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공중전화② 공중전화, 그 이전의 공중전화

  • 입력 2018.01.12 15:00
  • 수정 2018.01.12 15:02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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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길거리의 무인 공중전화만을 공중전화로 인식하고 있으나, 우체국에 찾아가서 걸었던 시외통화가 바로 그 이전 단계의 공중전화였다.

이상락 소설가

1960년대 초, 충청남도 홍성 우체국에 한 노인이 들어선다.

“할아버지 무슨 일로 오셨어요?”

“대전에 있는 큰아들한테 전화 걸라고 왔는디…”

“아드님 전화번호가 몇 번이지요?”

노인이 주머니에서 ‘대전 1328번’이라 적힌 종이쪽지를 꺼내 보인다.

“연결되면 말씀 드릴 테니 저 쪽에 앉아서 기다리세요.”

그 사이에 대기석에 앉아있던 중년 남자가 일어나서는 직원에게 따진다.

“어이, 아가씨, 서울 전화 신청한 지가 두 시간이 다 돼가는 성부른디, 어치케 된 겨?”

“아직 연결 안 됐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허헛, 참, 이럴 줄 알었으면 장터 삼거리 식당에 가서 국밥이래도 한 그릇 사 묵고 오는 것인디, 배가 고파 죽겄구먼.”

그 시절엔 장거리 시외통화를 하려면 아예 한 나절 품을 버리고 일단 우체국까지 가서 신청을 한 다음, 또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홍성에서 서울 사는 사람하고 장거리 통화를 하려면 한 시간 기다리는 건 보통이고, 연결이 잘 안 되면 두 시간이 넘게 지체되기도 했어요. 그 중에서도 좀 더 비싼 요금을 내고 지급(至急)으로 신청하면 30분 이내에 연결되기도 했지요.”

그 시절 홍성우체국 직원이었던 김수항씨의 얘기다.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연결됐다는 호출을 받으면, 우체국 한 쪽에 마련된 ‘통화실’에 가서 전화를 받는다. 하지만 통화품질이 매우 불량했기 때문에 “성님, 잘 안 들려유. 크게 말씀해 주세유! 조카 결혼식이 동짓달 메칠이라구유? 열이틀? 열이레? 아이고, 끊어져 부렀네.”…

이렇게 정작 듣고 싶은 얘기는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 한 채로 전화가 끊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 경우 통화료 때문에 우체국 직원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3분간을 한 통화로 쳐서 계산을 했는데 4분여 통화를 한 경우, 두 통화 요금을 내야 한다는 직원과 한 통화 요금만 주겠다는 이용자 사이에 고성이 오가기 일쑤였다. 그래서 우체국에서도 15초쯤은 앞뒤 인사말 주고받는 시간으로 배려를 해서 3분 15초를 한 통화로 셈을 했다.

김수항씨에 의하면 1963년도에 서울-부산 간 한 통화 요금이 230원이었다. 당시 짜장면 한 그릇이 20원 가량이었다고 하니 서울 사람과 부산 사람이 3분 동안 통화를 하고 지불한 요금이 짜장면 열 그릇 값을 웃돌았다는 얘기다.

전화 걸기가 그처럼 어렵고 요금 또한 비쌌을 뿐 아니라 통화를 하려는 상대방이 전화에 가입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외지에 나가 있는 사람과 급한 연락을 주고받을 일이 있으면 전보를 더 많이 이용했다.

모스부호를 이용한 이 전보는, 그러나 보내는 사람의 정보가 받는 사람에게 전혀 엉뚱하게 전해지기도 했다. 아버지가 몇 월 며칠에 서울에 올라간다는 내용을 전한다는 것이 ‘부친상경’이 아닌 ‘부친사망’으로 잘 못 전달되어서 한바탕 소동이 일기도 했다.

물론 그 어렵던 시절, 시골 마을에서도 개인전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농촌마을에 잘해야 한두 사람만이 가지고 있던 그 자석식 전화는 온 동네 사람들의 공중전화 구실을 톡톡히 했다.

같은 우체국 관할 내에서 통화를 하는 경우 통화 회수에 따라 요금을 산정하는 ‘도수제’가 아니라 정액제였으므로, 그 시절 전화인심은 담배인심만큼이나 좋은 편이었다. 우체국 교환원은 관내의 어지간한 기관이나 영업소의 번호를 훤히 꿰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핸들을 돌린 다음에 교환원이 나오면 대뜸 “어이, 교환! 읍내 양조장 좀 대줘!”,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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