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먹을거리’ 프레임에 포위된 친환경 인증제

기존 ‘안전성 강화, 규제 강화’ 위주 개선안과 거의 차이 없어
친환경농업 정책상 문제, 모두 민간인증기관과 농가 책임?

  • 입력 2017.12.10 12:15
  • 수정 2017.12.10 12:16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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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정부의 친환경농업 정책이 ‘안전한 먹을거리’ 프레임에 완전히 포위됐다. 소비자를 안심시킨다는 명목 하에, 정부는 기어이 친환경농업 전반에 대한 규제와 문제행위 적발 시의 처벌 수위를 한층 강화할 모양새다. 이 정책대로 간다면, 친환경농민들은 여전히 ‘예비범법자’로 취급당할 운명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6일 전북 무주군에서 친환경농업 관계자들과 가진 워크숍에서 정부의 친환경농업 인증제도 ‘개선방안’을 공개했다. 이날 참석했던 친환경농업 관계자들에 따르면, 해당 개선방안은 그 전까지 정부가 언급해 왔던 규제 강화 중심의 방안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수준이었다. 일부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개선안은 이미 농식품부 김영록 장관의 결재까지 마친 채 국무총리실 단계까지 넘어갔다고 한다.

개선방안은 거의 대부분 친환경농산물 안전검사 및 위반농가 처벌 강화, 친환경 인증기관 관리감독 강화 내용이었다. 우선 친환경 인증 신청 시 해당 농가의 모든 생산물에 대한 안전성 검사 및 친환경 축산농가의 방사형 사육장에 대한 잔류농약 검사도 강화할 예정이다. 농가가 친환경 인증을 받은 후에도, 인증 위반 우려 농가에 대해 연 2회 이상 안전성 검사를 실시한다.

지난 10월 1차 개선안 공개 시 많은 비판을 받았던 ‘삼진아웃제’, 즉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농약을 사용해 잔류허용기준치 이상의 농약이 검출된 농가를 친환경인증제 상에서 영구 퇴출하는 내용도 그대로 들어갔다. 또한 축사에 농약을 사용하거나, 축산물에서 농약 등 위해성 물질이 검출되는 경우 즉시 인증 취소할 계획이다.

친환경 민간인증기관에 대한 규제도 강화된다. 내년 상반기부터 인증기관에 대한 평가·등급제를 실시해, 평가 결과 3회 연속 ‘미흡’ 판정을 받은 인증기관을 퇴출시킨다. 또한 부실인증 방지 명목으로 인증기관 심사기준과 인증심사원 자격기준도 강화된다.

개선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친환경농업계가 줄기차게 이야기했던, 비의도적 농약 혼입 농가에 대한 정부의 구제방안이 마련됐다. 농약 검출 시 1차부터 해당 농가에 대해 인증 취소하던 현행제도를, 1차 검출 시 시정명령-2차 검출 시 인증 취소 내용으로 바꿀 방침이다. 그러나 여기엔 ‘농약의 잔류기준을 초과하는 경우 비의도적 혼입일지라도 인증농가는 인증 취소’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사실상 ‘반쪽짜리 개선안’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농식품부는 이 ‘구제방안’에 대해 ‘현장중심 정책개선 우수사례’로 선정했다.

그 동안 친환경농업계는 지나치게 (잔류농약 검사)결과 위주, 안전성 강화 위주로 치우친 인증제도를, 농사 전반에 대한 과정을 살피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고 북돋우는 방향으로 개선할 것을 주장해 왔다. 그럼에도 기존의 안전성 관리강화 위주의 정책을 오히려 더 강화하겠다는 농식품부의 입장에, 친환경농업계는 상당히 실망하는 분위기이다.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김영규 정책기획실장은 “오는 14일 친환경농업계 합동으로 진행하는 토론회에서 해당 문제에 대한 농식품부의 최종 입장을 듣고자 김영록 장관을 초청했는데, 오기 힘들다고 한다. 정 안 되면 차관, 차관보 또는 국장이라도 와서 이야기하라는 게 우리 입장”이라 밝혔다. 농식품부가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을 시, 더욱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겠다는 게 현재 친환경농업계의 입장이다.

이러한 정부 당국의 분위기와 맞물려, 경찰청은 지난달 친환경 인증 관련 불법행위를 224건 적발하고 412명을 입건했다고 발표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최근 57곳의 친환경 민간인증기관 중 49곳을 관련 규정 위반 명목으로 적발하고, 그 중 5개소에 기관 지정 취소 처분, 30개소에 업무정지(최대 6개월) 처분을 내렸다. 아무리 ‘살충제 계란 파동’ 이후 먹을거리에 대한 소비자의 우려가 높아 그에 발맞춘 조치라 해도, 정부의 근본적인 친환경농업 정책 전환이 필요한 문제에 대한 책임을 사실상 민간인증기관과 농가에만 미루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친환경인증기관협회 김범석 회장은 “이번에 경찰에서 인증기관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몇 년 전 행정처분을 이미 받았던 기관까지 또 탈탈 털 정도로 강도 높은 조치가 이뤄졌다. 실제로 잘못한 기관들도 있지만 도매금으로 (문제기관으로)넘어간 기관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친환경축산농가에 정부가 허용한 자재 13가지에 전부 농약 성분이 들어갔고, 이를 각 지자체에서 보급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법적 제재가 하나도 없었다”며 “그럼에도 정부는 오직 민간인증기관과 농가만 잠재적 범죄자 취급한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민간인증기관 뿐 아니라 친환경농업 자체를 ‘올스톱’시키려는 것”이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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