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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농업, 결과보다 과정을 보자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올해 8월 24일, 닭 8,526마리와 계란 2만1,538개가 폐기처분됐다. 경북 영천시 한 친환경 산란계농장의 닭과 유정란에서 살충제 성분인 DDT가 발견됐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농장은 문을 닫았다. 닭이 마음껏 날개 치던 횟대도, 모이와 물을 먹던 장치도 여전히 그대로건만 농장주는 다른 곳에서 재기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신 텅 빈 농장을 관리하던 농장주의 누나는 “답답할 뿐”이라며 말을 아꼈다. 한승호 기자

두 명의 농민이 있다. 평생을 친환경농업 발전에 바치겠단 생각으로 살았고, 주변의 어느 누구도 그들이 친환경농업을 위해 노력했음을 의심치 않았다.

이몽희씨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산란계 농가로서 유정란을 생산해 왔다. 한국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동물복지형 농장을 운영했다. 동물복지형 농장의 기준이 ‘1평당 29.7마리 사육’인데, 이씨는 그보다 훨씬 적은 1평당 4마리 닭을 평사에서 사육했다. 자연의 이치대로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고 모래목욕도 할 수 있는 방사장을 마련했고, 계사에도 햇빛과 바람이 잘 들게끔 설계했다.

그러나 그런 이씨에게 국가는 친환경 인증 취소 처분을 내렸다. 농장의 닭이 낳은 유정란에서 살충제 성분인 DDT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얼마 후 농장의 닭에서도 DDT가 발견됐다는 내용으로 언론은 떠들썩했다. 이씨는 농장을 폐원했다.

또 다른 농민이 있다. 이몽희씨와 마찬가지로 경북 한 지역에서 거주하는 70대의 이 농민은, 20년이 넘는 세월을 유기농업에 온전히 바쳤다. 친환경농업에 대한 자부심으로 살았던 그에게도 날벼락이 닥쳤다. 3,000여평 농지 일부에 시료 채취용으로 심었던 얼갈이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는 통보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원장 조재호, 농관원)으로부터 받았다.

수십 년 간 유기농업을 통해 지역민의 소득을 높이고, 마을에서 친환경농업을 확대하고자 노력해 온 그 농민을 농관원에선 범법자 취급하다시피 했다. 그는 억울해서 농관원에 재검사를 요청했고, 영농일지와 각종 서류, 농자재구입 증명서를 제출해 청문회를 했지만, 끝내 인증 취소를 막을 수 없었다. 어쨌든 살충제 성분이 기준치 이상이라는 게 농관원의 입장이었다. 그 농민은 “수십 년간 우리 농업을 지키고, 소비자에게 건강한 친환경농산물을 공급한다는 사명감으로 평생을 살았는데, 이렇게 죄인 취급 받는 상황이 되니 내가 왜 친환경농업을 했는지 후회된다”고 말했다.

토양에 수십 년 간 잠들었다 튀어나온 DDT 때문이든, 바람 때문에 농약이 비산돼서든, 항공방제 때문이든 상관없다. 잔류농약 0.01ppm만으로 수십 년의 친환경농사를 평가해 버리는 게 한국의 친환경농업 제도다. 그 제도 하에서 농사의 ‘과정’에 대한 평가는 실종되고, 오직 잔류농약 검출량이란 ‘결과’만 남을 뿐이다.

유기농 선진국이라는 유럽 국가들도 친환경 인증기관을 갖고 있으며 그 인증기관을 관리·감독하는, 농관원과 비슷한 인정기관이 있다. 그러나 이 기관들은 극소량의 잔류농약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대신 철저한 프로세스 관리체계를 통해, 유기농사 과정에서 생기는 각종 문제들을 철두철미하게 관리하며, 문제에 대해 적발하고 처벌하기보다 그 문제의 해결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꾸려간다.

우리는 어떤가. 정부는 정부대로 결과중심주의, 사후징벌주의에 따라 정책을 꾸린다. 언론은 그러한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그 정책의 피해자인 농민들까지 범죄자 취급한다. 그 언론을 접하는 소비자들은 친환경농업을 불신하게 된다. 이 모든 악순환은 친환경농업의 목적에 대한 우리의 철학이 왜곡됐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친환경농업의 근본 목적이 ‘생태환경과 농업의 지속가능성 보전’이란 사실을 되새길 때가 됐다. 그러기 위해선 ‘잔류농약’이란 결과만 바라보는 친환경농업 정책도 농업의 ‘과정’을 살피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 더는 위의 두 농민처럼 열심히 농사지은 사람들이 ‘결과’만으로 평가절하당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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