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손님맞이

  • 입력 2018.01.12 15:05
  • 수정 2018.01.12 15:06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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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에도 산골짜기 우리집은 손님맞이로 분주했습니다. 시끌벅적하게 연말을 보내야 송구(送舊)하는 맛이 제대로 나는 모양인지, 술자리와 장구장단에 가무까지 곁들인 걸쭉한 해넘이 자리가 꾸며졌습니다.

구점숙(경남 남해)

요즘에도 그렇게 즐기는 사람들이 있냐겠지만 손님들 중 일부가 음주가무파가 있어서입니다. 그러다보니 융숭한 대접이 아닌데도 외딴 우리집이 연말모임의 최적지로 꼽힙니다. 와 주는 것으로도 고맙고 여럿이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즐거움이 있으니 마다않고 환대했습니다.

대개의 약속이 그렇듯 모임날짜가 잡히면 그때부터 손님맞이 계획으로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청소며 식단, 잠자리 등등 모든 것에 대해 사전에 그림을 그려야 하니까요. 게다가 시골인심은 돌아가는 길에 손에 쥐어줄 것까지 계산을 하게 마련입니다.

주 먹거리는 참석자들이 각자 부담을 져서 준비하므로 준비에서 제외되지만 밑반찬 준비는 물론이고, 손님을 맞는 측으로서의 예의 상 매력적인 먹거리 하나 정도는 장만하는 것이 인지상정인 바, 장보기가 그 다음 일정입니다.

다음으로 집안 곳곳을 청소합니다. 현관 밖은 남편이 담당하고 집안은 곧 나의 일입니다. 화장실이며 소파 밑, 싱크대의 물때까지 대청소를 하느라 부산을 떱니다. 미뤄뒀던 대청소를 하는 시원함에 이런 정도는 즐거운 일로 여겨집니다. 문제는 손님이 오고 나서 부터입니다.

같이 즐겨야 할 모임이건만 어차피 손님시중을 들어야 할 누군가가 있어야 하니, 된장이 떨어지거나 동치미를 찾으면 벌떡 일어나는 것이 안주인인 내가 됩니다. 셀프 시스템을 만들면 되지 않냐구요? 그러게요. 그런데 어찌 손님더러 남의 집 장독대를 뒤지게 하겠습니까.

같은 손님일 때도 이러하고 전적으로 남편의 손님이 왔을 때의 대접도 그러하니 역으로 나의 손님이 왔을 때 음식이며 다과대접을 남편이 해준다면? 더없이 좋겠지요. 유붕이 멀리서 방래하는 즐거움에 남녀가 따로 있겠습니까?

그런데 손님대접의 일사분란함이 훈련돼 있지 않았으니 가당치않은 일이지요. 무심한 듯 착착 진행되는 손님맞이가 실은 고도로 훈련되고 집중하는 까닭에 가능하다는 것을 막상 해보면 알게 될 테니까요. 해서 친한 언니는 오랜만의 방문에 반드시 밖에서 밥을 먹고 집으로 가자고 합니다.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하기 위해서요.

뭐 요즘에는 농촌에서도 손님맞이를 집에서 하는 경우는 흔치 않죠. 아주 가까운 사이에서나 집으로 초대하니까요. 그래도 또 시골이라 집으로 손님이 오기도 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누군가 해야 할 손님시중에 역할을 딱 정해놓기 보담은 손님과의 관계를 우선시 하며 역할을 정하는 것, 가령 안주인의 손님을 맞을 때, 서로가 안부를 묻고 생각을 나누는 재미를 갖도록 퍼진 칼국수를 내주는 남편, 삐뚤삐뚤 자른 사과접시를 내미는 애들, 아니면 믹스커피라도 타주며 얘기꽃을 피우라는 시어머니의 정성이면 어쨌거나 농촌살이 맛이 조금 나아지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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