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농활] 농한기가 뭐죠?

  • 입력 2017.12.29 10:16
  • 수정 2017.12.29 10:17
  • 기자명 배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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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배정은 기자]

“겨울인데 농활을 뭘 하러 가죠?” 몇 달 전부터 고민했다.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였다.

작물을 심고 거두는 농번기와 농번기 사이, 농사일이 바쁘지 않은 한가로운 때여야 할 12월에도 농촌은 바쁘다. 형편없는 농산물 가격 때문에 노지농사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진 경종농가들은 시설하우스농사로 눈을 돌려야만 했다. 노지농사보다 몇 배 더 많은 힘과 관리가 필요하지만 이렇게 ‘농사만’ 지을 수 있으면 다행이다. 대부분 재배한 농산물이나 그 농산물로 만든 즙, 잼 등의 가공품을 직접 판매하느라 농사일이 마무리 되고나서도 시간이 부족하다. 농업소득으로는 살기 어려우니 농업 외 소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지금 농촌의 현실이다.

“농사꾼이 장사꾼 되려니 머리가 한주먹씩 빠지게 생겼네. 큰일났슈.” 지난해 12월 19일 충남 서천군 마산면을 찾았다. 소소란을 생산하는 벽오리농장의 주인이자 서천군농민회에서 마산지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박대수씨를 만났다. 당연히 농장 일을 해야 하는 줄 알았으나 겨울철이라 산란율이 낮아지기도 했고 정말 손이 급한 곳은 농장이 아니라며 문자로 주소를 보냈다. 지난해 4월 창립총회를 하고 6월 개소한 서천마산협동조합이다.

오전 9시 ‘서천마산협동조합’ 초록빛 간판이 붙은 건물 앞에 도착했다. 서천마산협동조합은 연말에 있을 학교급식 납품 선정심사를 앞두고 있었다. 심사를 통과하면 서천군 23개 학교에 공급될 300여가지의 농산물을 공급하게 되는데 자라나는 학생들에게는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줄 수 있고 농민들은 안정적인 판로를 마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학교급식을 납품하려면 농산물을 포장하고 저장할 소분장과 저온창고가 있어야 한다. 일단 사무실에 모인 협동조합 이사들은 책상과 의자를 비롯해 모든 물품을 2층 창고로, 밖으로 날랐다. 사무실 안쪽으로 마련된 방에는 문짝이 붙어있다면 문이었을 커다란 구멍이 두 개 있었는데 소분장을 마련하려면 그 중 하나를 나무판자로 막아야 했다. 톱과 전동드릴이 등장했다. 뚝딱뚝딱 손길 한 번이면 일이 마무리됐다.

바닥엔 장판도 깔아야 했으나 필요한 공간만큼의 장판을 사자니 18만원을 들여야 했다. 저온창고도 사고 냉장탑차도 마련한 협동조합에 18만원은 적지 않은 부담이다. 장판가게에서 팔고 남은 자투리 장판을 공짜로 얻어오고 집에 있던 꽤 쓸 만한 장판을 공수해왔다. 색은 조금 달랐지만 장판으로서 역할을 하는데 문제는 없다.

근처에 위치한 저온창고로 자리를 옮겼다. 쪽파 저장창고로 쓰다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썩어버린 쪽파부터 치워내고 물청소를 위해 소방차도 빌렸다. 고압의 물줄기로 창고가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동안 창고 밖으로 흘러나오는 흙탕물을 수로 쪽으로 밀어냈다.

그렇게 소분장을 만들고 저장창고와 냉장탑차 청소를 끝내자 소독전문업체에서 찾아왔다. 학교급식을 하려면 소분장, 저장창고, 냉장탑차를 매달 소독하고 쥐와 벌레를 잡을 장비도 설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기자가 힘을 보탤 수 있는 일은 마무리 됐다. 몇 달 만에 돌아온 기자농활을 날로 먹은 기분은 떨칠 수 없지만 몸이 축나는 힘든 농사일을 마무리 짓고도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먹고 살기 위해) 미적 감각, 공업기술에 소방차 사용방법까지 모든 기술을 섭렵해야만 했던 농민들의 ‘구슬땀 나는 겨울’을 전달하는 것으로 마음의 짐을 덜어보려 한다. 이 땅의 농부, 존경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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