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연쇄폭락한 시설하우스 채소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상황에 놓인 것은 청양고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격이 바닥을 맴돌면서 농민들의 험난한 겨울을 예고하고 있다.
겨울철 시설하우스 채소들은 통상 11~12월 생산비 이하의 낮은 가격으로 출하를 시작하더라도 생산량이 줄어드는 1~2월이 되면 상당히 좋은 가격을 받게 된다. 청양고추는 특히 이같은 양상이 두드러져 10kg당 3만원대에서 10만원대까지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내린다. 겨울 한 철 반짝 올라가는 가격으로 한 해 농사를 보전하는 것이 고추농사의 생리다.
그런데 폭락을 맞았던 지난해엔 이같은 생리가 완전히 무너졌다. 10kg당 3만원대에서 시작한 도매가격이 이렇다 할 반등 없이 오히려 점점 하락하며 겨울을 지나버렸다. 작목전환 및 신규취농이 청양고추에 몰리는 등 재배면적이 10% 이상 늘어난데다 지역별 출하시기가 겹친 탓이다.
올해는 더욱 분위기가 나쁘다. 도매가격은 지난해 말까지 10kg당 2만원대를 벗어나지 못하다가 올해 들어서야 겨우 3만원대에 안착해 있다. 정상대로라면 10만원을 향해 치닫고 있어야 할 시기인데 더 이상 올라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12~1월 출하면적이 6% 줄었지만 한 달 넘게 비가 오지 않을 정도로 일조량이 좋았고, 한껏 늘어난 단수가 출하면적 감소분을 상쇄하고 있다.
경남 진주에서 고추하우스를 하는 김용철씨는 “하우스 한 동 짓는 데 땅값 빼고 1억원이 들고, 비닐·난방비 등 지출액이 5,000만원이다. 출하 초기엔 2만~3만원이 나오더라도 한 작기 평균가격이 최소한 5만원은 돼야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진주와 밀양·창녕 등 경남지역은 우리나라 최대의 시설하우스 밀집지역이다. 차 한 대가 지날 만한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하우스가 빽빽하게 늘어선 풍경이 아득하게 이어져 있다.
그러나 최근 나주·김제·철원 등 전통적인 곡창지대에조차 이곳을 무색케 할 만큼 시설하우스들이 들어서는 추세다. 쌀값 붕괴가 도미노 효과를 불러와 시설하우스 채소도 만성 폭락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청양고추 네 동 농사를 짓던 진주의 정동석씨는 지난해 형편없는 가격 탓에 지원금 한 푼 없이 자비로 하우스를 조기철거했다. 올해는 두 동을 오이와 파파야로 작목전환했다. 파파야 재배는 행정의 도움을 받은 게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의 권유로 종자를 들여와 유튜브로 재배법을 공부한 것이다. “시설하우스는 어떤 품목으로 바꾸든 더 이상 도망갈 구멍이 없다. 정부나 지자체나 일손을 놓고 있는 마당에 기존 작물을 갖고 피터지게 싸우기보다 다른 탈출구를 찾아보려 했다”는 게 정씨의 설명이다.
농식품부는 아직까지 산지폐기 등 직접적인 수급대책은 준비하지 않고 있다. 다만 지난해 호남지역 청양고추 출하 마무리가 늦어진 것이 폭락의 큰 원인이 됐다고 판단, 최근 출하종료비 지원을 진행했다. 호남의 끝물 출하가 2월까지 이어지면 출하량을 늘리고 품위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12월까지 3억원의 예산을 투입, 73ha의 출하를 종료시켰다.
농식품부 원예산업과 한태성 사무관은 “경남 생산자조직의 자체적 하품 출하억제운동을 유도하고, 호남에 자금을 투입하는 한편 추후 홍청양을 가공업체에 공급하려 한다. 곧 날이 추워지면서 출하량이 줄어들면 1월은 방어할 수 있다고 보고, 2월 상황을 봐서 추가 대책을 준비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