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의 농민은 에너지 농사가 가능한가?

김훈규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자문위원(거창군농업회의소 사무국장)

  • 입력 2018.02.05 16:26
  • 수정 2018.02.05 16:28
  • 기자명 김훈규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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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규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자문위원(거창군농업회의소 사무국장)

“독일 농촌에서 어렵지 않게 마주한 것은 ‘바이오가스’ 시설이었다. 가족 농가뿐 아니라 협동조합 형태의 대규모 농장, 독일 남부 괴리스리트 같은 농촌마을에서도 둥근 지붕 모양의 바이오가스 시설을 많이 볼 수 있다. 농민에겐 에너지를 수확하는 또 하나의 땅이라 불리는 시설이다.”

한국에서 농업·농촌을 지원하는 어느 공익재단이 주최한 해외연수에 동참했던 언론사 기자의 취재수첩을 옮긴 내용이다. 기자는 독일 농촌의 10가지 특징을 나열했는데, 그 중에서 “‘공원 속 도시’라 불리는 도심보다 농촌이 훨씬 깨끗하다. 소똥과 옥수수 발효로 생긴 가스로 전기를 생산해 부가수익을 올린다. 초지 보존, 농촌 경관 관리, 재배 작물 다양화 등 환경에 기여하는 농가에 녹색직불금을 추가로 준다” 등의 내용은 우리 농촌의 지향점을 시사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었다.

농촌에서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과정과 그 주체에 대해서 관심이 갔다. 농촌지역과 마을 안에 있는 농가의 시설에서 소똥과 옥수수 등을 발효시켜 생긴 가스를 이용해 전기를 만들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열로 끓인 물을 긴 파이프로 운반해 마을 곳곳의 난방도 해결한다고 했다. 농가는 매일 쏟아지는 소똥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그것으로 전기까지 만들어 상당한 수입도 거둔다. ‘정부의 방침’을 따라 지역 전력회사가 바이오가스로 생산한 전기를 비싼 값으로 20년간 매입해주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에너지를 수확하는 농사가 농민들의 소득원을 지탱하는 ‘제2의 다리’가 돼주고 있다는 절묘한 표현을 썼다. 재생에너지 시설 가운데 농민의 소유 비율이 증가 추세라는 것은 꼭 듣고 싶었던 이야기다.

우리의 농촌에도 재생에너지와 관련해서 정부의 방침이 녹아들고 있고 심지어 ‘영농형 태양광 모델’의 도입까지 이야기가 전개됐다. 태양광 등 대규모 재생에너지 시설의 허가 및 소유권자와 설치물의 위치, 추진과정을 들추면 순조롭고 긍정적인 이야기 보다 갈등사례로 소개되기 일쑤다. 법대로 아무런 문제없이 추진하겠다는데 주민들의 반대와 온갖 훼방으로 진행이 어렵다는 시행자와, 우려되는 위해성 때문에 절대로 서명을 해줄 수 없다는 주민들이 한날 한시에 지자체 담당공무원의 책상 앞에 나란히 버티고 서있기도 한다. 농지를 활용한 농민들의 지속가능한 소득기반 확충, 농지와 경관과의 조화, 탈핵을 위한 재생에너지 정책의 확대 같은 순기능이 모조리 묻혀버렸다.

재생에너지 정책과 그것을 대하는 농민들의 마음, 농촌의 여건과 환경이 독일 등 유럽의 현실과 상당한 괴리가 있지만, 우리네 지역 마다 마을 마다 번지고 또 덩달아 유발되는 이 다양한 갈등의 사단들을 ‘장(醬)’ 보다 무서운 ‘구더기’로 치부할 순 없지 않은가. 그 지역에 거주하는 농민이 주체였으면 좋겠다. 농지를 지키고 농촌의 경관과 환경을 유지하는 정책의 지지를 받으며 지속적인 농가소득에 보탬이 되도록, 대안을 고민하고 끊임없이 토론하는 주민 간 협동의 산물로 추진되는 것은 여전히 말만 쉽고 실현은 요원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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