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끝나지 않은 일

  • 입력 2017.12.03 13:22
  • 수정 2017.12.03 13:24
  • 기자명 부석희(제주시 구좌읍)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석희(제주시 구좌읍)

겨울이 딱 하루 만에 오는 것처럼 갑자기 추워지더니 벌써 한 해 끝자락이 오고 말았다. 올해도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로 해가 가는 것을 느끼기는커녕 못난 자신을 탓하며 보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몸집이 큰 어느 형님은 겨우 5km를 뛰고 나서 자랑 자랑 하더니 10km를 뛰고 나선 “마라톤은 나를 추월하는 일”이라며 혼자 많이도 좋아한다. “그게 뛴 겁니까, 걸은 거지”라고 우기고 싶은데 그 몸에 달리기는 너무 힘들다는 걸 알기에 잘 했다고 손뼉이나 쳐줄 수밖에 없다.

제주도청 맞은편 인도엔 아직도 천막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먹지 않고 마흔 두 날을 견뎌낼 수 있었는지, 김경배라는 오십 청년은 죽지 않고 병원에 실려 갔다. 자기 마을에 신공항이, 아니 제주에 제2공항이 들어서는 걸 막기 위한 목숨 건 단식을 질기게 해낸 것이다. 환자복을 벗고 난 후엔 천막으로 돌아와 다시 단식을 하겠다고 한다.

여든이 넘은 어머니는 아들이 일이 많아 돈 버느라 집에 오지 않은 건 줄 알았다. 아들이 굶고 있는 줄 알았다면 밥 한 술도 목구멍에 넘기지 않았을 거라고, 당신만 밥을 먹고 있었다고 억울해 하셨다. 김경배라는 사람이 다시 굶겠다고 하면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실 판이다. “너 대신 내가 하마.” 굶기를 자처한 사람들이 천막에 모여들어 추운 한 해를 지켜가고 있다.

“일은 뭐 하러 하는 거지”라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그리 말하겠다. “끝내려고 하는 거지”라고. 돈이 되든 아니든 즐겁든 골치가 아프든 벌여 놓은 게 있다면 끝은 봐야지 않겠나. 귤이 한창인 요즘 날씨도 좋아서 귤 따는 일이 쉬워졌다. 주인은 밭 하나씩 귤이 없어져서 흐뭇하단다.

혼자 짊어지고 가거나, 따라만 가거나, 그냥 앉아있거나 자기 마음으로만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오지랖 좀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리하지 못한다. 같이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빛들을 보낸다. 힘 좀 보태주라고….

세상 일이 각시랑 지내는 것보다 뭐 어렵냐 자신하던 나도 도대체가 풀리지 않는 일들로 한 해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다. 2017년 모이고 모여들었던 촛불은 이 나라에 희망들을 찾으라 했다.

형님 이젠 20km 달려봅서, 경배야 힘내서 신공항 막아줘, 눈 오기 전에 귤 빨리 땁서. 남은 한 달, 내 일이든 밖의 일이든 세상 일이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누구에게 힘내라 하기 전에 내가 나에게 힘내라고 “나를 앞서 가보자구” 말해본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