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 끝에 정부로부터 농지 얻어내 … 유기농사에 매진

이 사람 ㅣ 아르헨티나 농민 미겔과 프란츠를 만나다

  • 입력 2017.12.22 16:57
  • 수정 2017.12.22 17:03
  • 기자명 심증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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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심증식 편집국장, 통역 이보영]

세계무역기구(WTO) 11차 각료회의가 열리고 있는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 사회과학부에서는 WTO 반대 투쟁의 하나로 ‘민중정상회담’이 열렸다. 민중정상회담의 부대행사로 사회과학부 앞길에서는 장터도 마련됐다.

지난 11일 장터 한 편에서 농산물을 팔고 있는 프란츠를 만났다. 그는 ‘UTT’라는 글자가 새겨진 파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자신을 루한(Lujan)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는 농민이라고 소개하면서 장터에 나온 이유가 농산물 판매와 더불어 WTO 반대에 동참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UTT’가 궁금해 물었다. 프란츠는 “영세농들이 토지를 갖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라고 설명했다. 라틴아메리카 농민들이 당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바로 토지문제이다.

토지소유관계가 명확히 확립되지 않은 농민 또는 원주민들이 하루아침에 자신이 경작하던 농지에서 쫓겨나거나 땅이 없어 농업노동자로 소작농으로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아르헨티나로 취재 오면서 농지와 관련한 사연이 있는 농민을 만나고 싶었던 차에 프란츠를 만나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루한이라는 곳에서 57가구가 57ha의 땅을 1ha씩 나눠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다. 이 땅은 정부와 오랜 싸움 끝에 얻어낸 것이라고 했다. 간단히 이야기를 듣고 행사가 끝나고 나서 프란츠가 살고 있는 루한에 찾아가기로 했다.

지난 14일 아르헨티나 루한 지역에서 만난 미겔(왼쪽)과 프란츠씨가 자신들이 일구는 농장 앞에서 어깨동무를 걸고 서 있다. 볼리비아에서 이민 온 이들은 오랜 싸움 끝에 정부로부터 농지를 임차한 뒤 유기농사에 매진하고 있다.

WTO 반대 투쟁서 만난 현지 농민

지난 14일 통역과 함께 차를 빌려서 루한으로 향했다. 우리는 오후 4시에 농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여기서는 12시에 점심을 먹고 오후 4시까지 휴식을 취한 뒤 4시부터 다시 일과를 시작한다고 한다. 한국과 아르헨티나는 시간과 계절이 정반대인 터라 한여름이다. 우리로 치면 7~8월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고속도로에서 나와 알려준 샛길을 따라 들어가니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나무 숲속에 낡은 집이 몇 채 나타나고 마당에는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안쪽에는 커다란 관공서 같은 건물이 보였다. 숲속에 작은 마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전화를 하고 잠시 기다리니 농장에서 일을 하다가 왔다며 프란츠가 허름한 작업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잠시 후 또 한 농민이 왔다. UTT 활동을 초기부터 해왔다는 미겔이라는 농민이다.

UTT는 스페인어로 발음하면 ‘우떼떼’다. ‘Union de Trabajadores de la Tierra’의 약자로 직역을 하면 ‘토지 노동자 연합’이라고 할 수 있다. ‘토지를 찾는 농민연합’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우선 이들은 자신 소개부터 했다. 프란츠 라모스는 40세로 볼리비아 출신이다. “저희 부모님은 볼리비아에 살고 계십니다. 저는 더 나은 삶을 살고자 아르헨티나에 오게 됐구요. 하지만 노예 같은 삶을 살게 됐습니다. 저는 17년 전 농업노동자로 라쁠라따(La Plata)에 왔습니다. 시간이 지나 돈을 조금씩 벌어 농기구 등을 갖게 되면서 땅을 임대해 직접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라쁠라따에서 UTT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미겔은 UTT를 창설했던 당시 멤버였고 저는 조금 뒤에 들어갔습니다.”

미겔 레예스는 55세로 역시 볼리비아 출신이다. “저는 조부모님께서 볼리비아에서 아르헨티나로 이주하셨어요. 후후이(Jujuy)라는 곳에 정착해서 살다가 30년 전에 라쁠라따로 이주해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 왔어요.”

아르헨티나는 남미에서 브라질 다음으로 땅이 넓은 나라이다. 넓은 국토에 비해 인구가 적다. 면적이 한국(남한)의 28배인데 인구는 우리보다 적은 4,400만 명이다. 그러다 보니 개방적인 이민정책을 쓰고 있다. 인근 페루, 콜롬비아, 볼리비아 등의 국가에서 아르헨티나로 이주해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들은 주로 농업노동자 또는 건설노동자로 아르헨티나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이들 중 볼리비아 출신 대부분이 농민이라고 한다. 프란츠와 미겔 역시 세대의 차이는 있지만 ‘아르헨티나 드림’을 찾아 농사를 짓는 이주민들이다.

이후 미겔은 우떼떼(UTT)에 대해 설명했다.

