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농촌에 사는 것이 ‘죄’

축산악취에 고통 받는 농촌 … 지자체는 나 몰라라
도시선 국고 들여 보상금 주고 농장 폐쇄 조치
“농촌 보호 위한 강력한 오염 규제 필요”

  • 입력 2017.12.03 10:56
  • 수정 2017.12.10 20:25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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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달 24일 강원도 홍천군 만내골 주민대책위원회는 축사로 인한 하천 오염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굴삭기로 직접 바닥을 퍼냈다. ‘농장폐쇄·토양정화'가 쓰여진 패딩을 입은 할머니들이 작업을 지켜 보고 있다.

땅이 썩었는데도 ‘못 본 체’

이번이 벌써 세 번째였다. 지난달 24일 방문한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 만내골에서는 주민들이 또 ‘땅파기’를 하고 있었다. 30년 간 마을 내 돼지농장에서 내뿜는 악취를 참고 살다 지난해 말 농장의 분뇨 무단 투기를 알게 된 주민들은 그 이후 1년째 농장 폐쇄를 위한 외로운 싸움을 진행 중이다.

주민들은 지난 6월 잣껍데기로 덮여있던 농장 옆 부지를 파내 무단투기 사실을 밝혀냈었다(본지 758호 - 30년 돼지분뇨가 삼킨 그들의 땅). 또 한 차례 수십만원의 자비를 들여 굴삭기를 동원한 건 홍천강으로 연결되는 마을 하천의 오염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주민들은 이 또한 마땅히 홍천군이 나서서 확인해야하는 부분임에도 그러지 않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홍천군은 굴착을 위해 15일의 하천 사용 허가를 내 주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바닥을 파헤친 하천 역시 썩은 토양이 드러났다. 담당 공무원은 샘플 채취나 오염원의 경로 추적에 대한 입장 표명도 없이, 현장을 잠깐 둘러보곤 사라져버렸다. 만내골의 노인들은 수일째 홍천군청 로비 바닥에 앉아 군수의 답변을 기다렸지만 묵묵부답이었다.

 

피해주민 배제한 ‘밀실합의’

눈 뜨고 코 베여 절규하는 이들도 있다. 마을 주변 양돈단지와 그 옆에 붙은 지역축협의 비료공장에서 나오는 악취는 논산시 광석면 득윤리·중1리·중2리 3개 마을 주민들이 23년 간 겪어야했던 고초였다. ‘축산업자들도 함께 살아야할 이웃’이라는 생각으로 참고 살던 주민들은 되레 등에 칼이 꽂히고 말았다.

분뇨를 이용한 비료제조공장을 운영하는 논산계룡축협은 기존 공장을 확대 신축하는 계획을 세운다. 그간 참은 고통을 무시하는 처사에 화가 난 주민들은 대규모 항의 집회를 열었으나 축협은 뜻을 굽히지 않고 논산시의 중재 하에 주민들과 합의를 시작했다.

문제는 광석면 환경오염방지 투쟁위원회 대표로 나선 강모 전 위원장의 독단적인 결정에서 시작됐다. 2016년 2월, 강모씨는 주민들을 위한 발전기금 1억5,000만원을 받는 등의 조건으로 공장신축을 허락하는 가합의서에 서명을 했다. 전혀 상의되지 않은 이 합의에 대해 주민들은 반발했고, 분란 끝에 그를 내친 뒤 대책위원장을 새로 세웠다.

그런데 그해 7월, 주민들은 난데없이 참여한 적 없는 합의가 성사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축협과 양돈단지, 논산시가 피해 주민을 배제한 채 강모씨와 몇몇 이장들과 합의한 것이다. 전종수 대책위 부위원장과 함께 살펴본 그들의 합의서엔 3개 마을의 대표자가 제외돼 있었으며, 축협 측의 구체적인 이행 계획이 없었다. 주민은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독소 조항에다 면 전체를 대상으로 한 1억5,000만원의 턱 없이 부족한 발전기금 역시 그대로였다.

가합의 파기 이후 주민들이 새 위원장 추대 사실을 관계자에게 모두 알린 만큼, 이는 공장 신축 강행을 위한 ‘사기’라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수사에 나섰던 경찰 역시 K씨를 사칭 사기 혐의 등으로 검찰에 기소 의견 송치했지만 축협은 정당한 합의였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분뇨차량의 출입을 막는 고령의 주민 19명을 업무방해를 이유로 고발하기까지 했고, 논산시는 “공장 이전이나 주민 이주 보상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뒷짐만 지고 있다.

 

반면 도시에선

그러나 이런 악취가 도시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 관할 지자체의 태도는 180도 달라진다. 지난 2013년 1월 충남도청사가 홍성군 홍북읍과 예산군 삽교읍으로 이전하며 조성된 내포신도시. 그 반경 5km 내에는 조성 이전부터 448곳의 농가에서 약 35만 마리의 가축을 사육하고 있었다. 반경을 2km로 줄여도 25곳·12만 마리에 달하는 밀집지역이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인구가 늘자 축사 악취 문제는 내포신도시가 해결해야할 제1의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홍성군은 매우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섰다. 올해 초 홍성군은 부군수 주재로 ‘2017년 내포신도시 축산악취 저감사업 추진계획 보고회’에서 10대 중점시책을 밝히며 내포신도시 정주여건 개선을 위한 의지를 드러냈다.

무인자동측정기·포집기로 농가에 악취발생을 경고하고, 악취 저감 첨가제를 지원하는 등 여러모로 애썼지만, 결국 근본적인 해결책은 축사의 폐쇄·이전에 있었다. 충남도의회는 지난 4월 ‘충남도청 이전을 위한 도시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시행 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을 가결했다.

주변 축사의 폐업보상에 관한 내용이 담긴 이 조례에 따라 이달 하순 처음으로 축사 4곳의 폐쇄에 대한 보상절차가 시작됐다. 예상 보상금액만 31억원 규모다. 반경 2km 내 축사를 대상으로 할 경우 약 350억원이라는 막대한 보상금이 예상되는 탓에 진행은 더딜 것으로 보이지만, 앞선 사례들과 비교했을 때 국고의 힘으로 너무나 쉽게, 그것도 먼저 들어와 운영 중이던 축사들을 밀어냈다는 점에서 농민과 도시민 각각이 가진 계급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농민들은 도시에 비해 농촌의 인구가 적고 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고통을 공감 받지 못하고 정주여건을 침탈당하는 상황을 막을 새로운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논산시 광석면 대책위 김재석 사무장은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민원이 발생하는 지역의 퇴비공장 신축을 허가 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보시다시피 이렇게 해결된 것처럼 꾸미면 우리들은 당할 수밖에 없다”며 “너무나 느슨할뿐더러 법을 어겨도 과태료 부과에 그치고 마는 빈약한 현 규제는 힘 없는 농민들에게는 무용지물”이라고 지적했다. 홍천 만내골의 이제국 주민대책위원장은 “홍천군은 농촌이라는 이유로 지금껏 방치하다시피 한 군내 축산업 환경 문제를 개선할 이번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있는 것”이라며 “지자체가 잘못을 인정하고 의지의 행정을 펼칠 수 있도록 모든 방법을 쓸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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