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백두물에서 한라물까지 모아 통일쌀 심던 날

철원 민통선 안 통일쌀 경작지에 한반도 표지판도 세워

  • 입력 2018.01.12 12:32
  • 수정 2018.01.15 10:45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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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철원 민통선 안에 위치한 통일쌀 경작지에는 지난해 한반도 표지판을 세워 이 지역 방문객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사진은 철원군농민회 김용빈 회장(가운데)과 최종수씨, 정경숙씨.

판문점에서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리는 지난 9일 오전 10시, 강원도 철원의 통일쌀 심기 주역들의 얘기도 때마침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시작됐다.

김용빈 철원군농민회장, 정경숙·최종수 부부는 지난해 통일쌀 모내기 얘기꽃을 피우다 “철원이 지난해 전국에서 제일 먼저 통일쌀을 심는다고 전국 농민들에게 크게 빚을 졌다”고 한마디 던졌다. 농사지으면 빚만 남는다는데 모내기부터, 게다가 통일쌀을 심는다면서 전국 규모로 지은 빚이란 대체 뭘까, 덜컥한 심경으로 귀를 기울였다.

김 회장은 “통일쌀 심기의 시작은 2007년으로 십여년을 훌쩍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진보연대가 결성돼 활발하게 활동하던 때인데 농민들과 함께하자는 의미로 쌀농사를 짓기로 했다. 한국진보연대,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에서 철원으로 모두 내려왔다. 지난해 통일쌀 경작지는 민통선 안에 내포리라는 곳에서 했는데, 첫해 통일쌀 모내기는 그 당시 사람이 갈 수 있는 최북단 한계선 바로 맞닿은 땅에서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농업을 통한 단체간의 연대는 물론 통일을 염원한 의미 있는 모내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시간이 흘러 전농에서 통일농사에 의지와 관심 폭이 확산되면서 쌀 뿐 아니라 밭농사까지 다양한 형태로 번졌다.

2008년, 2009년 무렵 통일쌀 모내기는 더욱 활성화 됐지만 고민도 생겼다. 농지 구하기가 점점 어려웠던 것이다.

김 회장은 “철원 농민들은 전방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을 잘 알고 있어서 통일쌀 운동에 대한 스스로 세운 의무감이 있다. 하지만 통일쌀을 심어서 수익을 내고 통일기금으로 활용해야 하는데 그럴만한 임차농지를 구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면서 “그래서 5월에 통일쌀 모내기 행사는 하고 수확기에 각자 20kg 쌀을 한두 포씩 통일기금으로 보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농사짓는 농민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통일염원의 맥을 지켜온 세월이었다.

2016년 광화문광장에 연일 촛불이 켜지고 2017년을 맞아 철원에도 새 기운이 움텄다. 전국적으로 같은 양상이겠지만 철원의 변화는 더욱 컸다. 의욕도 다른 해와 달랐고, 진행과정의 꿈도 컸다. 농민회에 새 회원들이 함께한 영향도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통일쌀 심기에 전국적인 빚이 왜 생긴 건지 김용빈 회장은 비로소 설명했다.

“제일 먼저 통일쌀 모내기 한다고 전국에 소문내고 각지의 물을 모아달라고 요청했다. 남쪽에선 한라산 물부터 진주, 보성, 여주 등 15곳에서 물을 보내왔고, 게다가 2년 전 백두산 기행을 갔던 지인이 언젠가 쓸 데가 있을 거라고 냉동해 둔 백두산물까지 모아 통일쌀을 심을 논에 합수식을 했다. 전국 각지에 고마운 빚이 생겼다.”

정경숙씨는 “합수식을 하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고 어제 일처럼 기억했다.

지난해 통일쌀을 직접 경작한 최종수씨는 “농민들이 제일 잘하는 게 농사짓는 거라, 깨끗한 땅에서 좋은 쌀 생산해서 국민들 먹거리 제공도 하고 통일에 보탬이 된다면 이보다 의미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쌀 판매대금의 일부를 통일기금으로 적립한다고 알리니 문의도 많고 반응도 상당히 좋았다”고 경험담을 풀어놨다.

최씨는 “민통선 안 내포리에 위치한 통일쌀 경작지는 철원의 심장이나 마찬가지인 ‘샘통’ 부근이다. 안보관광을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간 요충지이기도 한데 지난해 한반도 그림이 그려진 통일쌀 경작 안내표지가 세워지면서 이야깃거리가 풍부해졌다. 저게 뭐냐고 단순히 물었던 외지인들도 철원농민들이 평화통일을 위해 쌀농사를 짓는다고 설명하자 굉장히 반가워 한다”고 큰 홍보효과에도 만족스러워했다.

김용빈 회장은 “지난해 제대로 통일쌀 이름 걸고 농사를 지어봤다”면서 “평화를 원하는 것은 모두의 공통된 염원이다. 특히 농업을 통해 통일을 기리는 것은 누구도 각을 세우지 않는다는 것을 매해 느낀다. 올해 철원에서 더 좋은 사람들이 더 많이 통일쌀 심기에 동참할 것이라 생각된다. 그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통일의 물꼬’를 열기 위해 매년 강원 철원을 비롯해 경기도 여주, 충남 논산·예산, 경북 상주, 전북 고창·남원, 전남 장흥·영암·화순·구례·광주 등에서 통일쌀을 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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