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화된 농협, 조합원이 변해야 직원도 변해
관성화된 농협, 조합원이 변해야 직원도 변해
  • 김순재 전 조합장
  • 승인 2017.12.08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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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일을 잘 잊어버리지만, 그 중에서도 이익을 가져다 준 사람은 잘 잊어도 자신에게 특별히 손실을 강요한 사람은 절대 잊지 못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남에게 어떤 형태였건 손실을 강요한 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아 있는 것들이 몇 있는데 대부분이 조합장을 하면서 일어난 일들이다.

김순재 전 조합장

2010년 3월 15일, 조합장에 취임하고 5월 2일자로 첫 업무 분장을 했다. ‘업무 분장의 결과’로 나타난 내용은 우리 농협의 3급 이상 간부직원 7명 중에서 2명을 농협에서 내보내는 것이었다. 조합장 취임 후 내가 본 우리 농협의 현황은 도덕적인 해이함은 물론이거니와 여러 부분에서 법을 심각하게 위반한 내용들이 있었다. 그 책임을 물어 직접 행위에 가담한 것으로 확인된 직원 2명에게 대기발령을 내고, 대기발령 사유를 전달하며 해명을 요구했다.

아울러 해명 내용이 상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내용이면 징계를 하겠다는 입장도 알렸다. 2명의 대기발령자 중에서 한명은 명예퇴직 여부를 물었고, 또 다른 직원은 ‘대기발령 사유를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농협의 일부 대의원, 조합원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명예퇴직을 신청한 직원은 명예퇴직 처리를 했다. 명예퇴직도 거부하고, 대기발령 사유도 ‘인정할 수 없다’는 직원은 절차를 거쳐서 해직시켰다. 명예퇴직을 한 직원이나 해직된 직원은 젊어서부터 농협에 근무한, 이른바 ‘청춘을 농협에 바친 사람’, 그리고 간부 직원이었다.

농협의 주인이라는 농민조합원들은 농협에 청춘을 바치지는 않지만 농협의 오래된 직원들은 청춘을 농협에 바쳐온 사람들이다. 한 명의 간부직원은 명예퇴직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불명예스럽게 청춘을 바친 농협에서 나간 것이고 다른 한 명은 징계로 해고처리가 된 것이었다. 한 명에게 명예퇴직으로 사표처리를 하고 집에 돌아온 날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한 집안의 가장이었을 사람이고, 농협에 청춘을 바친 사람이고 정년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사람을 내보낸다는 것 자체가 매우 불편했다.

개인적으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니 개인적인 악감정이 있을 것도 없는 사람이었다. 농촌지역 농협의 특성상 대부분 서로 한 다리 건너면 알만한 관계에 걸리는 경우였지만 명예퇴직 형태로 사표를 받았던 것이었다. 조합장 하는 기간 내내 사표를 내고 집으로 간 그 직원을 오랫동안 생각했고, 해고된 직원도 자주 생각했다. ‘얼마나 내가 미울까?’를 생각하니 인간적으로는 오랫동안 미안했다.

명예퇴직도 거부한 직원은 대기발령 후 인사위원회를 열어서 해고시켰다. 이후 해고된 직원으로부터는 해고 한 달이 지나지 않아서 해고 무효 소송이 제기됐다는 내용을 법원으로부터 통보 받았다. 해고 절차를 거치는 과정 탓에 5월에 대기발령 시킨 직원을 2010년 12월에서야 해고시키고, 2011년 1월에 해고무효 소송이 시작돼 사실상 조합장 임기에 해당하는 2014년 3월까지, 38개월간의 소송과정을 거쳤다. 38개월의 소송을 거쳐 대법원 확정 판결로 해고가 확정된 날, 지나온 스트레스를 빙자해 엄청나게 술을 마셨다. 나하고는 개인적으로 묵은 악감정이 없었던 사람인데, 명예퇴직 시키고, 징계해직을 시켰던 것에 대한 인간적인 회의가 엄청 밀려 왔었다.

