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민에게 농지부터 주고 보자

  • 입력 2018.01.05 11:56
  • 수정 2018.01.05 11:57
  • 기자명 김은진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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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이 넘으신 부모님은 여전히 필자를 걱정하신다. 쉰이 넘도록 집 하나 없는데 집을 가지려는 노력조차 안하는 게 못내 마땅치 않으신 게다. 20대 때나 지금이나 굳이 집을 소유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별로 없는 듯하다. 젊은 시절에는 다들 청약저축을 들고 제 집을 가질 순위를 기다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가만히 보면 그렇게 마련한 집 빚을 갚는데 최소한 30년이 걸린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빚 다 갚으면 60대가 되고 60대에 남는 것이 집 한 채라는 것이 그리 매력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5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 여전히 무주택자다. 주변에서 걱정하면 항상 ‘나이 들면 농촌에 내려가 빈집에서 살 건데 굳이 도시에 집이 있을 필요가 있냐’고 답하곤 한다. 내게 집이란 그런 것이다. 그냥 내 몸 편히 쉴 수 있기만 하면 되는 곳. 더 나이 들면 농촌에 내려가 텃밭 가꾸며 살면 되지. 그런데 그게 그리 쉽지만은 않겠다. 농민들 이야기 들어보면 농촌에서 땅을 마련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어렵게 땅을 구해 일궈 놓으면 땅주인이 내놓으라고 하는 경우도 허다하단다. 문득 30년 전 생각이 났다.

1988년 농업법을 공부하는 것을 진로로 정하고 무작정 찾아간 곳이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였다. 당시에는 농업법이라는 과목도 없었고 공부하는 사람도 없어서 ‘농’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유일한(?) 연구소를 가야 적어도 농업법을 공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연구소 문을 열고 들어간 첫날, 나는 당돌하게도 거기 계신 모든 선배들에게 ‘앞으로 여기서 공부하면서 일 하겠다’는 선포를 했다. 지금 생각해도 화끈거리는 당돌함을 당시 모든 분들이 반겨주셔서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내에 주어진 일이 바로 농지법분과 간사 역할이었다. 당시 그 분과는 적어도 10년 이상 연장자이신 교수님들과 변호사님들로 구성된 그야말로 최고의 전문가집단이었다. 농지법분과는 농지법개정을 위한 작업을 했는데 해방 이후 이뤄진 농지개혁이 비록 많은 한계를 지녔다고는 하나 적어도 단 하나 확고한 원칙이 있었는데, 40년이 지나면서 거의 사문화하고 있기에 이를 다시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바로 경자유전의 원칙이다.

농지법 개정을 위한 작업을 하고 이를 기초로 여러 차례 토론회도 했다. 그 과정에서 지금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면 바로 농민들이 농지를 소유하게 하자는 이 원칙에 대해 토론회마다 ‘결사반대’ 팻말을 들고 나타나는 농민들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들은 다들 농지를 소유하고 있지만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칙을 세우기 위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농지법은 개정됐다. 농민이 아닌 사람에게는 유예기간을 줘 농지를 처분하도록 하고 이를 통해 농민들이 농지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 때 나는 농민들에게 땅만 주어진다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 후로도 많은 일들은 여전히 농민들의 몫이었다.

문제는 연이어 생겨났다. 이런저런 명목으로 농민이 아닌 사람이 얼마든지 농지를 가질 수 있게 야금야금 법이 개정되기 시작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했던 것은 1980년 헌법에 농지의 임대차, 위탁경영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서부터이다. 농지법이 아무리 잘 만들어진들 헌법에 반하지 않는 방식으로 교묘하게 법을 개정하면 얼마든지 농민이 아닌 사람들도 농지를 가질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지금 농지법이 그렇다.

아마 이번 지방선거에서 개헌에 대한 국민투표도 함께 진행될 모양이다. 그동안 농민들 스스로 농민헌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고 국민 1,000만명의 서명까지 받아냈다. 그 속에 정말 중요한 내용들이 들어있다. 그 가운데 아주 중요한 한 가지가 경자유전의 원칙을 다시 명확히 하는 것이다. 언젠가 내가 살고 싶은 곳, 그래서 이번 개헌이 내게는 아주 중요하다. 나의 미래가 거기 달려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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