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재의 농협 빗장풀기] 도랑 치고 가재 잡는 농협 사업을 위해

  • 입력 2018.01.05 16:12
  • 수정 2018.01.05 16:17
  • 기자명 김순재 전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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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장 임기는 4년이다. 몇몇 특정한 사유가 있는 농협을 제외하고 농협 조합장들은 2015년 3월에 선거를 치렀다. 다음 조합장 선거는 2019년 3월이다. 그런데 조합장 임기 4년 동안에 조합장 선거를 세 번 치른 농협이 경남 인근에서 생겼다. 국가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는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는데, 이야기를 듣고는 부끄럽고 창피했다.

해당 농협은 2015년 3월 선거에서 당선된 후보가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에 회부돼 1심 재판 선고 직전에 조합장직을 사퇴했지만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어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조합장은 대법원까지 가는 재판에서 선거법 위반으로 100만원이 넘는 벌금형을 선고 받아 자격을 상실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27일 임기 15개월의 조합장 선거를 또 치렀다는 것이다. 위 조합장들의 법 위반 내용은 전부가 돈 선거와 관련된 것이었다.

이게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치부하기에는 현장의 협동조합 상황이 너무 심각한 거 아니냐는 자각이 좀 있어야 할 것 같다. 인근 군 단위 지방선거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인 군수 선거를 두어 번씩 하는 것을 여러 차례 봐왔기에 무감각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돈 선거로 인해서 한 임기동안에 선거를 몇 번씩 한다는 것이 외국 ‘언론에 실릴까’ 봐서 참으로 창피스럽다.

농협이 바로서야 농민 조합원을 위한 사업도 승승장구할 수 있다. 이를 위한 첫 단추는 부정과 비리에 얼룩지지 않고 제대로 일할 조합장을 뽑는 일과 농민 조합원의 지속적인 관심이다. 지난 2015년 3월 11일 치러진 동시 조합장 선거에서 농민 조합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조합장 임기 4년에 선거만 3번

내가 사는 경남지역은 곧 있을 지방선거의 선거구 획정을 법정 시한을 넘기면서까지 정하지 않고 있다. 사실상 지방선거가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부정확하지만 후보군들이 언론에 등장하고 있으며, 연말연시를 기해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하는 분들에게서 많은 안부, 기원의 문자들이 들어오고 있으니 지방선거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내게도 출마를 타진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나는 단호하게 입장을 정리했다. 불출마 의사를 밝힌 이유는 선거에서 낙선할 경우에 대한 걱정보다는 당선시 직 수행에 따른 비용 문제였다.

농촌지역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있었던 농협 조합장의 보수는 당시에 월 630여만원 정도였다. 630여만원은 상당한 액수지만 우리나라 정서(?)에서는 조합장직을 수행하는데 드는 품위유지비용에 꼭 맞았다. 경조사비에 애매한 출장비용에 시골조합장 처신한다고 비용 좀 쓴다 치면 조금 부족한 듯 했지만 막말로 도둑질 안 해도 되기에는 거의 안성맞춤이었다.

사실 그 비용을 받는다는 것은 조합장이 당선되기 전부터 농협의 사업계획서를 보고 알고 있었지만 시골에서 조합장 하면서 받았던 그 엄청난 630여만원의 비용도 일상의 비용으로 전부 날아가 버리는 푼돈에 불과했다. 아직 농촌 정서에서는 어떤 직을 수행함에 있어 사실상 많은 비용의 동반을 요구하는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보궐선거, 재선거를 거친 위 농협은 도대체 왜 선거를 세 번씩 치렀는지 우리 농민 모두가 돌이켜보고 반성해야하는 문제라고 본다. 출마한 사람이 당선을 위해서 불법을 하는 것도 용납하기 힘들지만, 출마도 하지 않은 많은 농민 조합원들이 돈 선거의 흐름을 방치하고 있었거나 함께 동조했음도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지방의원들은 그 직을 수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비용(?)을 받고 있다. 부끄럽게도 우리나라 정서에서 그러하다는 것이다. 경남의 경우 시의원은 약 300만원, 군의원은 약 200만원, 광역인 도의원는 약 400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우리 정서에서는 일상의 경조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비용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지방의원에 비해서 조합장은 최소한의 품위유지비용을 확실히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내년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있는 지금 조합장들이 선거가 끝나도 선거후유증에 휘둘리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는 구조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법에 보장된 농협의 돈 버는 사업

이런 내용을 글로 적기에는 조금 부끄럽기도 하지만 솔직히 조합장을 하면서 가슴 뿌듯한 일들도 몇 있었다. 농협 사업의 범주를 명심하고, 조합장에게 위임된 업무의 범위 안에서 할 수 있는 사업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처음에는 두렵기도 했지만 검토에 검토를 거쳐서 많은 사업들을 할 수 있었다.

