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여성’도 농촌에 살아요

여성농민의 미래 고민하는 ‘청년여성농민캠프’

  • 입력 2017.12.17 10:57
  • 수정 2017.12.17 14:04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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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10일에 걸쳐 충남 홍성군 한울마을에서 ‘제3회 청년여성농민캠프'가 열렸다. 11명의 청년여성이 모여 농촌에서의 더 나은 삶을 이야기했다. 청년여성농민캠프 제공

 

당신은 농촌에 사는 ‘청년여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최근 성평등 실현에 대한 기대수준이 높아지면서 여성운동(페미니즘)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농촌에서는 아직 먼 나라 얘기다. 공동체 내 소수 중에서도 소수자인 청년여성농민들이 이를 외치는 것은 생존권의 상실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충남 홍성군 한울마을에서 이틀에 걸쳐 열린 ‘제3차 청년여성농민캠프’에서 나온 농촌 청년여성들의 고충, 그리고 그들이 꿈꾸는 삶을 간략하게나마 지면에 옮긴다(참가자 이름은 가명을 사용). 

 

발췌 - 농촌청년여성이 겪은 좌절성토대회

 

덕자 : 성차별이라는 씨앗은 농촌과 도시에서 각각 다른 형태로 발현된다. 여러 사례를 비춰보면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의 페미니즘은 다른 방법으로 외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달짱 : 조금 보수적인 입장이다. 기존 농촌 문화가 우리의 그것과 격차가 있고, 강제로 변해야한다 외쳐도 아마 변하진 못할 것으로 본다. 같은 여성인 내가 봐도 우리 문화가 가끔은 남사스러울 때가 있는데 기존 문화에서는 얼마나 낯설까. 어른들을 나무라지 말고 맞춰주는 대신 우리는 우리 세대의 문화를 만들어 가면 된다. 대립까지 할 필요가 없다.

연두 : 농사짓는 부모님이 계시다보니 이 분들의 분위기를 맞출 줄 안다. 성역할을 구분 짓는 건 차별보다는 애정의 표현으로 해석하고 있다. ‘예쁘니까 빨리 이 공동체에 적응하게 해주고 싶다’는 그들의 방식이다. 하지만 이게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불편하고 힘들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신다. (오려는 사람들은) 농촌 공동체라는 특수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농촌에 사는 건 대체 뭘까, 정말 새로운 대안일까? 오히려 성차별과 관습과 문화가 고정돼 있고 텃세가 굉장히 심한 곳이다.

물론 도시 출신이 ‘거기 남자가 가는 자리야, 부엌으로 와’ 라고 했을 때 ‘내가 왜 그래야하지?’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그래도 ‘여러분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싶어요, 제 얘기를 해도 될까요?’라고 말하는 지혜가 좀 필요하지 않을까. 어쨌든 결론은 적응 과정을 거치고 자기 목소리를 내라는 것. 그렇지 않으면 혼자 살아야하는데 농촌에서는 너무 힘든 일이다.

동건 : 방향성은 뚜렷한데 살기 위해 타협해야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내가 한 발 물러서는 건가 아니면 그저 조화롭게 살기 위함인가. 요즘은 가부장적 얘기를 들을 때 ‘저분들은 평생 저런 게 당연한 줄 알고 살았을텐데’라고 생각하니 그런 얘기가 불편하지가 않더라. 그런데 내가 이렇게 한발 물러서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삐삐 : 나도 여자지만 가끔은 이 페미니즘이 불편할 때가 있다. 너무 강한 얘기다보니 내가 그 기준에 따르지 못할 때는 가끔 자기부정을 하게 된다. 그래서 자기 상황에 맞춰서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도시에서처럼은 분명히 할 수 없고 설령 그렇게 한다고 해서 결국 누구한테 좋은 것일까. 서로에 대한 이해 없이 내가 옳다는 주장만으로는 좋은 해결책을 찾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두 : ‘농촌에서 남성은 이래야해, 여성은 이래야해’, 이렇게 재단하는 것에 저항해야한다. 하지만 먹고 살아야하니까, 아이도 신경 쓰고, 농사도 안정되기 위해서 막 헤엄치고 있는 상황이라 차별에 대해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자신감이 없어 난 좀 타협 중이다.

덕자 : (하나의 정의를 내리기엔) 지역·공동체마다 문화와 기준이 다르다. 어떤 여성은 유별나다고 생각하는 걸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누구의 기준을 어떻게 따를 건가? 타협 여부를 떠나 ‘평등하지 않은 구조가 우리 공동체 내에 있구나’하고 인식하는 것, 그래서 불편함을 느끼는 여성들이 목소리를 낼 때 우리가 등 돌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겠다.

 

수다를 마친 이들은 이튿날 ‘좌절금지를 위한 농촌 성인지정책’을 상상했다. 청년여성농민들은 이 자리에서 떠올린 다양한 아이디어가 정책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여성용 농기계 임대 사업 : 1인 여성 가구의 농기계 접근성 향상을 위함. 여성을 대상으로 한 소형 기계들이 출시되고 있지만 임대사업소에는 아직 남성 농민의 임대만을 상정해 기계를 갖추고 있다.

△청년여성 문화 공간 : 최근 농촌사회는 공부방이나 도서관 등 청소년을 위한 공간을 지속적으로 갖추고 있는 추세. 그러나 청년, 특히 문화생활과 커뮤니티 형성의 욕구가 강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전용 공간은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급변한 주거환경에 적응해야하는 도시 출신에게는 특히 도움이 될 것이다.

△1인 여성가구 안전정책 : 도시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는 1인 여성가구의 안전 문제 해결. 혼자 사는 여성을 지키는 정책은 곧 노령 1인 가구들을 위한 정책이기도 하다.

△성인지 교육 프로그램 운영 : 여성운동을 하는 이들로 하여금 농촌에 거주하게 하며 교육의 기회가 없었던 농촌에 성인지 정책을 소개하고 강의하게 한다. 농촌사회의 성인지 실태를 개선함으로서 농촌여성의 권리신장을 기대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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