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돈 선거, 못 잡나 안 잡나

  • 입력 2017.12.31 11:32
  • 수정 2017.12.31 11:34
  • 기자명 이영수(경북 영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영수(경북 영천)

바야흐로 선거철이 다가왔다.

삼류소설에나 나올법한 국정농단세력의 막장드라마가 사실로 드러나고 유례없는 대통령 탄핵의 결과인지 그 어느 때보다 선거열기가 뜨겁다. 연말모임에 다녀오면 예비후보들이 나눠주는 명함으로 주머니가 두툼해질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내년 6.13 지방선거에서 영천시장 후보로 나서겠다고 포부를 밝힌 사람만 11명이고, 5개 면에서 2명을 뽑는 기초의원에는 9명이 나섰다. 경상도답게 여전히 자유한국당 예비후보들이 많지만 민주당 후보로 나서겠다는 사람이 전례 없이 9명이나 되고 경선까지 치른다니 이 또한 역사의 발전이라 생각한다.

후보들이 경로당을 다녀가면 어르신들끼리 이런저런 검증을 하면서 꼭 하는 말이 “돈은 좀 있다 카더나?” 하고 물어본다. 아무리 똑똑해도 경상도에서는 돈 안 쓰고는 절대 안 된다는 거다. 실제로 지난 지자체 기초의원 선거에서 한 후보가 자갈밭 팔아서 10억원을 썼다는 말이 나돌자 실제로 그것보다 많으니 적으니 논쟁이 붙은 적도 있다. 촛불을 든 시민들의 힘을 온 국민이 지켜 본 만큼 다가오는 선거는 금권선거가 좀 덜해지지 않겠나 기대하고 있는데, 각 당의 후보가 확정되지도 않았음에도 벌써 금권선거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고 있는 후보가 있다고 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한 달 전 임고농협 결산총회에서 27년 만에 이사 선거구 변경안이 통과됐다. 인근 농협과의 합병 당시 합병대상지역에 2명의 이사를 보장하기로 한 것을 바꾸고 6명의 이사를 지역에 상관없이 선출하기로 했다. 마침 내년 1월 결산 총회 때 이사선거가 있어 조합원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3선을 한 이사 한 분은 후배들을 위해 출마하지 않기로 용단을 내렸다는 말도 들리고, 젊은 형님 한 분은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당선돼야 할 말이 있다며 돈을 얼마를 쓰더라도 되겠다는 포부를 당당히 밝히고 있다.

제 얼굴에 침 뱉는 얘기라 마음이 불편하지만 농협 조합장 되려면 2억원은 써야 된다는 말이 공공연히 돈다. 이사나 감사 선거에도 돈 안 쓰고 당선되는 무임승차는 안 된단다. 돈을 써야 당선이 된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오히려 그래야 양심이 있단다. 이유인즉슨 조합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조합장 4년 임기에 판관비 포함 4억원 가량, 이사 4년 회의수당 2,000만원 가량 받으니 얼마라도 조합원들에게 돌려주는 게 맞다는 것이다. 기가 차고 코가 막힐 노릇이다.

돈 안 쓰는 깨끗한 선거풍토를 만들어 보겠다며 지난해 농협 감사 선거 때 농협 공부를 하던 공부방 모임에서 후보를 내고 일일이 대의원을 만나며 돈 한 푼 안 쓰는 깨끗한 정책선거를 했다. 공부방 후보의 선거분위기는 뜨거웠고 곧 당선될 것처럼 보였지만 보기 좋게 낙선했다. 선거에 잔뼈가 굵은 형님 말씀으로는 딱 돈 쓴 순서대로 됐단다. 투표 끝나자마자 어떤 대의원은 감사후보들한테 30만원도 받고 50만원도 받고 하니 100만원이 훌쩍 넘더라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귀농 10년째 농촌에 살면서 좋은 일도 많고 이해 안 되는 일도 종종 있지만 갈수록 금권선거가 노골적으로 확산되는 것만큼 이해 안 되는 일이 없다. 지자체선거나 조합선거 때만 되면 누구는 얼마를 뿌렸니, 누구는 얼마를 받았니 하는 이야기를 지역사람이 다 아는데도 어느 하나 처벌받는 일이 없다. 심지어 지난번 전국동시다발 조합장 선거 때는 인근 타 면에서 돈을 받았다고 양심고백을 한 사람이 있었는데, 돈을 줬다고 거론된 사람은 조합장으로 당선돼 떳떳하게 활동하고 있고 돈을 받았다고 양심고백한 사람은 결국 자살을 했다. 목숨을 끊은 것도 억울한데 온갖 죄는 말없는 사자(死者)의 몫으로 돌아갔고, 지역민들은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고 혀를 찬다.

수십 명의 엘리트들이 근무하는 선거관리위원회도 있고 서슬 퍼런 경찰도 검찰도 엄연히 존재하는데 갈수록 금액도 커지고 노골적으로 진행되는 농촌지역의 돈 선거, 못 잡는 건지 안 잡는 건지 도대체 궁금하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