“우떼떼의 목적은 영세농들이 토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영세농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토지입니다. 임대를 하는데 매년 임대료가 오르면서 임대를 할 수 없는 영세농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우떼떼에 들어갔을 당시 목적은 영세농민들이 토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계속 투쟁했습니다. 우떼떼는 처음에 라쁠라따에서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전국에 자생적으로 우떼떼가 조직돼 아르헨티나의 14개 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인원은 알 수 없지만 전국 차원의 큰 움직임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들이 농지를 얻기 위해 투쟁한다는 것을 우리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돈을 주고 사지 않고 농지를 얻기 위해 투쟁한다는 것에 대해 미겔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르헨티나에는 노는 땅, 버려진 땅이 많이 있습니다. 이 건물도 옛날 관공서 건물인데 버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주변에 400ha 정도의 버려진 땅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대규모로 대두, 옥수수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임대하기도 합니다. 국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그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죠. 우리는 땅을 무상으로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임대료를 낼 수 있도록 장기저리대출(소프트론)을 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우리 요구를 묵살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농지 투쟁은 전국 각지에 버려지고 놀려지는 땅에서 부담 없이 농사를 짓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우떼떼’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정부에 제안했다. 버려진 땅에서 농사를 짓게 해달라고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투쟁했다. 이 투쟁은 8년간 지속됐다. 1년동안은 정부 청사 앞에서 농성을 하기도 했다.

미겔씨는 “땅을 살리고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유기농 농사를 지으며 자신들의 땅을 갖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오랜 투쟁 끝에 얻은 농지 57㏊

“오랜 투쟁 끝에 정부가 몇 군데 땅을 보여 줬어요. 이곳 루한과 캄파나(Campana)라는 곳 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땅을 보자마자 이곳(루한)에서 농사를 짓겠다고 했습니다. 정부가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해서 이들과 루한의 인연은 시작됐다.

그러나 이 땅에서 농사를 짓기까지는 순탄치 않았다. “이 땅은 환경부 소유인데, 환경부, 농업부, 농민 3자가 합의서를 작성해서 농사를 짓기로 했는데 합의서에 서명을 받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어요. 한 가지 해결되면 다른 문제를 제기하고 하면서 정부에서 협조를 해주지 않았어요. 정부는 대농들의 민원만 우선적으로 처리해 줬습니다. 우리 같은 영세농은 잊혀지기 일쑤였죠. 그래서 농성을 하고 압박을 한 것입니다. 그제야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 줬죠.”

긴 투쟁 끝에 마지막 1년동안 천막농성을 하면서 이들의 투쟁은 결실을 맺게 됐다. 루한 지역의 노는 땅 57ha를 얻었다. 57가구가 1ha씩 나눠 유기농 농사를 지어서 땅을 살리고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정부와 5년간 무상 임대계약을 맺은 것이다.

“5년 후에 평가를 해서 계약을 연장할지를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겠다는 계획으로 불모지를 개간해 농지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계속 농사를 짓고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라며 프란츠는 기대에 차서 이야기했다.

그나마 이들은 다행스럽게 2년 전부터 농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캄파나 지역으로 간 농민들은 주변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농사를 짓지 못하고 나오게 됐다고 한다. 일종의 님비 현상인 것이다. 우리 동네에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와 사는 게 싫다는 가진 자들의 이기주의.

이들이 루한에 와서 농사를 지은 지 이제 2년차에 접어들고 있다. 첫해는 거의 농사를 짓지 못하고 땅을 개간하는 등 농지를 만드는데 시간을 보냈다.

“여기는 농사를 지을 만한 땅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와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땅을 만들었죠. 작은 언덕이 있었는데, 언덕을 없애고 농지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첫 해에는 언덕을 깎아내고 기반을 만드는 일에만 매달려야 했습니다. 작년부터 조금씩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불모지 개간 후 유기농사 시작

이들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여기는 남반구라 우리와 계절이 반대로 농사가 시작되는 시기가 5~6월이 아니라 10~11월이다. 그러니까 두 달 전에 올해 농사를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이들을 만난 옛 관공서 건물 뒤쪽으로 농장이 펼쳐져 있다.

광활한 대지에 바둑판처럼 구획이 나뉘어져 작물이 자라고 있었다. 배추, 감자, 상추, 당근, 고구마, 파, 토마토, 가지, 호박 등 다양한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다. 농장 한 가운데에는 관수 시설이 설치돼 있어서 이랑마다 점적 호수를 연결해 관수를 하고 있다.

이렇게 농사를 짓는데 정부의 지원이 있는지 물었다. 미겔은 “여기는 물이 부족한 곳이라 관수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어갑니다. 정부에서 관수하는 비용을 지원해 줬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정권이 바뀌고는 지원이 없어졌습니다.”

아르헨티나는 2015년 좌파정부에서 우파정부로 정권이 교체됐다. 정권 교체 이후 좌파정부의 정책을 개혁한다는 이름으로 각종 지원을 축소해 사회적 논란이 크다. 지난 13일 WTO 각료회의 마지막 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20만 명이 넘는 군중들이 모이는 대규모 집회가 열려 마크리 대통령의 개혁정책을 규탄했다.

한편 아르헨티나에서는 30ha 이상 농사를 지어야 농민으로 인정을 받고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영세소농들에게는 유일한 지원정책이 65세 이후에 받는 노령연금인데 이마저도 5개월 전부터 지급이 중단돼 영세농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서로가 협동하여 농사를 짓고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우떼떼에 판매 담당자가 있습니다. 우리는 5kg, 7kg 단위로 채소 꾸러미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가 건강하고 안전한 유기농산물을 생산한다는 것을 알려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볼리비아에서 이주해 농업노동자로 소작농으로 전전하던 이들은 8년간의 투쟁 끝에 안정적으로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을 얻었다. 비록 임차농이지만 이들은 이곳에서 유기농 농사를 지으며 자신들이 땅을 갖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우리가 방문한 지난 14일에도 이들은 밭에서 풀을 뽑고, 물을 주며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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