지금도 우리 농협 교육지원사업의 다수는 조합원들의 호응 속에 그 시기에 이뤄낸 내용들이 많다. 농협 조합장은 지방의원들과 달리 일상에서 품위유지비용을 충분히 받으며 농업과 관련한 유익한 사업들을 펼칠 수 있도록 법과 시행령 그리고 정관으로 정해져 있다.

‘농협이 어렵다’, ‘농업이 어렵다’고 하는 것은 제대로 된 사업을 하기 싫은 사람들의 변명에 가깝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최근 10년 내에 통폐합된 지역의 농협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부실해진 이유가 업무를 방기해 그리된 것들이었다.

농협의 사업은 땅 짚고 헤엄치는 것만큼 안전한 사업들이고, 농업은 국가 시책에 영향을 많이 받지만 농민들이 노동자들처럼 조금만 단결해도 영위하기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산업이다.

보통 나이 많은 농민들은 농협을 관공서만큼 어려워한다. 농협과 관공서는 명백히 다른 조직이지만 농민들에게는 농협도 읍사무소나 면사무소처럼 가까이 하기에는 좀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관공서는 정확히 돈(?)을 벌어야 하는 조직은 아니다.

읍면사무소 같은 관공서는 대다수 국민들이 부담하는 간접세와 직접세를 수익원으로 해 일반 국민을 상대로 여러 업무를 수행한다. 그렇지만 농협은 운영에 필요한 대부분의 비용을 스스로 벌어서 해결해야 한다. 이런 농협을 위해 정부는 농협이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도록 법으로 제정해 그 길을 열어놓고 있다. 관공서는 국가 재정으로 운영하지만 농협은 사업을 위한 종자돈을 농민에게서 출자형식으로 받아 농업에 관련된 여러 사업을 한다.

지역농협이 지방정부로부터 지원 받거나 위탁 받은 사업에서 경비나 투자의 이익을 취하는 경우가 있지만 총액으로 봐서는 미미한 액수에 불과하다. 농협이라는 조직은 여러 제약도 있지만 정부로부터의 특혜성인 혜택-사업을 하도록 법이 보장하고 있다.

한 예로 농협은 장례식장을 운영하기도 한다. 우습게 보일 수도 있지만 농협이 장례식장을 운영한다는 것은 그만큼 농협 사업이 제한받지 않는다는 의미다. 농협은 운영에 따른 차이가 매우 많지만 그 존재 자체가 엄청나게 큰 의미가 있다.

새해에도 우리 사회에서 농업·농협은 크게 바뀔게 없을 듯하다. 지난 대통령 선거를 거치며 문재인정부에서 꾸려진 농업계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그 한계치와 방향이 정확히 설정돼 있고, 예산의 꾸림도 지난해와 달라진 내용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사실상 관료들을 농업의 관리자로 내세운 것이다. 결국 현장의 농민들이 농협과 같은 농민조직을 중심으로 바로 서지 않으면 농업은 바뀔게 없다.

많은 농민들이 농협을 이용하고 있지만 농협의 경영대표자를 뽑는 방식이 바르게 시행되지 않고, 늘 선출 내용에 이의가 제기 된다면 그 사업들은 제대로 될 턱이 없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농협 조합장들은 최소한의 품위유지에 도움이 되는 비용을 수령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선거를 거치며 조합장을 선출하는 방식은 그리 좋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선거에 출마해서 비용을 많이 쓰면 그 부작용은 그 조직에 속해 있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내년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지금처럼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조합장 당선인들이 부담을 덜 느끼며 사업을 할 수 있는 선거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농협이 제 역할하도록 농민이 나서야

농협은 스스로 돈을 벌어가며 사업하도록 법으로 보장된 조직이다. 대다수 망했거나 어려워진 농협은 어려워진 농촌·농업과 상관없이 대개가 그 조직이 부정직하여 망하거나 어려워진 것이다. 주변의 합병농협들 다수가 그러하다는 것을 지역의 농민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부가 농민을 위해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도록 법으로 만들어 둔 ‘농협 사업’은 도랑치고 가재도 잡는, 두 마리 토끼 잡기가 충분히 가능한 사업이다. 엊그제 선거를 치른 것 같지만 벌써 내년이면 조합장 선거가 있는 해이다. 당장 주변을 보면 누구누구 출마설들이 흘러나오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에 농협의 주인이라는 조합원들이 알맞게 대응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농협이 사업하도록 많은 길들을 열어 뒀는데 많은 농협들이 관성화된 사업에 매몰돼 있고 그 스스로가 덫에 걸려서 스스로를 보존시키기에도 한계치에 도달해 있는 현상들은 농민과 농협을 신뢰하는 많은 국민들을 배신하는 행위이다.

