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공중전화④ 우리 마을이 공동전화로「통(通)!」했다

  • 입력 2018.01.26 16:56
  • 수정 2018.01.26 17:01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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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공중전화가 꾸준히 증설되어서 시민들의 통신에 어느 정도 숨통이 트여가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런 혜택을 기대할 수 없는 시골이었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벽지 촌락의 경우, 동네에 전화 가입자가 단 한 집도 없는 마을이 수두룩했던 것이다.

이상락 소설가

그래서 추진한 것이 ‘이동(里洞)단위전신전화취급소’ 제도였다. 다섯 가구 이상이 모여 사는 마을이면 어느 곳에나 전화 취급소를 설치한다는 방침이었다. 마을 이장이나 혹은 유력한 유지의 집에다 정부에서 전화 한 대를 가설해 주고, 마을 사람들 누구나 그 전화기로 걸기도 하고 받기도 하도록 하는 제도였다. 물론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니까 넓은 의미의 공중전화로 분류할 수가 있었지만, 걸려오는 전화도 받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도시의 그것과는 또 다른 형태의 공중전화였다.

시골 주민들에게야 외부와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전기도 들어가지 않는 궁벽한 마을에다 그야말로 ‘생짜로’ 전화를 가설해야 했던 체신부 선로반 직원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여남은 집이 살고 있는 마을에 전화 한 대를 가설해주기 위해서,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서 전신주를 수십 개, 혹은 100개가 넘게 심어나가야 했으니 그 고충이 오죽했겠어요. 당시에는 별다른 장비가 없어서 인력으로 다 했어요. 일정 간격으로 전봇대 꽂을 구덩이를 판 다음에 6미터짜리 전주를 앞에서 두 명, 뒤에서 두 명이 목도로 메고서 비탈언덕을 올라가고….”

당시 체신부 공무원으로서 전화가설 부서에 근무했던 하도식씨의 얘기다.

드디어 아무 마을에 이동단위전신전화취급소의 전화가 개통되었다. 개통식이 열리던 날, 면장이며 조합장이며 경찰지서장까지 몰려와서 축하를 하고…동네에 경사가 났다.

“아, 아, 이장이 알려 드리겄습니다. 동백나무 집 홍순표씨! 시방 서울 큰아들한티서 전화가 왔으니께 이장 집으로 속히 달려오시기 바라겄습니다!”

그 무렵 시골에서 살았던 사람이라면 동네 확성기를 통해서 흘러나오던 이런 방송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교환원을 통해서 걸고 받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 사업이 꽤 오랜 기간에 걸쳐서 진행됐으므로 아직 전화가 들어가지 않은 마을에서는 ‘취급소’를 유치하려고 방귀깨나 뀐다는 유력자를 배경으로 동원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국회의원 선거를 치를 때면, 아직 전화가 들어가지 않는 벽지 마을에 공동전화를 놔주겠다는 공약을 후보자들이 앞 다퉈 내놓았을 정도였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그 공동전화도, 이동단위전신전화취급소의 책임자 격인 이장한테는 이내 성가신 물건이 되고 말았다. 이장네 식구들이 들일을 나가느라 집을 비우게 되면 마을 사람에게 걸려오는 중요한 전화를 받을 수 없게 되고, 그에 따르는 주민들의 불평이 쏟아져 나왔다. 또한 확성기로 호출을 해도 전화 받을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이장은 아들딸을 논밭으로 보내서 사람을 불러와야 했다. 이동단위전신전화취급소 소장이라는, 처음엔 꽤 그럴 듯하게 보였던 그 직함이, 더 이상 자랑거리가 아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전화가 없던 마을에 공동전화가 들어감으로써 그 효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경우가 있었다. 서울 강남에 있는 지금의 신천동 일대가 예전에는 주민들이 채소를 가꿔 먹던 모래섬이었다는데, 어느 해인가는 장마철에 큰물이 져서 그 모래섬의 대부분이 물에 잠겼다. 농사일을 하던 사람들이 그야말로 위급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 곳에 공동전화 한 대가 설치돼 있었다.

“여보세요! 경찰서지요? 여기 밭에서 일하던 사람들 다 떠내려가게 생겼어요! 빨리 와서 도와주세요!”

이윽고 인근의 군부대에서 헬기가 긴급 출동하고…밭일하던 주민들을 모두 구조할 수가 있었다. 이동단위전신전화취급소의 그 공동전화는 꽤 힘이 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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