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국민학교④ 그 많은 구렁이는 누가 다 죽였을까

  • 입력 2017.12.22 16:50
  • 수정 2017.12.22 16:52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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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국민학교 때 찍은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다. 졸업기념 단체사진을 비롯해서 몇 차례 사진기 앞에 섰던 것 같기는 한데…어쨌든 없다. 그런데 30대 후반 무렵에 우연히 고향 동무네 집에, 초등 동창생 서넛과 함께 초대를 받아갔는데, 집주인 녀석이 누렇게 바랜 흑백사진 한 장을 들고 나왔다. 4학년 때던가 교실 앞 화단에서 찍은 단체사진이었다.

이상락 소설가

난 보자마자 뒷줄 한가운데에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런데 한 친구가 앞줄 끝에 있는 누군가를 가리키며 “이거 너지?” 그랬을 때 “아니, 난 그날 학교 안 갔어!” 그래버렸다. 행색이야 다들 비슷비슷했지만, 그야말로 남루가 뚝뚝 듣는 꾀죄죄한 모습을 보니(게다가 무슨 불만이 있었던지, 아니면 햇살이 부셔서 그랬던지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빡빡머리의 꼬마 녀석을 대하자) 우습고도 이상해서, 나는 두 손을 저어가며 거기서 나를 지워버렸다. 더구나 그 자리엔 그 집의 안주인을 비롯하여 ‘기타 여러분’도 함께 사진을 구경하고 있었으므로.

6.25 전쟁 통에 경북 의성의 산운국민학교에 입학했던 이인영씨는 말한다.

“제대로 섭취를 못 하니까, 아이들 대부분이 영양실조에 걸렸다고 봐야죠. 의복도, 검은 물감 들여 만든 위아래 홑겹 무명 옷 하나씩 걸치고 다녔으니, 체온 유지가 제대로 안 되니까 감기에 걸려서 노상 콧물을 질질 흘리고….”

머리나 얼굴에 버짐이 피고, 사내 녀석들은 여기저기 부스럼을 달고 살았던 것도 청결 문제만은 아닌, 부실한 섭취가 원인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 중에서도 좀 낫이 산다는 집 아이들은 차림새도 멀쑥하였고, 공주처럼 뽀얀 낯빛을 한 여자아이들도 있기는 했다.

아이들만 꾀죄죄한 게 아니었다. 교실을 비롯한 학교 시설도 그러하였다. 일제 때나 해방직후에 지은 교실들은 대부분이 목조건물이었다.

학과 수업이 끝나고 청소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걸상을 책상위로 올린 다음 교실 뒤쪽으로 밀어붙이느라 쿵쾅쿵쾅 야단이 났다. 그러나 물걸레질을 할 수 없는 겨울철이 문제였다. 그래서 고안된 청소방법이 교실바닥에 때가 배어들지 않도록 양초를 칠하는 것이었다.

사내 녀석들은 양초를 칠한 바닥을 마른 걸레로 잘 문질러 반질반질하게 광을 낸 다음, 가령 도시에서 전학 온 새침때기 여자애처럼 평소 벼르던 아이를 그쪽으로 유인하여 ‘꽈당!’ 넘어지게 만들어서, 결국 울리고야 말았다.

60년대 말 혹은 70년대 초입에 들어서자 나라 살림살이가 조금쯤 나아졌고, 시골 국민학교에 새로운 교사를 짓는 개축 바람이 불었다. 이미 일제 강점기에 지은 목조건물은 낡을 대로 낡아서 더 이상 학생들을 수용하기 어려운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벽돌이나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이었다.

학교 건물을 신축하거나 개축하는 기간 내내, 주민들은 학부모이거나 아니거나를 불문하고 삽이며 곡괭이를 들고 공사현장으로 부역을 나갔다. 그런데, 나라 세울 때 개국신화가 만들어지듯, 새로 지은 학교들마다 전설 하나씩이 만들어졌다.

“엄마, 내일 봄 소풍 가는 날인데 비가 올 것 같아.”

“아이고, 니들 댕기는 학교는 어째서 큰 행사 있는 날마다 꼭 비가 오는지 모르겠네.”

“학교를 지을 때 억수로 큰 구렁이가 나왔는데, 그 구렁이를 집 짓는 인부들이….”

전국의 모든 국민학교는 터파기 공사를 할 때 반드시 구렁이가 나왔고, 그래서 죽였으며, 죽은 구렁이들이 두고두고 심술을 부려서, 중요한 행사 때면 비를 내리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런데 산운국민학교는 또 하나의 가담항설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이인영씨의 회고.

“6.25 때 우리학교를 야전병원으로 사용했는데, 죽은 인민군들을 변소에 내다버렸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나돌았어요. 물론 그 자리에다 나중에 변소를 새로 짓긴 했는데, 아이들은 귀신이 나온다고 해서 무서워들 했지요.”

여고괴담이 아닌 「초교괴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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