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하는 자가 농협의 주인이다

  • 입력 2018.02.04 18:19
  • 수정 2018.02.04 18:24
  • 기자명 김순재 전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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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기적으로 짧았지만 월요일에 집을 나가서 금요일에 귀가하는 일정들을 몇 달 보낸 적이  있었다. 가족들은 걱정 없이 다니라고 했지만 중늙은이가 되어서 그런지 농사짓던 나로서는 밖으로 돌아다니니 집 일이 늘 걱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내 전화가 울렸다. 전화기를 보니, 함께 농사짓는 큰아들이었다. 나는 첫마디가 ‘여보세요?’가 아닌 “무슨 일이냐?”라고 물었다. 아들을 조금 아는데 그 녀석이 그 시간에 전화할 좋은 일은 결코 없었다. 아들은 울면서 ‘내 아내가 쓰러졌다’고 알려 왔다.

필자는 그 시간에 강원도 홍천에 있었다. 일행을 깨워서 차를 타고 창원으로 내려왔다. 이웃들의 도움과 병원의 적절한 조치로 원만하게 치료됐고 큰 탈 없이 마무리 됐지만 그 뒤로 필자는 내 주변에서 갑자기 오는 전화에 대해서 심각한 두려움을 가지게 됐다. 누구 집에 혼사가 있거나 출산 같은 좋은 일, 축하할 일은 급하게 전화로 오지 않으며 안 좋은 일들만이 긴급하게 전화로 온다는 것을 확연히 깨달았다.

 나이가 조금씩 들어서 그런지 걸려오는 전화들 중에서 ‘떡 갈라먹자’고 오는 전화는 없고 온통 걱정거리의 전화만 걸려오는 요즘이다. 그래서인지 번호가 저장되지 않은 분들의 전화가 오면 망설이다가 받는다. 전화기에 번호가 입력된 분의 경우 부재중 전화의 내용을 문자로 설명하지 않으면 내가 전화를 걸지도 않는다. 요즘 그만큼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

낯선 이들에게서 오는 전화의 대개는 농협에 대해서 물어볼 게 있다는 것이다. 대개 훌륭한 조합장과 깨어있는 조합원이 있어 농협의 사업이 잘 이뤄지는 곳에선 전화가 오지 않고 전국의 1,100여 농협 중에서 제일 골치 아픈 농협들만 전화가 오는 것 같았다.

나는 싸움꾼도 아닌데 농협을 ‘족칠’ 방법을 물어보니 환장할 지경이다. 아는 범위 내에서 원만한 해결방안을 알려 드리면서 어떤 농협들은 이익을 숨기기에 바쁘고, 어떤 농협들은 사고를 숨기기에 바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보하거나 도움을 청하는 내용들의 다수는 필자가 해결에 도움이 전혀 안되거나 조언조차도 하기 힘든 내용들이 많았다. 

 

금융사업이든 경제사업이든 사업의 활성화를 위해선 지역농협의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임직원, 조합원 간 관련내용을 공유해 중장기적인 대안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한승호 기자

조합장도 당장 어쩔 수가 없는 일들

 예를 들면 조합장을 막 시작할 때, 우리 농협은 예금이 1,240억원·대출이 870억원이었다. 인근 농협에 비해서 예금이자는 비슷했지만 대출이자는 거의 1% 이상 비쌌다. 통이 큰 농민들은 1%를 우습게볼지 몰라도 870억원의 1%는 8억7,000만원이다. 우리 농협의 대출이자가 비싸다고 해 당장 이웃 농협의 대출 금리에 맞춰 이자를 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운영이 안 된다. 기억으로는 조합장을 그만 둘 무렵엔 예금이 2,050억원·대출 1,650억원 정도였던 것 같다.

예금 조달 이자는 비슷해도 대출이자는 상당한 차이를 가지니 5년을 조합장 하면서 직원들이 노력해 상호금융의 기초를 거의 70% 성장시켰다. 그래도 여전히 대출이자는 농촌지역의 농협으로서는 부끄럽지 않아도 인근 도시 농협에 비하면 무려 0.7% 정도 높았다. 우스운 것은 대출 잔액 1,650억에 이자 차액 0.7%를 적용하면 이자 총 차액은 무려 11억5,500만원이라는 것이다. 

