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국민학교② 우리는 콩나물처럼 부대꼈다

  • 입력 2017.12.08 15:06
  • 수정 2017.12.11 15:26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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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분필로 칠판에 그리거나 두드리며) 그러이께네 5에다가 7을 보태마 얼마제? 여기 알사탕 일곱 개가 있는데, 열 개가 될라카모 얼매가 모자라노? 세 개 모자라제? 저기 있는 다섯 개에서 사탕 세 개를 이짝으로 갖고 와보자. 그라모 저기는 두 개가 남제? 그래서 답은 열 개 하고도 두 개, 12가 된다카이. 그래도 모르겄나? 이런 멍충한 자슥들!

이상락 소설가

효과 (아이 울음소리)

교사 영순아, 퍼뜩 복도에 나가서 아 좀 달래갖고 온나. 시끄럽워서 수업을 할 수가 있나.

소년 (출입문 열고)헹님아, 아부지가 공부 그만하고 퍼뜩 와서 소 꼴 베러 가라 카드라!

효과 (아이들, 까르르 웃음)

소설 「상록수」의 여주인공 영신이, 청석골의 예배당을 빌려 야학을 열었던 일제강점기의 얘기가 아니다. 60년대 초,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산운국민학교 어느 교실의 수업장면이다. 하루하루 살아내기가 고단하기만 하던 시절이었으니, 잠시 짬을 여투어 아이를 업은 채로 와서 글자를 깨치고, 집안에 바쁜 일이 있으면 산수공부를 하다가도 불려 나가는 당시의 교실풍경이, 오히려 출결석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요즘보다는, 마을공동체 내에 있는 기초교육기관으로서 훨씬 더 자연스런 모습이 아닐까?

꼭 그 학교가 아니라도, 시골 어느 국민학교라도 그러하였다. 참, 위의 극본에서 배경 효과음으로 들어가야 하는 소리가 더 있다. 교실 여기저기에서 무시로 들리는 코훌쩍이는 소리다.

“전쟁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먹고 살기에 바빠서 학교를 제 때 들어가지 못 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어요. 같은 학년인데도 두세 살 차이 나는 건 보통이었고, 많으면 다섯 살이나 차이가 나기도 했다니까요. 나이차이야 그렇다 쳐도 워낙 많은 학생을 좁은 교실에 몰아넣다보니 늦게 등교한 사람은 교실 뒤쪽 바닥에 앉거나 서서 공부해야 했고….”

1960년대 초에 산운국민학교에 입학했던 임재환 씨의 회고다. 취학연령대에 이른 아동의 수는 급증했는데 그들을 수용할 교실, 즉 초등교육을 위한 ‘인프라’가 태부족하다 보니 과밀학급은 피할 수가 없었다.

1960년대에서 70년대로 이어지는 그 시기의 사회상을 상징하는 먹을거리를 대라면 단연 콩나물이었다. 쿠데타 세력이 주창한, 이른바 <혁명공약>에 등장하는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표현하는 데에는 ‘멀건 콩나물국’이라는 한 마디면 충분했고, ‘콩나물 버스’는 단순하게 교통난을 풍자하는 수사를 넘어서 그 시절의 취약했던 사회 경제적 기반을 웅변하는 말로 모자람이 없었다.

그러나 콩나물이 가장 각광받던(?) 분야는 교육계였다. 과밀학급을 콩나물시루에 비유한 ‘콩나물교실’이라는 말은 처음엔 신문만평 등에만 간헐적으로 등장하다가 어느 결에 점잖은 학자들의 논문에서도 아예 따옴표를 벗어던진 채 주어나 목적어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나 역시 60년대 초에 초등(국민)학교에 들어갔는데, 내가 입학하던 해에 함께 1학년으로 들어간 학생이 무려 84명이었다. 조그만 섬마을 학교(완도군 봉선초등학교)에 웬 신입생이 그리 많았느냐고? 웃지 못 할 이유가 있었다. 교사(校舍)를 마련하지 못해서, 직전 해에는 신입생을 받지 못 한 것이었다. 교실이 없다고 취학할 아동들에게 국가에서 “한 해 꿇어!” 라고 했으니…아마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사례가 아닌가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84명 중에서 6학년을 온전히 마치고 졸업장을 받은 학생이 48명이었다는 사실이다. “국문 깨쳐서 이름자 쓸 줄 알았으니 이제 됐다”, 그래서 도중에 줄줄이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여학생들이었다.

※위 콩나물 관련 기사 중 일부 표현은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발간한「한국교육의 싱크탱크 백년대계를 디자인하다(이상락 집필)」에서 인용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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