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임차농 보호를 위하여

  • 입력 2018.01.26 14:03
  • 수정 2018.01.26 14:04
  • 기자명 임영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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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8, 19, 31은 무엇을 나타낼까. 바로 임차인 보호를 위한 개별법의 법 조항 개수이다. 큰 숫자부터 보면 31개 조항으로 이뤄진 것은 주택임대차보호법이고, 19개 조항으로 이뤄진 것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며, 제일 적은 8개 조항으로 이뤄진 것은 농지법 중 임대차 관련 조항이다. 같은 부동산이라도 상가와 주택은 단순히 공간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지만 농지는 공간 제공뿐만 아니라 농사를 짓기 위한 중요한 생산수단이기도 하다. 농지는 단순한 생산수단의 일부를 넘어 농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그래서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이 소요되는 농업의 불가결한 요소이다. 하지만 부동산이자 생산수단으로써 주택과 상가와 비교해 그 중요성이 떨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농지법의 농지 임대차 조항의 수는 다른 법률의 4분의 1 내지 2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단순히 조항 수만 적은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냐고 하겠지만 내용 역시 다른 임대차 법률과 비교해 많이 부실하다. 예를 들어 농지법 제24조의 2에 따른 농지 임대차 의무기간은 3년에 불과하다. 공간 제공의 역할만 하는 상가건물도 법정 의무기간이 5년이고 임차인을 위한 권리금까지 법률로 정하고 있다. 농지는 부동산이면서 동시에 주요한 생산수단인 이중적 지위를 가진다. 특히 농업의 특성상 농지의 가치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수년간 비용을 들여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그렇다면 임대차 의무기간 3년은 임차인이 안정적으로 농업을 하기에는 턱없이 짧은 기간이다. 임차농 보호를 위해 아무리 못해도 농지 역시 상가건물처럼 법정의무기간을 최소 5년으로 할 필요가 있다.

<한국농정> 제788호 커버스토리에는 안타까운 임차농의 사연이 소개됐다. 임대인은 임차인이 경작하던 사과밭을 제3자에게 매매했다. 임차인은 매매로 인해 입은 손해에 대해 임대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일반 임대차 법리가 적용돼 패소했다. 2016년 현재 임차농의 비율은 58%에 이른다. 농민의 절반 이상이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다. 우리 헌법과 법률이 ‘경자유전’ 원칙을 천명하고 있음에도 현실에서는 예외적인 농지 임대차가 비일비재 하다.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농민 간 농지임대차가 위법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이러한 농민 간 농지임대차는 위법하므로 농지법에서 정하고 있는 임차인 보호조항도 적용되지 않는다. 만약 커버스토리의 안타까운 사례가 농민 간 임대차 계약으로 인한 것이라면 임차농은 완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농지법에 따른 정상적인 임대차라면 임차인은 임차등기 없이도 농지소재지 관할의 시·구·읍·면의 장의 확인을 받으면 임대인이 해당 농지를 매도해 제3자가 소유권을 취득하더라도 새로운 소유자에 대해서도 임대인과 동일한 조건으로 계약을 유지할 수 있다. 최소한 위와 같은 억울한 일은 당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 법원도 농지법을 위반한 임대차 계약에 대해서는 강행규정 위반으로 무효라고 보고 있다. 농민 간 둘 사이의 임대차 계약은 농지법에서 정하고 있는 예외적인 임대차 계약에 해당하지 않아 무효가 된다. 현실에 만연해 있는 농민들 사이의 임대차 계약은 모두 무효인 것이고 특히 임차농은 농지법에 정하고 있는 임차인의 권리조차 전혀 누릴 수 없는 암담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경자유전의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농촌의 현실을 모른 체해서도 안 된다. 사회적 약자인 임차농 보호를 위해 현실에 맞는 법 개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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