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이런 식으로 풍력발전 들이지 말아야”

‘갈등 해소’하고 풍력발전기 들였다는 경남 의령 가보니
막을 방법 없어 받아들여 ... “그래도 공동체는 지켰다”

  • 입력 2018.02.04 21:59
  • 수정 2018.02.04 22:32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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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경남 의령군 가례면 갑을골 봉림마을에서 바라본 한우산풍력발전단지. 가장 가까운 민가에서 발전기까지의 거리는 600여m에 불과하다.

경상남도 의령군 가례면 ‘갑을골권역’. 한우산·매봉산·자굴산이 감싸 만든 분지에 4개 마을이 모여 제법 큰 부락을 형성한 곳이다. 이곳을 찾았던 퇴계 이황이 마을과 하천의 모양을 ‘갑을(甲乙)’로 묘사하고 ‘가례동천’이라며 아름다움을 기린데서 지명이 유래됐다.

유서 깊은 이 고을은 2010년대 들어 한우산·매봉산 일대 0.75㎿급 풍력발전기 25기가 설치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참 동안 시끄러웠다. 초기에는 풍력발전에 대해 알려진 바가 별로 없어 마을에서 크게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발전기 설치로 인한 소음 피해 사례 및 산사태 위험이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보고되자 마을 주민들은 거세게 반대에 나섰다. 갑을골에선 지난 2003년 태풍 매미로 산사태가 나 6명의 주민이 사망한 바 있다.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주민들은 제대로 된 영향평가를 요구하며 건설이 시작된 현장에 피켓을 들고 나섰다가 업체로부터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돼 경찰 소환조사 대상이 되기도 했다.

“우리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면서 보상을 받는 선에서 마무리 짓기로 의견을 모았어요. 주민설명회니 뭐니 대충한 걸로 이미 행정 허가가 다 떨어졌는데 우리들이 그걸 무슨 수로 막겠어요.”

장명철 한우산풍력반대대책위 사무국장은 발전기가 들어서는 걸 막을 수 없을 바에야 현실을 받아들이고 타협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명성 높은 마을공동체가 찬반 갈등으로 파괴되는 것만큼은 막고자한 것이다.

산사태로 무너졌던 그 산자락 바로 위에 설치된 발전기들은 갑을골 전역에 소음을 뿌린다. 주민들은 이에 대한 보상으로 운영업체로부터 총 14억원을 받았다. 남은 평생 들어야하는 소음에 대한 대가가 가구당 평균 50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제때 지급되지 않아 법정 공방까지 간 끝에 지난해 9월에야 받아낼 수 있었다. 장 사무국장은 합의서에 대해 변호사 공증을 받아두지 않았더라면 정말 어떻게 됐을지 몰랐다며 군의 무관심과 업체의 부덕을 비판했다.

갑을골을 찾은 지난달 30일에는 바람이 강하지 않아 3~4기만이 가동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발전기가 가동할 때 나는 특유의 낮은 ‘윙-’ 소리는 분명히 들렸다. 가장 가까운 민가와 발전기 사이의 거리는 1km도 채 되지 않았다.

“지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밤이 돼 조용해지면 더 크게 들리고,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에는 ‘휙, 휙, 휙’하고 날이 도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야.”

갑을골 4개 마을 중 발전기와 가장 가까운 봉림마을에서 싸움소를 키우는 한 농민은 ‘소리’를 듣고 있자면 자연스레 나라와 행정, 그리고 사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계속해서 샘솟는다고 토로했다. 더 이상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이런 방법으로 전기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름을 묻자 손사레를 친 뒤 마을 어디를 가도 똑같은 말을 해줄 거라며 축사로 들어가 버렸다.

“이장인 내가 환갑이고 주민 대부분은 칠팔십이 넘었어. 우린 싸울 힘이 없어. 들어온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앞서 만난 농민처럼, 최태준 봉림마을 이장은 국가의 전기 생산도 중요하지만 ‘민’, 즉 사람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정책이 추진돼야한다고 말했다. 한편으론 풍력발전기가 추가 설치된다는 말이 또 들린다며 불안감도 내비쳤다.

‘의령 군정의 성과’, ‘갈등 해소 사례’ 등으로 소개되는 한우산 풍력발전기는 결국 합의의 탈을 쓴 강요의 과정을 거쳐 진행된 것과 다름없었다. 주민들은 사실상 선택의 권한이 없었고, 마음 한쪽엔 여전히 분노와 무력감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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