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국민학교③ 우리학교는 ‘우리’ 학교다!

  • 입력 2017.12.15 13:36
  • 수정 2017.12.15 13:38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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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에 의하면 1965년도의 초등학교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62.4명이었고, 1970년도의 초등학교 학급 당 학생 수는 62.1명이었다. 전국 평균치가 그러했다는 얘기고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 초등학교의 경우 80~90명에 달하는 아이들을 한 교실에 ‘몰아넣고’ 가르치기도 했다. 그나마도 교실이 태부족하여 1970년도의 조사 통계에 의하면 당시에 2부제 수업을 실시하던 초등학교 수가 2,688개교에 이르렀다. ‘오전반-오후반’ 혹은 ‘아침반-점심반’이라는 말이 일상어로 통용되던 시기였다.

이상락 소설가

건조하게 통계숫자 들이대지 않더라도, 교실은 하나인데 무려 84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한꺼번에 입학한 나의 섬마을 초등학교 시절이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안 되겠다. 책상하고 걸상을 전부 복도로 내 가야겠어!”

밭은기침을 아예 입에 달고 다니던 나이든 담임 선생님은, 책상을 그대로 두고는 도저히 밀려드는 아이들을 한 교실에 수용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는, 책걸상 모두를 복도로 내가게 했다.

여든 명이 넘는 아이들이 병아리새끼들처럼 바닥에 앉았다. 3월 초순이었으므로 아직은 날씨가 썰렁했는데, 하필 내가 앉은 자리엔 교실 마룻바닥의 옹이가 빠져나간 구멍이 뚫려있어서, 그 구멍으로 바람이 솔솔 올라왔다. 홑 잠방이 속 사타구니로 파고드는 그 한기 때문에 오들오들 떨면서, 선생님의 밭은 기침소리에 장단 맞춰서 나도 연신 콜록거리면서, 자꾸만 흘러내리는 콧물을 소매로 문지르거나 훌쩍거리면서…아, 나의 초등학교 신입생 시절은 그처럼 기구한 바 있었다!

며칠 뒤 등교해보니 교실이 훤하게 넓어져 있었다. 우리 반 바로 옆은 조금 작은 5학년 교실이었는데, 두 교실을 가로막고 있던 미닫이 칸막이를 떼어내어서 교실을 하나로 만든 것이다. 우리는 84명이라는 거대한 규모의 물량으로 밀고 들어가서는, 30여 명에 불과했던 5학년 언니들을 ‘오후반’으로 구축(驅逐)해(?) 버렸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학동들을 이리저리 ‘돌려막기’ 해가면서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교실을 새로 더 지어야 했다. 어른들 얘기를 얼핏 건너듣자 하니 행정당국에서는, 건물을 짓는 것은 어떻게 해주겠는데 땅은 지역주민들이 알아서 마련하라고 했다. 처음 학교를 지을 때에도 유지들이 십시일반으로 터를 마련하고, 지역출신 독지가가 자금을 일부 기부해서 건물을 지었다고 했다.

열네 살 때(1926년) 경북 의성군 금성면 산운초등학교에 1학년으로 입학했었다는 이시하 할아버지의 얘기는 이렇다.

“일정 때(일제 강점기) 의성군 전체에 학교가 두 군데 밖에 없었어. 거기 가자면 50~60리나 되는 길을 걸어서 다녀야 하는데 불가능한 얘기지. 그래서 아예 공부는 포기하고 몇 년을 그냥 까막눈으로 지냈다구. 그때 유지들이 의성 군수한테 가서 학교를 지어 달라 하니까 동네에서 부지를 확보하면 지어주겠다고 한 거야. 당시 우리 동네에서 재산이 좀 있다는 한 독지가가 땅을 희사하고, 주민들은 땀 흘려 부역을 해서, 마침내 산운초등학교 건물을 지은 거야.”

대개의 시골 초등학교가 이와 유사한 절차를 거쳐서 문을 열었다. 따라서 비록 그것이 해당지역의 교육청 재산으로 등재돼 있다고 해도 온전히 관(官)의 재산은 아니다. 요즘 속출하는 시골의 폐교를 교육당국에서 함부로 처리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지역 공동체 구성원들이 상당 지분의 권리를 갖고 있으므로.

우리 섬마을은 모래가 없고 해변이 갯돌 밭이었기 때문에 현지에서 벽돌을 생산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교사 증축에 필요한 벽돌을 배로 실어 날라야 했다. 벽돌 실은 배가 들어오면 전교생이 수업을 작파한 채, 책보자기를 들고 바닷가로 나가서는, 벽돌 몇 장씩을 싸들고 낑낑대며 운반해야 했다. 우리는 1학년 때에 벌써 건설현장의 막노동을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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