 어느 조합장이라도 조합장이 되고나서 금융 이용객들의 이익을 위해 당장 연차적-기계적으로 대출이자를 차곡차곡 내릴 수는 없다. 여윳돈을 가진 조직·사람을 찾아 예금을 늘리고, 예금이 늘어나는 액수만큼 법적인 기준에 따라 안전하게(?) 대출을 늘리면서 몸집을 불려 나가야하는 것이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금에 여유가 있어도 문제이고 대출이 부실해져도 문제이다. 예금을 늘리면서 운영을 위해 적정 예대비율을 지키는 게임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금융소지가 부실한 농촌 농협들은 일정정도의 예금은 갖고 있어도 적절히 여신을 발생시킬 소비자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들리는 이야기로 경남지역에서 여유(?) 예금이 있는 농촌 농협들이 여신규제 내용을 비켜가면서 연합해 000억을 대출했는데 일정정도의 부실이 발생했다고도 하고, 모 농협은 관외에 00억을 대출했는데 상당부분이 부실화 될 거 같아서 합병이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예금을 받은 농협은 예금을 예치만 시켜도 안 되고, 관내에 대출할 적정한 조건이 안 되니 관외라도 무리하게 대출을 한 것이었고 이는 반드시 일정한 부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보여 진다.

위 내용들은 그 조직의 정관에 따라 엄밀히 따지면 규정을 위반 했지만 어쩔 수가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규모를 늘리지 않으면 조직의 유지가 힘들고, 규모를 늘리는 방식과 내용이 완벽하게 건전 상호금융을 유지하기는 힘이 든다는 것이다.

조합원이 대출이자가 높으니 내리라고 한다고 내려지는 것도 아니고, 예금을 늘리라고 한다고 해서 늘려지는 것도 아니다. 이는 협동조합이 중장기 계획 속에서 진행해야하는 사업인 것이다. 지역농협들의 금융 사업은 자체적으로 진행하도록 내버려 둬야하는지 전부 연합하는 과정을 거쳐야하는지 중장기적으로 흐름을 분석해봐야 할 내용으로 보인다.

현황 파악 및 중장기 대안 마련이 중요

어떤 농협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혹은 어떤 현안을 설명하면서 농민들이 상담전화를 하거나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농민들에게 쉽게 그 현안에만 매몰되면 안 된다고 부탁한다. 비슷한 경우는 많아도 똑같은 경우는 거의 없다. 

예를 들자면 예수금 700억원·여신금액 300억원 정도 되는 농협이 있는데, 대출이자가 너무 비싼데 ‘어쩌면 좋겠느냐?’고 물어보면 현실적으로 이 현황에서 답변할 것은 별로 없다. 그 농협이 당장 이자를 낮춰 받을 방법은 없다. 여신량을 늘리면서 수신량을 적극적으로 늘려 여신·수신 비율을 적정히 유지해야 하는 데 이게 시골이건 도시건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당장 이자를 낮추라고 해도 이는 점진적으로 해야 할 내용이다.

농민이 부담하는 이자를 당장 낮출 수도 없고, 농산물을 사고파는 경제사업을 적극하라고 해도 훈련된 인원이 없으면 교육-훈련만 해도 조합장 임기가 다 지날 판이니 당장 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할 수도 있다. 조합원의 요구가 늘어도 농협이 당면해 그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면 사업을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농협과 관련해서는 먼저 현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현황에 대한 공유와 인식이 낮으면 현장에서 충돌만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진다. 막말로 조합장은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데 다음 선거를 대비해서라도 조합원에게 도움 되는 사업을 하기 싫어할까?

 그래서 상담을 하거나 하는 과정에선 먼저 대상 농협의 현황을 파악하고, 그 내용을 공유해 중장기 대안을 세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필자가 조합장이었을 때의 일을 살펴 보면 농민조합원들에게 실망스러울 때가 매우 많다. 대표적으로 농산물 매취사업을 농협이 실시해 적자가 나면 농민은 모른 체 한다. 흑자가 발생하면 추가 정산을 요청한다.

물론 농협에서 사업을 계획할 때의 기조는 흑자로 계획한다. 그러나 농산물의 가격 흐름은 일정정도 예측만 할 뿐이지 공산품과 달리 근사치로라도 짚어 내기가 힘이 든다. 그 가격 변화의 폭과 시기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니 이익이 발생할 시 농가가 추후정산을 요구하거나 가격이 폭등할 시에는 계약 물량을 지키지 않으면서 손실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니 선출직인 조합장은 대단히 강고한 입장을 갖고 있지 않으면 그 자리가 불안해서라도 사업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가 힘들다.

