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공중전화⑤ 공중전화 부스에서 생긴 일

  • 입력 2018.02.04 18:02
  • 수정 2018.02.04 18:04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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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1980년대 들어와서는 전화 통화 체계가 자석식에서 전자식으로 바뀌었고, 전화기도 다이얼식에서 버튼식으로 바뀌게 된다. 또한 전국 광역화 사업을 추진해서 80년대 후반부터는 교환원을 거치지 않고 시외통화를 할 수 있는 DDD(Direct Distance Dialing, 장거리자동전화)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공중전화로도 전국 어디로든 통화를 할 수 있는 세상이 됨으로써, 우체국의 전화교환원이라는 직업이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서울 등 대도시의 경우, 공중전화를 관리하는 사람들만큼,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욕을 많이 얻어먹는 사람들도 드물었을 것이다. 

 공중전화는 걸핏하면 고장이 났다. 동전만 홀랑 삼켜버리고 통화가 한 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 경우 송수화기걸이를 몇 번 눌러보다가 “에잇, 나쁜 놈들!”하면서 부스를 나서는 사람은 그래도 신사 축에 든다. 남자들이라면 하다 못 해 주먹으로 전화통을 한 대 내지르거나, 송수화기를 제 자리에 걸지 않고 거칠게 내팽개치기도 했다. 

 전화기 옆에 매달아놓은 전화번호부는 군데군데가 찢겨나갔고, 심야에 취객이 부스 안에다 소변을 내지르고 가는 바람에 다음 날까지 지린내가 진동하기도 했다. 

 “술 취한 남자들이 문제였지요. 전화기가 고장 나지 않았는데도 통화 중에 속상한 일이 있으면 전화 부스를 구둣발로 내차고 하는 바람에, 아침에 나가보면 유리가 온통 박살이 나 있어요. 특히 IMF 구제금융 시기에 전국의 공중전화 부스가 가장 심하게 수난을 당했는데….”

 당시 서울전신전화국에 근무했던 하도식씨의 회고다. 하씨의 증언에 의하면 IMF 사태가 시작됐던 1997년도에 전국에서 13만6,000 군데의 공중전화 부스 유리가 파손됨으로써 역대 최고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 되었다. 그렇게 보면 직장에서 밀려나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던 사람들이나, 창졸지간에 부도를 당해서 실의에 빠졌던 자영업자들에게, 죄 없는 공중전화 부스가 화풀이 대상이 돼줌으로써, 그나마 시대의 아픔을 맷집으로 품어 안았던 것 아닐까?

 이후 통유리로 돼 있던 공중전화 부스는 모두 알루미늄 새시로 교체되었다. 그뿐 아니었다.
 “어느 때 부턴가 시내 여기저기 공중전화에서 수화기의 유니트가 사라지고 없다는 신고가 부쩍 많이 접수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수소문을 해보니, 당시에 중고생들이 수화기 속의 유니트를 뜯어다가 광성라디오를 조립하는 데에 쓴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공중전화의 수화기를 돌려서 열지 못하도록 고정하는 조치를 취했지요.”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시민들의 공중 질서의식을 한눈에 구경할 수 있는 장면은, 시내의 각 공중전화에서 수거한 동전을 쏟아놓았을 때 펼쳐졌다.  

 “자루에서 동전을 쏟아놓으면 참 볼만했지요. 해외여행 중에 남은 외국동전이 나오는 것이야 그저 애교수준이에요. 동전 크기만큼 도려낸 함석조각이 들어있는가 하면, 철사 토막도 나오고, 동전에 구멍을 뚫고 실을 매달아 놓은 경우도 있었어요. 아마도 동전을 실로 묶어서 투입구에다 집어넣은 다음에, 통화를 하고나서는 실을 잡아당겨서 도로 꺼내려고 했겠지요. 그러다 고장이 나면 전화국의 수리 기사가 또 출동을 하고….”

 뿐만 아니라 시내의 여러 공중전화 부스들을 순회하면서 전화기의 동전통을 털어가는 전문 절도단이 출몰하기도 했다. 그 바람에 사법권도 없는 전화국 직원들이 불광동의 어느 전화 부스 뒷골목에서 조를 짜서 잠복근무를 하기도 했다. 

 이후 카드식 공중전화가 등장하면서 공중전화 사용 문화에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그 역시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 공중전화 카드는 자석이 근접하면 마그네틱 선에 입력된 정보가 날아가 버리는 취약점 때문에, 전화국 직원들이 민원을 처리하느라 꽤나 시달렸지요. 여성의 핸드백 접착부분이 자석으로 돼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일이 생긴 겁니다. 이제 다 옛날 얘기가 됐지만.”

 그래, 이제 다 옛날 얘기가 되었다. 풍속사 박물관의 진열대에나 전시해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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