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우리는 접경지역에서 평화를 경작한다

  • 입력 2018.01.14 10:38
  • 수정 2018.01.14 10:42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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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접경지역. 남과 북의 대립이 그 어느 곳보다도 첨예하게 드러나는 공간이다. 남북 간에 조금만 긴장관계가 조성돼도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군사적 충돌을 걱정해야만 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접경지역 농민들은 불안감을 갖고서도 한편으론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간다. 그들은 남북이 더 이상의 갈등을 빚지 않고 함께 평화롭게 살길 바란다. 이에 대북전단 살포를 비롯한 대북 도발행위들이 있을 때마다 이를 반대하는 활동을 벌였다. 이 지면에선 ‘평화농사꾼’으로서 활약했던 농민들을 소개한다.

혈혈단신으로 대북전단 살포를 막다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민통선 내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전환식씨는 “고위급회담이 잘 성사되고 대화도 계속 이어져 6.15 정신에 따라 남북관계가 평화롭게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8일 전씨가 ‘임진강 6.15 사과원’에서 전지작업을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경기도 파주시의 민통선 내에서 사과농장을 운영하는 전환식(69)씨. 농장 이름부터 ‘6.15 사과원’으로 범상치 않다. 전씨는 이곳에서 20년째 사과 농사를 짓고 있다. 그를 남북고위급회담이 있기 전날인 8일 6.15 사과원에서 만났다.

전씨는 2011년 4월 일부 수구단체 회원들이 파주 임진각에서 15일에 대북전단 살포를 계획하고 있단 소식을 들었다. 전씨는 “당시 파주지역 이장단들도 대북전단 살포를 막기 위해 15일 새벽부터 모일 예정이란 이야기를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15일 새벽 6시, 전씨가 임진각에 도착했을 때 이장단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일부 시민단체 회원들이 와 있었으나 전단 살포 장소인 임진각 망배단 앞을 가로막은 경찰들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분노한 전씨는 가로막은 경찰들을 뚫고 망배단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이내 경찰들에 사지가 들려 끌려갔다. 당시를 회상하는 전씨의 목소리엔 여전히 노기가 가득했다.

“붙들린 뒤에도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며 ‘대북전단 살포 중단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유유히 전단을 살포하고 있었다. 기자들은 그 장면을 그저 카메라로 찍고 있었고, 그곳에서 전단 살포를 막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기가 막혔다. 붙들린 상태에서 발버둥쳐 빠져나와 근처 화단에 보이던 자갈돌을 던지며 항의하다 다시 붙들려 나왔다.”

당시 전단 살포는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의 주도하에 진행됐다. 그들은 대형 풍선에 북 체제를 비난하는 내용이 담긴 전단 20만장과 1달러 지폐 1,000장을 담아 날렸다. 풍선은 맞바람 때문에 대부분 북쪽으로 날아가지도 못했고, 심지어 그 중 한 개는 정반대 방향인 경기도 의정부시에 떨어졌다.

살포한 전단뭉치가 북쪽으로 날아가지 않고 남측 접경지역의 경작지에 떨어지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농민들은 이 때문에 농사에도 상당한 불편을 겪고 있다. 실제로 전씨의 농장에도 전단뭉치가 떨어진 적이 있다. 전씨는 “당시 입수한 전단”이라며 대북전단을 보여줬다. 대한민국 체제의 우월성과 북 체제 비난, ‘예수 믿으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전씨는 이후 2014년 임진각에서 다시 수구단체들이 대북전단 살포를 시도할 때도 저지행동에 나섰다. 이땐 파주 지역 차원에서도 대북전단 반대에 대한 공론화가 이뤄져, 이장단 및 지역주민들도 트랙터로 수구단체를 가로막으며 전단 살포 저지행동에 함께 나섰다.

대북 확성기 방송도 고역이었다. 그나마 전씨의 농장에선 소음이 덜하지만 최접경 마을인 대성동에선 엄청난 소음공해라 한다. 방송내용은 더 한심했다. “날마다 수시로 확성기 방송을 했다. 그나마 과수원 나무들이 우거져 소리를 막아주는 여름철을 제외하면 항상 시끄럽게 확성기가 웅웅거렸다. 나오는 방송내용도 60~70년대에나 나올법한 ‘넘어올 때 고급정보를 갖고 오면 몇십 달러를 준다’, ‘전차를 몰고 오면 얼마를 준다’는 식의 내용이다.”

