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쿠바는 굴하지 않는다

  • 입력 2017.12.17 12:47
  • 수정 2017.12.17 12:49
  • 기자명 이대종(전북 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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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종(전북 고창)

얼마 전 쿠바에 다녀왔다.

농업연수가 목적이었는데 쿠바와 우리는 많은 것들이 너무나 다르다. 기후와 풍토는 물론이고 경제체제도 다르다. 무엇보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반미국가와 친미국가라는 매우 심각한 차이가 있다. 그런 쿠바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것인가?

1959년 혁명 이래 미국은 쿠바를 봉쇄해왔다. 미국은 쿠바와 스페인 사이의 독립전쟁에 개입해 스페인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내고 쿠바에 군정을 실시했다. 미국은 다 된 밥상에 숟가락 얹는 방식으로 쿠바를 한입에 삼켰다. 그날 이후 미국은 친미정권을 조작하여 쿠바에 대한 실질적 지배를 유지했다. 그런데 쿠바혁명으로 친미독재정권이 몰락하자 미국도 쿠바에서 쫓겨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인권이고 민주주의고 다 허튼소리다. 미국의 경제봉쇄는 쿠바정부를 전복하고 쿠바에 대한 지배를 복원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트럼프는 오바마의 국교정상화 조치를 없던 일로 되돌리고 있다. 미국의 대(對)쿠바 고립압살 정책은 오늘도 지속되고 있다.

오늘날 쿠바농업은 미국의 경제봉쇄와 떼어놓고 볼 수 없다.

어쩌면 손쉬운 선택이었던 소련과의 우호 협력 관계가 무너진 이후 쿠바는 모든 것을 자체의 힘으로 해결해야 했다. ‘특별시기’라 일컫는 이 시기는 한반도 북녘땅의 ‘고난의 행군’ 시기와 겹친다. 두 나라가 겪은 위기와 그 대처법의 동질성은 미국의 고립압살 책동에 굴함 없이 생존의 길을 스스로 개척한 데 있다. 쿠바에서 만난 농업 관계자들은 쿠바가 개척해온 ‘도시농업’, ‘생태농업’의 성과를 자랑하면서도 쌀, 콩, 옥수수 등 주곡의 생산과 관련한 과제를 해결 못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쿠바와 우리 농업의 외견상 차이는 ‘결핍’과 ‘과잉’에 있다. 우리가 보기에 쿠바는 음악과 춤을 빼고는 거의 모든 것이 부족해 보이는 나라다.

쿠바 정부는 국민들에게 충분한 식량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자급률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곡물의 상당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니 쿠바 농업의 과제는 곡물 생산에서 돌파구를 찾는 것이 될 것이다. 반면 우리는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농산물 과잉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시 식량자급률은 형편없다.

어찌된 일인가? 쿠바의 결핍과 한국의 과잉, 그 근원을 미국에서 찾는다면 과한 것일까? ‘경제봉쇄’로 겪는 쿠바의 결핍과 ‘개방압력’이 불러온 한국의 과잉, 한국농업 과잉의 본질은 넘쳐나는 수입농산물에 있지 않은가. 오늘 우리는 또다시 밥쌀수입을 강요하는 미국과 이에 굴복한 정부를 본다. 불법무도한 박근혜 정권을 몰아낸 촛불혁명으로도 우리는 무엇이 부족하여 여전히 외세의 압박에 무릎 꿇어야 하는가?

일장기가 내려지고 성조기가 게양된 이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지만, 그날 이후 많은 정권이 명멸하고 교체되었지만 우리는 아직 미국의 국익을 거역하고 우리나라, 우리민족의 이익을 중심에 놓고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는 정부를 가져보지 못했다. 외견상의 풍요와 과잉 속에 말라죽어가는 우리 농업과 농민의 비극은 여기에서 비롯되고 있다. 나는 오히려 쿠바의 궁핍이 부럽다. 나라의 농업정책을 믿고 따르며 만족감을 표시하던 쿠바 농민, 그 이면에는 일선의 생산 농민들을 일일이 만나 가격을 결정한다는 정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정부는 오늘도 굴함 없이 미국과 맞서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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