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씨앗판 대동여지도 만드는 사람들

토종씨드림의 토종씨앗 보전 노력 눈길
“정보 공유로 정부·기업 종자독점 막아야”

  • 입력 2018.01.19 20:53
  • 수정 2018.01.19 20:57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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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해 11월 23일 제주도의 한 농가에서 토종씨앗을 보전해 온 농민들로부터 씨앗 관련 정보를 수집 중인 변현단 토종씨드림 대표(오른쪽). 토종씨드림 제공

토종씨드림(대표 변현단)이 최근씨앗지도 작성 및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을 통한 토종씨앗 보전·보급 활성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토종씨앗을 갖고 농사짓는 농민은 전국적으로도 소수다. 각 도별로 평균 100~150명 정도이다. 그 씨앗이 어디로 갔는지, 누가 갖고 있는지도 구체적 파악이 안 된 상황이다. 이에 토종씨드림은 토종씨앗의 분포 상황 및 씨앗 보전 노력을 기울이는 농민을, 또 씨앗이 타 지역으로 가선 재배이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씨앗지도(일명 농가씨앗은행)를 만들고 있다. 토종씨앗판 ‘대동여지도’를 만드는 셈.

전남 곡성군에서 자연농 방식으로 농사지으며 토종씨드림 동료들과 황토가옥에서 지내는 변현단 대표. 그는 씨앗지도 작성을 위해 그 동안 전국 각지에 퍼진 토종씨앗 보전 농가 100여 곳을 직접 방문했다. 대부분 수소문해서 찾아가는 식이었다. 오랫동안 토종씨앗 농사를 지은 농민들의 농사현장도 보고, 애로사항도 듣고, 씨앗 수집 및 기록도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씨앗지도 작성의 가장 큰 이유는 씨앗을 농민의 손으로 보전하기 위함이다. 특정단체나 국가권력의 보관창고 대신 농민의 손으로 직접 토종씨앗을 기르고 팔 수 있는 ‘농부권’의 보장을 위해, 씨앗의 현황을 농민이 파악할 수 있는 지도를 만든다는 의미이다.

발품 팔며 각지의 농민을 만나는 건 힘든 작업이었다. 전국을 돌다 보니 본인의 농사도 제대로 관리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토종씨앗을 보전하는 숨은 농민들을 찾아내는 일은 토종씨드림 사람들에게 큰 보람이었다. 전남 장흥군의 이영동씨(본지 766호 <‘40년 토종종자 보전’ 외길인생> 참고)의 토종씨앗 보전 노력도 변 대표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나 때문에 이영동 선생님이 매스컴에 엄청 시달렸다”며 웃던 변 대표는 “토종씨앗 보전으로 (우리 농업의)씨앗 역할을 하는 분들을 찾아내는 게 보람있다. 그래서 한 농가라도 더 찾아가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토종씨드림은 토종씨앗의 보급·보전을 위한 민관협력을 농촌진흥청 등 관련 기관에 제안해, 지난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회장 김순애, 전여농)과 토종씨드림, 농진청과 전국 광역지자체의 친환경농업과 공무원 등이 모여 간담회를 열었다. 이때 모임에서 토종씨앗 보전 관련 정보를 공유한 뒤 정기적인 민관협력 간담회를 가지기로 했다. 이게 영향을 끼쳤는지, 각 도별 농업정책에도 토종씨앗 관련 정책이 반영되고 있다는 게 변 대표의 설명이다.

토종씨드림은 현재 씨앗지도 작성과 함께 씨앗 데이터베이스 구축 작업도 병행한다. 현재 약 5,500여점의 종자가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됐다. 이게 완성될 시 특정 씨앗이 어떻게 수집됐는지, 어느 장소로 어떻게 이동하고 품종 다변화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다음달 24일 토종씨드림 10주년 기념행사에서 1차 기획된 데이터베이스 내용이 공개되고, 공청회를 통해 이를 더 널리 알리겠다고 한다. 이날 행사에선 토종씨앗 수집매뉴얼 및 채종증식포 매뉴얼도 같이 공개된다. 변 대표는 지난해 12월 각 토종씨앗 품종별 농사를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를 소개하는 ‘토종농사는 이렇게(그물코, 2017)’란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변 대표는 “현재 농진청 일부 연구자나 종자기업에 의해서만 종자가 통제되는 상황이고, 현행 종자산업법도 농민의 종자 관할 및 판매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농진청과 종자기업들은 수익성 위주로만 종자 육종을 판단하니 맛의 획일화가 이뤄지고 종자는 정부와 기업에 종속되는 상황”이라 지적했다. 그는 “제약회사나 종자회사, 식품회사에 종속되는 상황을 벗어나 씨앗을 농민 손에 가게 할 때 그 문제가 해결된다”며 “무슨 정보든지 공개되면 정부나 기업이 종자를 독점하지 못한다. 이를 위해 씨앗지도 및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을 통한 농민의 토종씨앗 정보 공유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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