전씨를 비롯한 민통선 내 농민들은 매년 봄마다 통일운동 원로들과 함께 통일기원 못자리 만들기 행사를, 가을에 사과따기 행사를 한다. 전씨는 다음날 남북고위급회담 결과를 고대하고 있었다. “고위급회담 성사로 분위기가 조성돼서인지 늘 시끄럽던 확성기 방송도 중단됐다. 아무쪼록 (대화가) 잘 풀려서 6.15 정신에 따라 남북관계가 평화롭게 개선되면 좋겠다.”

‘빨갱이’ 비난에도 평화통일 가치 전파

경기도 연천군에서 친환경농사를 짓는 박용석 임진여울영농조합법인 대표(오른쪽)는 “이번엔 북미 간에도 대화가 이뤄져 북미 간 수교와 평화협정이 체결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왼쪽은 박 대표와 영농조합에서 같이 일하는 김부진 사무실장.

경기도 연천군의 친환경농민 박용석 임진여울영농조합법인 대표는 2014년 10월 제대로 전쟁공포를 느꼈다.

그해 10월 10일, 수구단체들이 연천군 중면의 한 야산에서 풍선 23개에 약 132만개의 전단을 담아 북에 살포했다. 이에 북측에서 고사총 사격을 10여 차례 가했고, 그 반격으로 남측 군대에선 북측에 기관총 대응사격을 40여발 가했다. 자칫하면 제 2의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비화될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북은 이미 2011년부터 “대북전단을 계속 살포 시 대북전단 발원지를 조준격파하겠다”고 공언해 왔는데, 실제로 이때 조준사격을 가한 것이다. 당시 북측이 사격한 고사총의 실탄은 연천군 중면사무소 옆 민방공대피소에 떨어졌다.

당시 박 대표를 비롯한 연천군농민회 회원들은 ‘연천희망네트워크’ 의 성원으로 대북전단 살포를 방치했던 연천군청과 경찰서 등을 방문해 항의했다. 연천희망네트워크는 한반도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연천주민들의 연대체로, 농민회 외에도 민족문제연구소, 전교조 등의 성원들이 함께 한다.

박 대표 및 지역주민들은 그 이전에도 대북전단 살포 현장을 급습해 저지 시도를 한 적이 있다. 박 대표는 “당시 대북전단을 뿌리려는 자들의 허리춤을 잡고 어떻게든 살포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한참 보수단체 회원들과 실랑이를 벌였건만 당시 자리에 있던 연천경찰서 정보과 형사는 방관하고 있었다. 멀리 서울 노원경찰서에서도 경찰이 왔던데, 그들도 사실상 보수단체 회원들을 ‘에스코트(경호)’하고 있었다”고 박 대표는 증언했다. 그래도 농민들의 저지활동으로 당시 수구단체는 대북전단을 살포하지 못했다고 한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박 대표는 지역민들에게 평화통일의 가치를 알리는 활동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농민회 차원에서 각종 강연 및 통일관련 홍보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그 일도 쉽지 않았다. 2014년 10월의 전단살포 당시에도 박 대표는 연천군 이장단에게 전단살포 반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촉구했으나 거부당했다. 박 대표는 “당시 이장단 내의 지인마저 ‘좋은 얘긴데 농민회하곤 안 해’라며 거절했을 정도”로 연천군 내의 보수적 분위기가 심했다고 말했다.

연천군농민회는 전원이 연천군친환경농업인연합회(회장 이석희, 연천친농연) 회원이기도 하다. 몇 년 전 연천친농연 차원에서 학교급식에 친환경농산물 판로를 개척해 농가소득이 늘어날 기회를 열었음에도, 지역 농민들 중엔 ‘농민회와 엮인다’는 이유만으로 거절했다. 연천군청과 경찰서 등에선 지역민들에게 농민회에 대한 경계심을 은근히 부추긴다. 이에 연천군농민회에 대해선 아직까지도 ‘빨갱이’, ‘종북’ 등의 딱지를 붙이는 주민들이 있다고 한다.

그래도 정권이 바뀌면서 분위기도 점차 바뀌는 걸 실감한다. 연천희망네트워크 성원들은 최근 ‘통일의 바람을 지역사회에 불어넣자’는 의도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연천지부에 들어갔다. 정권교체 분위기에 맞춰 사실상의 관제조직이었던 민주평통 내에 들어가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려는 의도이다. 그 뒤 <개성공단 사람들> 저자인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 초빙 강연을 성사시키는 등의 다양한 사업을 진행 중이다.

박 대표는 “향후 ‘통일골든벨’을 비롯한 대중사업을 다각도로 진행하려 한다”며 “그래도 점차 우리의 활동에 동의하고 함께하는 주민들도 늘어나고 있는 게 고무적이다. 남북관계 개선이 잘 돼 연천주민들도 평화롭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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