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아프냐? 나도 아프다

  • 입력 2018.02.04 18:00
  • 수정 2018.02.04 18:02
  • 기자명 김정열(경북 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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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다는 것은 말이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몸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입으로 하는 말만을 믿고 입으로 말을 해야 알고 말로 확인을 해야 알게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살다보니 말로써가 아니라 몸으로, 몸에서 나오는 기운으로, 몸에서 나는 냄새 또한 말임을 알게 되었다. 

김정열(경북 상주)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같은 영역에 있는 사람들끼리의 이야기다. 어디까지가 같은 영역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때로는 같은 영역인 사람인 것 같아 ‘말을 안 해도 알겠지’ 싶어 말을 안 했다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고 또한 받기도 했다. 아직 더 살아야 알게 되는 문제이다.

그러나 최근에 ‘이것’ 하나는 알게 되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은 오히려 몸에서 나오는 말을 알아채지 못 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 탓이 아니라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냄새를 맡지 못 해서이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남편, 입으로 말을 해야 안다. “아픈가요? 당신이 아프면 나도 아파요.”

며칠 전의 일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생전 처음 보는 사이일지라도 당신이 아프니까 나도 아팠던 경험, 그들이 아프니까 같이 있던 우리 모두가 아팠던 경험이 있었다.

지난달 24일부터 27일까지 서울에서 ‘비아캄페시나 동남동아시아 여성농민지도자 워크샵’이 열렸다. 일본,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등 10개국 여성농민들이 모여 각 국가와 조직 속에서의 여성농민들의 상황을 공유하고 여성농민들의 지역적 연대와 투쟁에 관한 논의를 하였다.

어느 나라 누구 할 것 없이 집과 농장을 떠나기 어려운 것은 모든 아시아 여성농민들의 상황이었기에 이렇게 모였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격스러웠고 흥분했다. 또한 시간 시간마다 참가자들의 열정과 에너지에 모두가 놀라웠고 그것을 우리가 똑같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경이로운 일이었다.

10개국 참가자들의 언어는 다 제각각이었다. 10개국 참가자들의 언어가 10개였다. 한국어, 일본어, 인도네시아어, 필리핀어, 태국어, 캄보디아어, 대만어 등등. 10개의 언어를 쓰는 10개 나라의 여성농민들, 그러나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던 공감, 소통. 말은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삶의 시간, 삶의 무게, 삶이 축적된 몸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우리들의 가장 뜨거웠던 시간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영하 17도까지 내려갔던 가장 추웠던 날이었다. 3년째 당신들의 터전과 마을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경북 성주 소성리를 방문했을 때였다. 통역하는 분이 한 명 있기는 했지만 20여명이 넘는 외부인들과 평균연령 80대인 마을 할머니들의 언어통역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만난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할머니들은 “이 멀리까지 와 주어서 정말 고맙다”며 눈물을 글썽이셨고 외국 참가자들은 “힘내시라”며 같이 눈물을 흘리며 손을 맞잡았다. 어떤 참가자는 자신의 조직 깃발에 자신의 언어로 응원의 글을 써서 드리기도 하였고, 어떤 분은 가족들의 선물이라도 살 양으로 멀리서 환전해 왔을 꼬깃꼬깃한 한국 돈을 내 놓기도 하였다. 무엇이 이들을 통하게 하였을까? 무엇이 이들을 손 맞잡고 울게 만들었을까?

같은 처지였기 때문인 것 같다. 강자에 저항하는 같은 약자의 처지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땅’-말로 다 할 수 없는, 생산수단 그 이상, 삶의 터전 그 이상의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 여성농민들이었기 때문에 땅을 지킨다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인 것을 알기 때문인 것 같다. 

“아프세요? 당신이 아프면 나도 아파요. 왜냐하면 나의 삶도 당신과 다르지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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