하우스를 짓고 고추 농사에 입문했다. 농사를 시작할 때부터 ‘하우스 농사는 이제 환갑’이라는 말을 들었다. 전망이 밝지 않다는 푸념 섞인 비유였다.

“그 무렵이 단동하우스에서 폭이 넓은 큰 하우스로 넘어오는 시기였고, 자동화 시설을 들이고 대형화 되는가 싶더니 고추 수확량이 급증했다. 엄청났다. 1998년 무렵에서 2000년도가 딱 전환기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으니 하우스 농사는 80살은 넘은 거 아닌가. 언제 죽어도 죽을 일만 남은 셈이다.”

하우스 농사도 이제는 끝물이라는 주변의 말을 듣고 시작한 400평 농사에 의욕을 다 쏟아 부었다. 하지만 1년차 고추 농사가 끝나니 빚이 딱 300만원 생겼다. 2년 차에도 300만원의 빚이 생겨, 3년차엔 규모를 키워 1,000평 농사를 시작했다. 혁신도시 지정으로 10년 전 이곳 대산면으로 이주한 이후 2,000평으로 두 배 늘렸다.

“농사 많이 지으면 일에 치여 먼저 죽는다고, 부부가 사람 안두고 감당할 수 있는 500평 농사가 딱이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그것 갖고 애 셋을 키우는 일은 불가능했다.”

결국 규모를 키우고 수확기에 사람을 고용해 농사를 짓고 있지만, 작년과 올해 연이어 값이 폭락하니 고추 농사 20년 이력도 요령부득이다. 아무리 농사의 달인이라 해도 이 시기에 경남 뿐 아니라 호남지역에서까지 고추가 밀려드니 생산비를 건지는 시세란 애시당초 기대할 수 없는 구조가 됐다는 것이 박씨의 설명이다.

나락농사 안되니 전국에 하우스 넘쳐

진주, 밀양 등 서부경남 지역은 하우스 고추 주산지다. 겨울철 판매되는 고추의 90% 이상이 서부경남산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독자적인 시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전라도 지역을 비롯해 강원도 지역까지 하우스가 늘면서 고추 시장도 만성적인 공급과잉 상태다.

“과거엔 진주지역이 11월에 고추모종을 정식해서 2월부터 수확했고, 우리 수확이 시작되면 호남지역 고추가 시장에서 들어가는 자연스런 흐름이 있었다. 지금은 그 흐름이란 게 완전히 깨졌다. 전라도 고추가 1,2월까지 시장에 나오다 보니 난방비가 더 들어가는 서부경남은 감당하기 힘들다.”

구조적 문제가 시설 고추 가격폭락의 진원지인 셈이다. 진주지역의 정식시기도 점차 빨라지고 있다. 박씨는 “처음 농사할 때만 해도 11월 중순 정식이 일반적이었는데 이제 진주에서 이 시기에 고추모를 심는 농민은 없다. 11월 초, 10월 말까지 앞당겨진다 싶었는데, 지금은 8월에 정식을 하는 집이 상당수다. 시세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루라도 빨리 수확을 하면 가격이 유리할 거라는 조바심, 시세변동 폭에 대한 불안감이 만든 ‘조산’이다.

게다가 쌀값 소득이 형편없다보니 전라도 김제, 나주평야 등에도 하우스가 늘기 시작했다. 전에는 고추 수확기가 맞물리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서부경남 지역의 조기 정식과 호남지역의 늦은 수확이 충돌하며 값을 깎아먹는 형국이 된 것이다.

“정식을 할 때 올해 고추재배 물량을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국가적인 콘트롤타워가 전혀 없다. 사전에 재배면적이 많다 싶으면 농민들도 대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건 수확할 때 값이 폭락하면 그때서야 아, 많이 심었구나 확인하게 된다. 농촌경제연구원 고추 재배 면적조사도 맞지 않고…, 꼭 도박하는 심정이다.”

최근 청양고추 값이 좀 올랐다는 소식이 나오지만, 물량이 예년의 5분의 1도 안 나와 역시 적자다.

“맹추위에 고추 생산량이 완전히 줄었다. 예년 같으면 지금 이 시기 농협공동선별장에 일이 밀려서 다음날까지 작업을 하곤 했는데, 요즘은 오전 내에 작업이 끝난다.”

청양고추는 10kg 1박스에 평균 6만원은 해야 생산비를 감당하는 수준이다. 올해는 수확초반인 12월에 2만원대, 1월에 3만원대 최저치를 밑돌 뿐 아니라 50~60박스를 출하하던 물량도 고작 10~20박스에 그친다. 

박씨는 2년 연속 폭락하는 고추값이 상시화 될까 우려하던 끝에 한마디 툭 내던졌다.
“6.25때만큼 힘들다. 하우스 농사가 와 이렇게 돼 삐릿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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