곧 지방선거지만 농협 조합장은 지방의원들과 명백히 다르다. 우리나라 성인이라고 해서 농협에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한을 통해 농업의 영역을 보전시켜 주고 있는 지금 같은 시기가 농업을 위해 농협이 사업하기에 아주 좋은 시기이다.

새 정부에서 과거의 폐단을 청산하자는 기치를 내세우고 있는 지금 현장의 농민들은 지역농협의 현실을 바르게 인식하고 농협이 제 역할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농협과 관련해 이야기 할 자리들이 종종 생길 때가 있다. 그 자리에서 이야기들을 마치고 나면 제 이야기를 들은 분들의 표정이 전부 불편해 보일 때가 많다. 농협에 대한 이야기가 그 대상이 직원이냐, 농민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직원들이 대상일 때는 직원들의 농협에 대한 역할을 매우 강조하고, 대상이 농민일 때는 농민들의 역할을 많이 강조한다.

강의를 듣고자하는 분들이 자기들의 기대와는 달리 꾸지람(?)이 많으니 불편한 모양이었다. 싸움이 일어난 조직은 싸움을 말리고, 사업 방향이 틀어진 곳에서 바르게 잡자고 이야기하면 관성적인 것이 몸에 익어서 바로 잡는 것이 매우 힘들어 보였다.

덩치가 커지면 협동사업이 힘들다

지난해 12월에 통합논의가 진행되던 농협과 관련해 지역조합원들의 요청으로 강의·토론을 간 적이 있었다. 아침 일찍 해당 지역을 방문해 주변을 좀 둘러보고 지역민들과 이야기도 좀 나눈 다음에 조합장과도 대화를 나눴다. 조합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강의·토론에 직원들이 참석해도 되냐고 문의하기에 당연히 동의했다.

강의에 참석한 우리 농민들은 무뚝뚝해 보였다. 그 표정 속에서도 초청한 농민들은 당연히 농민들의 편을 들어줄 거라는 기대감이 있는 듯 했지만 제가 한 이야기의 대다수는 농민들의 책임을 묻는 것이었다. 일방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토론으로 넘어가고자 했지만 다수의 우리 농민들은 토론에 익숙하지 않아 강의·토론은 사실상 강의로 마무리됐다.

진심으로 해당 농협의 사업이 잘 되기를 바라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며칠 뒤 그 지역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내용은 조합장을 중심으로 통합에 대한 논의를 중지하고 자력으로 사업을 열어가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것이었다.

해당 농협의 사업내용을 봐서는 통합이 되더라도 농민에게는 이익이 별로 없어 보였다. 결국 농민들이 반성하고 자각해 농협을 중심으로 사업을 강화시키는 것이 농민 스스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진행했을 때, 우리 농민들은 끝까지 표정 변화 없이 앉아계셨다. 그렇지만 스스로의 조직을 강화시켜내기로 뜻을 모았던 모양이었다.

새해에는 농협이 더욱 건전해지고, 전국의 농협들이 포진하고 있는 지방이 소홀한 대접을 받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올해 지방선거가 지나면 곧이어 내년에 농협 조합장 선거다.

농협 조합장 선거가 바르게 치러지고, 지역농협들이 농협 사업에 대한 인식을 바꾸면 농협이 가지고 있는 불필요한 이중적인 구조, 중앙조직들도 바꿀 수 있는 틀이 마련될 것이다. 지금의 농협은 중앙조직이 가진 문제도 크지만 농협에 관심이 적은 농민들에게 더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널리 공유됐으면 좋겠다.

‘김순재의 농협 빗장풀기’를 매월 1회 연재합니다. 창원 동읍농협 조합장을 역임했던 김 전 조합장이 들려주는, 늘 곁에 있으나 잘 알지 못했던 농협 이야기에 함께 귀 기울여 볼까요.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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