주변 조건이 만들어지면 많은 조합장들은 사업을 바르게 하고 싶어 한다. 농민들의 농산물도 잘 팔아주고 싶고, 농자재도 싼 가격에 공급하고 싶고, 예금 이자도 많이 주고 싶고, 대출이자는 낮춰 받고 싶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업을 위해서는 직원들의 자세도 매우 중요하지만 조합장을 비롯해 조합원들의 인식변화, 이해, 현황공유가 더욱 절실하다. 기본적으로 선출직인 조합장은 공약도 있었을 것이고 명예도 있으니 당연히 노력할 의지를 일정정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조건을 갖추는 과정은 매우 힘이 든다. 필자도 조합장을 하면서 낮에는 조합원을 설득하고 밤에는 직원들을 설득하는 많은 시간들을 가졌다. 기본적으로 직원들은 노동자-근로를 통해 임금을 받음으로서 일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일이 빡세도 임금을 더 준다면 일을 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 일부 그렇지 않은 직원들이 있더라도 대부분의 직원들은 준비된 사람들이다.

오히려 우리나라 농협의 최대 문제는 준비되지 않은 조합원이다. 당장 각 영농회별로 뽑았을 지역농협의 대의원부터 둘러보자. 좀 부끄럽지 않을까? 돌멩이 맞을 소리지만 우리 농협만 하더라도 필자가 느끼기에는 임직원보다는 조합원의 문제가 더 큰 것으로 보였다.

협동조합, 의견 공유 체계 구축해야

조합장 재직 당시 이사회를 통해서 출자배당 비율을 줄이고 이용고 배당의 폭을 넓혔다. 당장 엄청난 반발이 왔다. 지역에서 영향력이 높은 고액 출자자들은 조합장의 다음 선거 출마를 위협한다. 고령의 조합원, 국가유공자, 생활보호대상자 등을 제외하고도 이용고가 일정하게 도달하지 않는 조합원들에 대한 복지를 축소하니 금방 선거에 대한 협박이 들어왔다.

과거에 필요했던 사업이라도 자기 지역의 소형마트·금융점포 축소는 그 지역 조합원들의 집단 반발을 불러왔다. 지극히 실망스러웠지만 전체 협동조합의 생존과 전체 조합원에 대한 복무를 기준으로 볼 때는 불가피한 조치였음에도 자신과 자기 지역에 대한 조그마한 손실, 불편을 절대로 감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출하 농산물의 경량화 사업, 출하 농산물의 운송방식 등도 시절에 맞게 바꾸려면 그 하나하나에 엄청난 반발이 생긴다.

당시에 반발이 대단했더라도 시간이 지나 그 내용이 적절했다는 평가가 있더라도 누구하나 사과하는 사람조차 없는 것은 씁쓸하기도 하다. 조합장이 자기 이익에 집착하지 않으면 기회를 줘야 한다. 고의성이 없는 실패에 대해서는 직원에게도 너그러워야 한다. 선거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대립하고 있는 것은 결코 농협에 도움이 되지를 못한다.

어떤 농협이 관내가 아닌 관외의 농산물을 사들여 손실이 발생했다고 가정해보자. 필자가 보기에는 사업을 쉽게 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농협들이 있다. 관내의 농산물을 팔아가면서 지속적으로 공급하기에는 부족해 관외의 농산물을 사들여 판매하고 이익을 남기면 모든 것이 용서되고 유능한 조합장이 된다. 손실이 발생하면 규정을 어긴 것이 되고 조합장까지도 징계를 받는다.

규정을 어긴 건 똑같아도 이익이 나면 용서가 되고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평가되고 손실이 나면 처벌을 받고 변상을 해야 한다. 농산물을 유통시켜 이익이 발생하거나 손실이 발생하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똑같이 규정을 어겼음에도 이익과 손실에 대한 책임을 가혹하게 묻는다면 농협 사업은 힘이 들 수밖에 없다.

필자가 그런 적은 없지만 우리 농협의 예로 단감 수확기 막판에 저장창고는 여유가 있고 가격 상승이 예측되는데 공급물량이 부족하면 공급에 대한 신용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인근지역 농산물에 대해 욕심이 없겠는가. 올해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면 내년 사업은 또 어쩔 것인가. 

‘부엌에서 의견을 들으면 며느리 말이 맞고 안방에서 이야기 들으면 시어머니 말이 옳다’는 이야기도 있듯이 협동조합은 자주 의견을 나누고 이해하고 공유하는 체계를 지속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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