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의 겨울농사 분투기

하우스 급증에 농산물값 폭락 … 혹한으로 출하량까지 줄어

  • 입력 2018.02.09 11:18
  • 수정 2018.02.09 11:47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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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다.” 경남 진주에서 청양고추를 재배하는 박갑상씨는 쉽사리 말문을 열지 못했다. 2년 연속 폭락한 청양고추 가격에 힘겨운 현 상황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그의 얼굴 표정은 굳어있었다. 한승호 기자

경남지방의 하우스 농사가 매년 최악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해가 제일 어려운 줄 알았던 청양고추 농민들은 올해 가격 폭락에 답답한 속을 끓이고 있다. 내년엔 더 힘들 거라는 게 농민들의 이구동성이다.

농민1.

경남 진주에서 하우스 청양고추 농사를 짓는 김치한씨는 2년 연속 폭락한 고춧값에 하우스 최저온도를 18℃는 유지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11℃까지 낮췄다. 3년 전과 비교해 기름값이 차 한 대당 100만원 이상 올랐다. 결국 12월 초 청양고추 하우스 한 동(750평)을 갈아엎고 감자를 심었다. 

김씨는 “감자는 비닐만 덮어줘도 되니 가온도 안하고 인건비도 안 든다”고 말했다. 최근 진주에 청양고추에서 품목을 바꾸는 농민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6년 전에 700평 하우스 한 동으로 청양고추 농사를 시작한 김씨는 현재 4,300평 농사를 짓고 있다. 규모가 큰 만큼 빚도 폭증한다. 

그는 “고추값 폭락에 농민들이 지난달 경남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지역뉴스에나 나올까, 전국 보도는 꿈도 안 꾼다. 농민들이 못살겠다고 머리띠를 묶는데 정부가 이렇게 등한시 할 수 있냐”며 쓴소리를 연거푸 했다. 

이어 “전라도 지역에서 하우스 농사 견학을 많이 왔었다. 지금은 지자체 지원받아 하우스 농사를 시작하겠지만 4~5년 뒤 똑같은 문제가 반복될 게 분명하다”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농민2.

진주시 금산면의 농민 정동석씨는 열대작물 ‘파파야’를 청양고추 대체작목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진주에서 잘 심지 않는 백다다기 오이도 키운다. 그는 출구가 없는 한 어떤 하우스 작물을 심어도 가격문제는 악순환이 된다며 “나라도 고추농사를 짓지 않아야 시장에 일말의 숨통이 트이지 않겠나하는 생각이다”고 말했다.

파파야 하우스를 내년에 한 동 더 늘리기 위해 한켠에선 씨앗을 싹 틔우고 모종을 키우고 있다. 심은 지 꼭 1년이 된 파파야는 하우스 천장까지 닿을 만큼 쑥 컸지만 심는 시기를 맞추지 못해 생각만큼 열매가 달리지 않고 있어 더 지켜볼 심산이다.

정동석씨는 ‘모험정신’으로 원예특작, 열대작물 등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젊은 농민들 중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열대작물 생산자조직을 꾸릴 계획이다.

농민3.

김용철씨는 1,800평 하우스 농사를 10년째 짓고 있다. 전반적으로 청양고추 수확이 좋지 않지만 특히 5년 사용이 가능한 하우스 필름으로 교체한 뒤 더 애를 먹었다. 필름 자체에 하자가 있어 하우스 안에 물이 뚝뚝 떨어지다 보니 작년과 비교해 고추 출하가 없다시피 했다. 업체와는 필름 교체, 교체시 드는 인건비 등을 받는 선에서 끝을 맺었다. 하지만 올해처럼 시세도 좋지 않은데 설상가상 필름 재시공까지 하느라 손해가 막심하다.

“청양고추 출하를 못한 손해까지 보상받는 게 당연하지만 농민은 약자다. 보상문제를 몇 년씩 끌고 가다간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말끝을 흐렸다.

김씨는 청양고추 생산자 조합에 기대를 걸고 있다. 서부경남 시·군지역 하우스 농가대표들이 머리를 맞대 생산량과 가격폭락 등을 사전방지할 자구책이 나오면 좀 낫지 않겠냐는 생각에서다.

“사실 농협이 앞장서면 가장 수월하다. 파종부터 데이터를 뽑고 출하시기를 조절해 나가는 일만 해도 지금처럼 청양고추가 헐값이 되진 않았을 것 같다.”

반면 설을 앞두고 ‘농산물 값 오름세에 장보기가 어렵다’는 틀에 박힌 기사가 여기저기 또 등장하고 있다. ‘한파에 급등한 채소값, 파격세일’에 나선 대형마트 전단지도 소비자 시선을 이끈다. 농정조차 소비자 우선주의다.

하지만 엄동설한의 계절, 밥상 위에 오른 싱싱한 채소는 농민들의 한숨 속에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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