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개념 전환 없으면 유기농도 없다(1)

  • 입력 2017.12.03 12:55
  • 수정 2017.12.03 13:17
  • 기자명 강선일·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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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인증제도의 개선, 더 나아가 친환경농업 정책 전반의 방향 전환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친환경농업계 관계자들도 이대로는 한국 친환경농업 자체가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다시금 모여 목소리를 냈다.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농업의 미래, 친환경농업 혁신의 길을 찾아서’ 토론회는 단순히 친환경인증제도 개선방안 논의단계를 넘어, 친환경농업 자체에 대한 철학의 재고에 대한 문제인식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농민단체, 학계, 생협, 인증기관 등 다양한 분야의 관계자들 모두 이 한 가지 사실은 확실히 공유하고 있었다. ‘유기농’에 대한 개념과 철학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유기농의 미래는 없다는 것을.

정리 강선일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

 

 

[발제1] 조완형 한살림연합 전무이사

“생산자·소비자 함께하는 자주인증시스템 도입해야”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살충제 계란 파동’ 당시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그럼에도 농식품부는 안전성 강화란 명분하에 잔류농약 검사 횟수를 늘리고 농관원의 교차 검사를 두 배 늘리는 등 사후 관리 강화 위주 방침을 내놓을 뿐이다.

근본대책을 위해선 지난 20여년간 안전과 품질에만 치중했던 인증제 및 농자재 중심의 친환경농업 실천과 정책을 벗어나, ‘저투입·내부순환·자연공생’을 열쇠말로 하는 진정한 친환경농업 실천에 나서야 한다. 즉 외부농자재 투입을 통한 인공적 생산력을 추구하는 관행화학농업의 관점을 버려야 하고, 농지 내의 생태계를 풍부하게 만들며, 지역자원을 순환·이용하는 농업으로 전환해야 한단 의미이다.

이와 함께 생산자와 소비자가 한 덩어리로 결합해야 한다. 즉 ‘생산하는 소비자’와 ‘소비하는 생산자’들이 일상적으로 연대하며, 같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정책·제도 전환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특히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참가하는 자주인증시스템(PGS)의 활성화가 절실하다.

여기서 자주인증시스템이란 지역에 초점을 맞춘 참가형 친환경농산물 품질보증 체계를 뜻한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신뢰관계와 네트워크 기반 위에서, 소비자의 적극적 참가활동을 통해 생산자와 생산과정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친환경농산물의 용어 및 인증마크에 대한 사용규제를 개선해야 한다. 현재 정부가 ‘친환경농산물’이란 용어와 인증마크의 사용·표시를 모두 통제하고 있다. 나는 친환경농산물 ‘인증’을 ‘면허’ 개념으로 이해하는 현 상황을 우려한다. 이런 경향은 친환경농업의 자생적 발전에도 나쁜 영향을 끼친다. 농민은 인증을 받지 않아도 친환경농업을 실천할 권리가 있다. 친환경농산물 인증은 어디까지나 인증기관이 객관적으로 확인했단 표시로 인식돼야 한다.

 

[발제2] 유병덕 이시도르 지속가능연구소장

“유기농 농약검사 폐지하자”

우선 유기농의 정의와 목적을 재설정해야 한다. 국제기준인 코덱스 가이드라인(CAC GL 32)은 유기농을 ‘생물다양성, 생물학적 순환, 토양의 생물학적 활성화를 통해 농업생태계의 건강을 증진·강화시키는 총체적 관리체계’라 정의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친환경농어업법은 유기농과 친환경농업을 농업에 투입되는 자재 중심으로 판단하며, 그로 인한 잔류농약의 검출 여부에 초점을 맞춘다. 유기농에 대한 정의를 ‘건강한 농업생태계를 만드는 총체적 생산관리 과정’으로 다시 맞춰야 한다.

친환경농산물 인증방법론도 과정 중심으로 전환하자. 현재의 실험실 결과중심주의, 위반행위접근 위주의 인증제는 유기농에 대한 왜곡과 인증기관의 관료화, 그리고 농민의 소외를 야기했다. 선진국처럼 농사 과정을 살피고, 부적합사항에 대한 개선노력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친환경농업의 위기는 심화된다.

또한 유기농에 대해 실험실에서 분석하는 모든 기준은 철폐해야 한다. 잔류농약에 대한 분석자료는 친환경농산물의 안전성 관리 전략 수립을 위한 정보로서 거시적 정책 수립에만 활용하고, 유기농 인증서를 발행하는 데엔 쓰지 말아야 한다. 이게 국제적 규범이다. 즉 유기농 인증에 있어 농약검사를 폐지하잔 의미이다.

친환경인증제 인정기구(우리나라의 경우 농관원)의 전문성도 강화해야 한다. 선진국의 인정기구들처럼 인정 업무의 절차와 감사 방법론이 전문적으로 설계돼야 한다.

우리나라 농관원은 인증 업무를 민간으로 이양하며 인증 실무를 해 볼 기회가 없어졌고, 담당자가 인사 교체되면 인증 전문성을 쌓기 힘들다. 그래서 농관원이 인증기관을 감사할 때도 분석성적서와 행정실무 자료에 집중할 뿐, 인증기관이 농민의 유기적 생산과정을 충실히 심사했는지를 평가하는 방법론과 전문성 개발 기회는 없는 상황이다.

 

[발제3] 박종서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사무총장

“생태환경 개선 중심으로 인증제 운용해야”

첫째로 결과와 분석 중심인 현행 인증체계를 과정 중시(농가의 농사 운영방식과 생산자의 자질, 생물다양성, 토양비옥도 개선)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유기농을 시작할 때의 토양 검사 결과를 기준으로, 유기농업 진행 후 토양 및 수질 상태 개선도를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둘째, 비의도적 농약 혼입으로 인한 인증 취소 농가에 대한 구제 방안이 절실하다. 최근 비산, 농자재 오염 등 비의도적 농약 혼입으로 인증 취소 처분을 당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 복잡한 이의신청 제도의 개선과 함께, 친환경농가가 분석 결과에 이의 제기 시 즉시 보관된 시료로 2차 검사를 실시해야 한다. 비의도적 인증 위반 사례에 대해 친환경농업을 지속 실천 가능하도록 경감 기준 등의 구제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셋째, 영농일지와 생산계획서 등 서류의 간소화를 고려해야 한다. 최근 농민 고령화와 서류 복잡성으로 인해 서류 작성에 어려움을 표하는 농가가 많다. 문서 작성의 간소화를 추구하며, 대신 인증심사원이 농가의 각종 증빙자료와 퇴비생산 여부, 친환경필지의 잡초 생육 여부 등을 확인하며 현장심사 결과를 상중하로 분류해, 부적합 행위 위험성이 높은 농가에 대해 관리의 ‘선택과 집중’을 할 필요가 있다.

넷째, 친환경농산물 생산관리자 제도 보완으로 사전 위험 요소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농업학교 출신, 청년 귀농자를 대상으로 일정기간 교육 후 생산관리자로 지정해, 인건비를 지원하며 사전 위험요소를 관리하고 농민들을 돕게 하는 게 필요하다.

다섯째, 인정기구인 농관원의 관리 능력 향상과 감독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별도의 전문성을 갖춘 관리감독부서를 갖춰, 전문성 있는 감사를 통해 인증기관의 잘못된 점이 고의인지, 실수인지, 또는 시스템 상의 치명적 결함인지 판단하고 개선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적발 즉시 처벌이 아닌, 적발된 부분에 대해 일정기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줘, 차츰 나아질 수 있도록 관리·감독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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