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요즘 뭐 하세요?”

  • 입력 2018.01.05 16:08
  • 수정 2018.01.05 16:11
  • 기자명 김정열(경북 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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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를 대로 마른 밭둑의 억새에도 강풍에 흔들리는 강가의 갈대에도 길섶의 마른 낙엽 하나에도 눈길이 머문다. 무심히 지나쳐지지가 않는다. 빛나고 화려하고 싱싱한 것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빛이 바래 노래진 것도, 볼품없이 사그라지는 것도, 바람에 흔들리는 가느다란 한 줄기 빈 대공조차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다른 날은 다른 날인가 보다.

김정열(경북 상주)

2018년 새로운 해라고 해서 태양이 다를까만, 새로운 날이라 해서 태양의 빛이 다를까만 날짜가 주는 의미가 남다르다.

농촌에 살지 않는 지인들이나 가까이 살지 않는 지인들이 가끔은 정말 궁금한 듯이 묻는다.

“요즘 뭐 하세요?”

농촌에 살지 않거나 가사 일을 하지 않는 남성, 여성농민회 등 단체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요즘 뭐 하는지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농촌의 일이라는 것이 농번기는 아니어도 여전히 사부작사부작 해야 할 일은 널려 있으며 가부장제도가 아직도 완고히 남아있는 농촌에서 여성들의 노동은 겨울이라고 해서 줄어들지 않으며 아니, 오히려 겨울에 가사노동 시간은 더 늘어난다.

농사를 지으며 가사노동, 돌봄 노동 등을 해가며 단체 활동을 하는 여성 활동가들에게 농한기인 겨울은 조직 활동이 가장 집중적으로 필요한 때이다. “요즘 뭐하냐?” 고 물으신다면… 그냥 웃지요.

여전히 따뜻한 아랫목에서 포근한 낮잠 한 번 즐기지 못하고 이리 저리 뛰어 다니지만 그래도 요즘이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쉼표가 되는 시간인 것은 맞는 것 같다. 늘 곁에서 힘이 돼 주었던 가족이나 이웃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도 하고 지난 일 년을 결산하는 이런저런 모임들을 한다.

역시 함께 모이니 기쁘고 즐겁다. 나와 다른 여럿이라서 상처 받기도 하지만 그 상처는 여럿이 함께일 때 치유될 수 있음을 새삼 느낀다. 또한 그 상처는 다른 사람이 준 것이 아니라 나에게서 나온 것임을 알게 되니 부끄러워진다. 지나고 나니 다 지난 일인 것을… 기꺼운 마음으로 흘려보낼 수 있게 되는 시간들이다.

연초에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많이 가지게 된다. ‘지난 1년은 나에게 어땠더라?’ ‘나는 지난 1년을 어떻게 보냈지?’ 나아가 ‘내 문제가 뭐였지?’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다.

나 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고 그 사람들의 생각을 읽고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생각하며 동분서주한 시간들이다. 그러니 내 자신을 살피는 시간이 부족했고 그것은 언제나 갈증이었다. 한 살 더 먹은 나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찬찬히 살펴본다. 내 마음을 깊숙이 들여다본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고 어느 영화에서 묻지만 나는 사랑이 변한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변한다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것이 두려운 나이가 되었다. 올해는 작년과 다른 내가 되자.

친한 후배한테서 「소원 팔찌」를 선물 받았다. 가는 실을 서너 가닥 꼬아 만든 소박한 것이지만 올해 내 소원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멋진 선물이었다. 「소원」이라는 말조차도 어색한 나이지만 소원 팔찌를 앞에 놓고 소원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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