농민 조합원이 나서지 않는 한 농협 직원은 바뀌지 않는다. 오랜 기간 관성화된 농협 사업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역할도 조합원들이 앞장서야 한다. 사진은 농협 농자재센터를 이용중인 조합원들의 모습. 한승호 기자

징계는 괴로워

조합장을 하면서 징계를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징계를 앞두고는 늘 괴로웠다. 전무를 하다가 우리 농협에서 상임이사를 맡았던 분이 “조합장님. 인사에서 이익을 준 경우에는 혜택을 받은 사람이 쉽게 그 내용을 잊어버리지만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로 그 내용을 잊지 않습니다”라는 조언이 오랫동안 인사조치에 대한 내 생각의 기준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 뒤로 직원들의 큰 잘못도 없었지만 젊은 직원들의 업무상의 잘못에 대해 징계를 진행할 땐 상당히 느슨한 측면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에 어떤 조합원이 묻기를 ‘지난번 인사조치에서 조합장이 상당히 독하게(?) 처신 하더니 지금 부드러워진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었다. 잠시 생각하다가 ‘농협이건 어디서건 일을 하다가 상당한 나이가 들고 관성에 빠지면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기가 쉽지가 않은 듯합니다. 25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면 사람의 생각이 굳어져 바뀌기가 힘들기에 그들에게는 많이 독했고 지금 가벼이 징계를 하는 것은 여전히 기회를 줄 필요가 있는 젊은 직원이라서 그런 모양입니다’라고 했다.

조합장을 하면서 지역본부의 인사위원회도 가본 적이 있는데, 징계권자가 된다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이고, 엄청난 고역이었다. 그러나 책임자가 됐으면 괴로운 고역일수록 절대로 소홀하면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나고 보니 잘못도 있었지만, 조합장 초기 징계수위를 강하게 잡았던 기준은 농사를 짓다가 조합장이 된 사람으로서 도저히 그 비위행위를 용납하기가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경영위기를 불러일으킨 금융사고

지금 전국의 몇 백 개의 지역농협이 합병의 압박이나 유혹에 빠져 있는 듯하다. 많은 농협이 관제적인 사업을 벌여오다가 그 사업들이 변하는 시장을 예측하지 못하고 본래의 기능에서 벗어나 불균형적인 사업을 하다가 경영의 어려움에 처하고 그 타개책으로 중앙조직은 지주회사-자회사로 전환시키고, 지역농협은 합병이라는 과정으로 덩치를 키워서 난관을 빠져 나갈 모양이다. 그러나 이는 당장의 조직 안위에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한국농업을 근본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에는 상당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경남의 경우 이미 부실해져서 합병이 됐거나 합병이 논의되고 있는 농협들은 그 내용이 참으로 부끄럽다. 언론에 보도된 지난 10년간 합병된 경남지역 농협들은 사실상 횡령이나 배임에 해당되는 범죄가 일어난 농협들이 상당수다. 농업의 여건이 어려워져서 농업협동조합이 어려워진 경우보다는 농협 그 자체가 사고를 저질러서 어려워진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좁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대다수의 지역농협들의 근무자들은 알음알음으로의 관계가 서로 엮여 있는 경우가 많아서, 엄중히 처리해야하는 업무도 인정에 따라 처분한 경우가 많아 보였다.

며칠 전에도 합병대상인 농협의 조합원들이 찾아와서 합병의 유·불리를 두고 밤늦게 토론을 한 적이 있었는데, 기본적인 내 의견은 ‘덩치를 키우는 협동조합이 옳은가?’에 대한 우려를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 몇 가지 물어보기를 최근 10년 이내에 해당 농협에서 발생한 금융사고를 포함한 부실한 방식의 경영에 대하여 물어보니, 규모에 비해 적지 않은 사고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된 농협이었고 사고가 있을 때마다 인정에 따라 사고를 수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우리나라 농업협동조합의 대다수가 수익을 내는 방편으로 경제사업보다는 상호금융사업에 의존하고 있다. 경영의 중심을 금융에 두고 있으면서 금융사고에 안이하게 대처한 경우가 많았다. 배임형태이면서 일정 금액이 넘어가는 수준의 금융사고들이 자기자본이 약한 농협에 치명적인 경영위기를 불러온 것이다.

지역농협 합병, 심각하게 고민해야

영세농들을 모아서 공동생산 공동판매를 중점에 두고, 상호간에 필요한 농업비용도 융통해가면서 농업을 잘하라고 만들어진 것이 농협이다. 그러한 농협이 금융에 집중하고 금융관리가 부실해 오히려 농민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는 것이 돼버린 안타까운 상황이다. 부실해졌다는 지역농협의 사소한 합병보다는 이제 지역농협에서 상호금융 사업을 일정정도 떼 내는 일이 더 시급할 수도 있다. 지역농협들의 상호금융연합회를 만들어 일정정도는 효율성 있게 상호금융을 관리하는 방법도 필요한 시기가 됐다고 본다.

