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農·寫] 시퍼렇던 무밭, 갈아엎다
[사진이야기 農·寫] 시퍼렇던 무밭, 갈아엎다
  • 한승호 기자
  • 승인 2017.12.15 1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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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가격 하락에 제주 농민들 산지 격리 나서
트랙터가 지난 자리마다 산산조각 으깨진 무와 무청들이 흙과 뒤범벅돼 나뒹굴었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무밭 3,000평을 갈아엎는 데 필요한 시간은 1시간여 남짓이었다. 트랙터 후미에 달린 쟁기가 빠르게 회전하며 밭을 ‘뚜드리자(농민들은 갈아엎는다는 말 대신 뚜드린다고 했다)’ 수확을 앞둔 무가 산산조각 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생생한 무청이 시퍼렇게 펼쳐진 밭은 순식간에 으깨진 무와 흙이 범벅된 쑥대밭으로 변했다.

지난 13일 올해 경작 면적 7,000평 중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면적을 갈아엎은 김병만(65,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씨는 “워낙 가격도 없고 불안정하니…”라며 말을 채 잇지 못했다. 시름 깊던 그의 눈은 매서운 한파와 바람이 몰아닥친 제주의 겨울 날씨만큼이나 을씨년스럽게 변해버린 무밭을 응시할 뿐이었다.

앞서 제주월동무생산자협의회는 농민 자율폐기 500ha 포함 총 1,200ha에 달하는 무 산지 격리에 동참하며 비상품 월동무는 출하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제주산 월동무 생산량 증가로 가격 폭락이 현실화되고 판로에 어려움이 예상되자 도와 농협, 농민들이 나서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한 것이다.

다만 농민들은 무를 갈아엎더라도 가격지지가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의 강력한 수급 대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항상 되풀이되는 농산물 폐기를 근절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날 농민과 함께 무 폐기현장을 지켜보던 정종근 제주 성산일출봉농협 유통사업소 부소장은 “산지 상황을 반영하듯 가격이 좋지 못하다”고 말했다.

14일 현재 서울 가락시장의 무 경매가격은 18kg(특품) 기준 10,000~1만1,000원 수준에 머물러 작년 평균 가격인 1만6,000원선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상품과 중품의 경우엔 가격하락세가 더욱 뚜렷하다. 특히 이달 하순 월동무 출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가격이 더욱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생산비 보전마저 어려운 상황에 농민들의 한숨만 깊어갈 따름이다.

이날 오후 성산일출봉농협 유통센터에선 육지로 보낼 고품질 월동무의 포장, 팰릿 작업이 한창이었다. 똑같이 피땀 흘려 키운 무를 갈아엎은 농민들의 자발적 희생에, 시장은 어떻게 답해줄 것인가. 농산물 가격에 농민들이 죽고 산다. 예나지금이나 변치 않는 엄연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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