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수당으로 농촌의 희망을 만들자

[신년특집] 농민권리보장과 농민수당
[ 기고 ]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 입력 2017.12.31 22:58
  • 수정 2017.12.31 22:59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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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초여름, 필자는 농민기본소득 연구를 하기 위해 충남 금산군의 한 마을을 찾았다. 이 마을을 대상으로 농민기본소득(농민수당) 실시 방법에 따른 시뮬레이션을 해보기 위해서다. 이 마을을 선택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이 마을은 환경과 개발이 첨예하게 대립한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금강 상류 오지에 위치한 이 마을은 환경가치가 우수해 환경론자들은 이 마을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개발론자들은 오히려 이 마을을 개발해 그 혜택을 마을 주민들에게 나눠야 한다는 논리다.

둘째는 이 마을이 지리적으로 소외됐기 때문이다. 행정구역은 금산군에 속하지만 지리적으로는 무주군과 가까워 무주생활권에 속한다. 금산읍내로 나가려면 고속도로를 타고 우회해 들어가야 해서 쉽지 않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이 마치 미국에서 처음으로 시민배당을 실시한 알래스카주와 비슷했다. 그래서 나중에 충남에서 농민기본소득이 실시된다면 이 지역이 ‘충남의 알래스카주’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셋째는 마을주민 대부분이 영세소농이라는 점이다. 농민기본소득이 실시된다면 그 주요한 혜택의 대상은 경지규모는 비록 영세하지만 농사를 지으며 농촌을 지켜나가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 마을의 이장을 만났을 때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이장님의 연세가 79세였다. 이제까지 만나본 이장님 중에 연세가 가장 많으셨다. 그만큼 이 마을은 고령화가 진행됐고 활력은 없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문 앞을 지켰다. 또 하나 발견한 점은 이 마을주민들은 외부의 개입을 전혀 내켜하지 않았다. 자연경관이 좋기 때문에 농촌체험마을이나 마을만들기사업을 통해 마을 활성화를 도모할 법도 하지만 이 마을에는 그런 활동을 할 만한 사람이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정부의 마을사업이나 외부 관광시설의 유입으로 마을의 활성화를 도모할 법도 한데 이장님은 단호하셨다. “개발이 되면 뭐해, 그러면 우리는 다 이 마을에서 쫓겨나야 하는데!”

이장님은 다른 사업은 다 필요 없고 금산읍내로 들어가는 다리만 하나 놓아달라는 것뿐이었다. 필자는 이장님께 현재로써는 다리 건설이 쉽지 않고 설사 건설되더라도 시간도 많이 걸리고 돈도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다리 건설보다는 불리한 여건에 대한 보상으로 매달 얼마간의 돈을 마을주민들에게 직접 제공하는 방식은 어떠냐고 물었다. ‘외부인’인 필자를 경계했던 이장님은 반색을 했다. 내심 자기마을이 그렇게 되는 줄 알고 반겨하셨다. 그렇지 않아도 이 마을에는 금강수계지역이라 지역 환경청에서 얼마의 수계기금이 나와 마을에 필요한 자재를 사거나 친목활동에 사용하는데 이제 더 이상 필요한 물건도 활동도 없다고 했다. 농업직불금이 올라도 이 마을은 경지면적이 워낙 적기 때문에 별 효과는 없다.

이장님은 새해 82세이시다. 사실 지금 생존해 계신지도 모르겠다. 금산의 한 마을을 예로 들었지만 사실 전국 대부분의 마을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현재의 농정으로는 영세소농들이 생존해 나갈 방법이 없다. 그러는 사이 농민들은 서서히 고사하고 있다. 필자는 농민수당 말고는 절망의 농촌에 더 좋은 정책을 제시하기 어렵다. 충남도는 농업환경실천사업을 통한 기본소득형 직불제 실시로 소득의 균등분배와 환경개선 효과를 보고 있다. 강진군은 올해부터 벼 경영안정기금 외에 전국 최초로 농가단위 수당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이런 작은 불씨를 살려 우리 농정의 희망을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불평등과 불공정 문제를 혁파해 농촌에서도 영세소농과 중대농이 함께 사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농민수당 보장, ‘농민헌법’ 개헌과 함께 새해가 그 희망의 원년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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