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푸드플랜, 무엇을 채울 것인가?

  • 입력 2017.12.09 22:38
  • 수정 2017.12.09 22:42
  • 기자명 윤병선 건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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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선 건국대 교수

최근 한국사회에서 푸드플랜과 관련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단 하루라도 푸드(먹거리)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없었는데, 푸드플랜이 갑자기 화두로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촛불혁명을 기반으로 들어선 정부이니만큼 먹거리와 관련된 논의가 보다 근원적이고, 통합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희망을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라면 의미있는 푸드플랜으로 귀결될 것이다. 그러나 혹여 지난 여름 살충제 계란 사건이 터지면서 확산된 먹거리 불안에 대한 즉흥적인 대응의 형태로 푸드플랜에 대한 관심이 촉발됐다면 푸드플랜에 대한 논의는 별다른 성과없는 말잔치로 그칠 공산이 크다. 왜냐하면 푸드플랜이라는 말이 회자되기 전에도 먹거리의 안전과 관련한 정부의 정책은 감시와 관리의 강화에만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푸드플랜은 먹거리의 문제를 생산에서 유통, 가공, 소비, 그리고 재활용 및 폐기를 순환적, 통합으로 파악한다는 것이 그 출발점이고, 한국 사회의 먹거리문제는 거대 농기업이 현대의 먹거리체계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발생했다는 인식에 대한 공유가 필요하다. 현대의 기업이 주도하는 먹거리체계는 생산에서 유통, 가공, 소비를 분절적 형태로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생산의 주체인 농민과 소비의 주체인 지역민과 국민들이 주도권을 상실했다. 더 큰 문제는 먹거리가 단순한 상품으로 취급되면서 먹거리와 관련한 농민과 지역민, 국민이 대상화됐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한 고민이 푸드플랜에 담겨져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푸드플랜을 만들어야 할까? 첫째, 지역: 현대의 농식품체계는 지역단위의 순환적 체계를 무너뜨리고, 소비와 생산을 단선화하면서 국경까지 허물어 버린 구조이므로, 푸드플랜의 첫 고민은 지역을 근거지로 이뤄져야 한다. 지역을 기반으로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공간적 순환과 상생의 체계를 만드는 것이 푸드플랜이 1차적으로 수행해야 할 영역이다. 이러한 수행과정에서 생산과 관련한 농민의 권리, 지역민의 먹거리 기본권 확보, 생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도시: 우리나라의 경우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먹거리의 생산기반이 파괴된 지역들이 다수 존재한다. 특히 서울과 같은 대도시는 생산에 기반한 총합적인 푸드플랜을 만드는 것이 물리적으로 어렵다. 이런 경우에는 생산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지역과 연계한 ‘도농상생’의 푸드플랜을 만들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서울이 시도하고 있는 ‘도농상생 공공급식’은 하나의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생산기반이 취약한 도시들은 광역지자체내의 인근 군 단위와 어떻게 관계망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푸드플랜에 담겨져야 할 것이다. 단순한 직거래의 외연적 확대가 아닌, 먹거리를 매개로한 내포적 심화가 푸드플랜을 채워야 한다. 셋째, 중앙정부 : 지역의 푸드플랜이 제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울타리가 되고, 언덕이 되는 것이다. 먹거리가 결과물로서의 푸드, 감시대상으로서의 푸드에서 벗어나서 농업과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해 내고, 농민의 권리를 지켜내고, 농업의 다원적 기능과 공익적 가치를 지켜냄으로써 국민 모두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식탁에 올리는 일이다. 이런 울타리가 만들어지지 않는 한 지역단위의 푸드플랜도 또 하나의 몸살로 끝나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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