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두 명의 농민이 있다. 평생을 친환경농업 발전에 바치겠단 생각으로 살았고, 주변의 어느 누구도 그들이 친환경농업을 위해 노력했음을 의심치 않았다.
이몽희씨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산란계 농가로서 유정란을 생산해 왔다. 한국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동물복지형 농장을 운영했다. 동물복지형 농장의 기준이 ‘1평당 29.7마리 사육’인데, 이씨는 그보다 훨씬 적은 1평당 4마리 닭을 평사에서 사육했다. 자연의 이치대로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고 모래목욕도 할 수 있는 방사장을 마련했고, 계사에도 햇빛과 바람이 잘 들게끔 설계했다.
그러나 그런 이씨에게 국가는 친환경 인증 취소 처분을 내렸다. 농장의 닭이 낳은 유정란에서 살충제 성분인 DDT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얼마 후 농장의 닭에서도 DDT가 발견됐다는 내용으로 언론은 떠들썩했다. 이씨는 농장을 폐원했다.
또 다른 농민이 있다. 이몽희씨와 마찬가지로 경북 한 지역에서 거주하는 70대의 이 농민은, 20년이 넘는 세월을 유기농업에 온전히 바쳤다. 친환경농업에 대한 자부심으로 살았던 그에게도 날벼락이 닥쳤다. 3,000여평 농지 일부에 시료 채취용으로 심었던 얼갈이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는 통보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원장 조재호, 농관원)으로부터 받았다.
수십 년 간 유기농업을 통해 지역민의 소득을 높이고, 마을에서 친환경농업을 확대하고자 노력해 온 그 농민을 농관원에선 범법자 취급하다시피 했다. 그는 억울해서 농관원에 재검사를 요청했고, 영농일지와 각종 서류, 농자재구입 증명서를 제출해 청문회를 했지만, 끝내 인증 취소를 막을 수 없었다. 어쨌든 살충제 성분이 기준치 이상이라는 게 농관원의 입장이었다. 그 농민은 “수십 년간 우리 농업을 지키고, 소비자에게 건강한 친환경농산물을 공급한다는 사명감으로 평생을 살았는데, 이렇게 죄인 취급 받는 상황이 되니 내가 왜 친환경농업을 했는지 후회된다”고 말했다.
토양에 수십 년 간 잠들었다 튀어나온 DDT 때문이든, 바람 때문에 농약이 비산돼서든, 항공방제 때문이든 상관없다. 잔류농약 0.01ppm만으로 수십 년의 친환경농사를 평가해 버리는 게 한국의 친환경농업 제도다. 그 제도 하에서 농사의 ‘과정’에 대한 평가는 실종되고, 오직 잔류농약 검출량이란 ‘결과’만 남을 뿐이다.
유기농 선진국이라는 유럽 국가들도 친환경 인증기관을 갖고 있으며 그 인증기관을 관리·감독하는, 농관원과 비슷한 인정기관이 있다. 그러나 이 기관들은 극소량의 잔류농약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대신 철저한 프로세스 관리체계를 통해, 유기농사 과정에서 생기는 각종 문제들을 철두철미하게 관리하며, 문제에 대해 적발하고 처벌하기보다 그 문제의 해결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꾸려간다.
우리는 어떤가. 정부는 정부대로 결과중심주의, 사후징벌주의에 따라 정책을 꾸린다. 언론은 그러한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그 정책의 피해자인 농민들까지 범죄자 취급한다. 그 언론을 접하는 소비자들은 친환경농업을 불신하게 된다. 이 모든 악순환은 친환경농업의 목적에 대한 우리의 철학이 왜곡됐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친환경농업의 근본 목적이 ‘생태환경과 농업의 지속가능성 보전’이란 사실을 되새길 때가 됐다. 그러기 위해선 ‘잔류농약’이란 결과만 바라보는 친환경농업 정책도 농업의 ‘과정’을 살피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 더는 위의 두 농민처럼 열심히 농사지은 사람들이 ‘결과’만으로 평가절하당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