어차피 우리 사회의 팽창하는 통화량에서나 금융에서의 경쟁력 있는 경영을 위해서는 단일 자기자본으로 ‘500억원의 금융규모나 5,000억원의 규모’는 그리 큰 의미가 없는 것으로 봐야한다. 지금 만약에 농협중앙회가 자기자본 1,000억 이하이거나 조합원 1,000명 이하인 농협을 합병 대상으로 두고 500여 농협을 줄인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면 이 또한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하는 문제이다.

엊그제 합병 논의와 관련된 농협의 경우 합병하면 농협중앙회에서 실이익 연간 8억원에 해당하는 ‘무이자 자금 400억원을 지원한다’고 했다고 합병 찬성 측에서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전하는 측은 이미 농협에서 지금까지의 경영 흐름에 편승해 왔던, 지금의 농협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 농협은 결코 정상적으로 우리가 협동조합에서 기대하는 사업을 피해온 것으로 보였다.

타성을 깨기 위한 노력 필요

조합장 시기에 판매관리비 흐름표를 여러 차례 분석해본 적이 있다. 2010년에 조합장이 되고 2012년에 전 직원 회의에서 그 흐름표에 대한 의견을 낸 적이 있었다. 그 때의 의견으로 금융시장 등의 외부적인 충격이 없는 것으로 가정하고, 괄목상대할 만한 성장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10년을 전후한 시기, 그러니까 2022년을 전후해 우리 농협은 상당한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는 의견을 냈었다.

실제로 늘 그랬듯이 농촌지역의 농협경영은 빡센 듯 보인다. 이것이 농업시장의 축소와 관련돼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지만 나는 그리 보지 않는다. 경영이 어려운 것은 사업을 하지 않아서다. 농협에 잠시 몸담은 연유로 주의 깊게 보고 있는 몇몇 농협들은 상당히 공세적으로 사업을 잘하고 있고, 변하는 시장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농협들은 제대로 된 사업자체를 안하고 있다. 이는 농민들에게 매우 불행한 일이다. 조합장 초기에 빡세게 징계하고, 강하게 사업을 밀어 나갔던 이유도 아마 어려움이 예측됐기 때문에 그러했으리라고 생각된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관성에 젖은 방식으로 비용을 집행하고 사업하면 반드시 어려움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관성의 틀을 깨는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 일정정도는 피를 보는 어려움을 감수했던 것 같다.

직원회의에서 비아그라 개발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타성에 젖으면 도태 당할 가능성에 대한 경고를 한 회의였다. ‘심장약을 개발하려다가 심장 기능에 대한 개선 기능보다는 부작용으로 남성 발기에 영향만 끼치는 일이 발생해 심장약으로의 신약 개발을 중지하고 논문으로만 남겨 놓은 자료가 있었다. 그 논문을 어느 제약회사 젊은 직원이 보았고, 책임자에게 남성 발기부전 치료약으로 개발해보고자 수차례 건의를 하다가 묵살되고 제약회사 사장에게 직접 건의해 젊은 직원이 개발 책임자가 돼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는 내용을 이야기 하면서 이미 농협에도 젊고 유능한 직원들이 많이 들어와 있으니, 그 직원들을 자주 교육하고 토론 시켜서 협동조합이 농민·농업에 복무하고 있고 우리 사회에서 스스로가 유익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낡은 생각을 가진 구성원에게는 그냥 비아그라 이야기나 하는 쓸데없는 회의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틀의 농협은 이미 40년이 넘었다. 그 사업의 내용은 상당부분은 타성에 젖어 있다. 그 타성을 끊임없이 깨기 위한 노력들을 해야 한다. 조합장 시기에 느끼기를 농협이 이대로가 좋다는 사람들 대부분은 거의가 정년이 5년 정도 남은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협동조합에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직장이 돼버린 사람들이 너무 많아 보였다. 오랜 기간 농협의 관제적이면서 관성화된 사업이 원인으로 보였다. 농협의 틀을 바꾸는 것은 조합원부터, 그 다음은 임원, 임원 다음이 직원이라고 생각한다. 입으로는 주인이라고 말하는 조합원이 먼저 나서서 바뀌지 않으면 직원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고 본다. 그들은 늘 청춘을 협동조합에 바치고 있지만 그 협동조합이 직장이기도 하니까.

‘김순재의 농협 빗장풀기’를 매월 1회 연재합니다. 창원 동읍농협 조합장을 역임했던 김 전 조합장이 들려주는, 늘 곁에 있으나 잘 알지 못했던 농협 이야기에 함께 귀 기울여 볼까요.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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