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소농들과 소비자는 CSA로 뭉친다

[ 기획 ] 상생·협력으로 지속가능한 농업현장을 가다 - 호주·뉴질랜드 ②
조나이 유기양돈농장 “환경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다”
호주 유기농 1호, 캡틴스 크릭 와인농장
'생명역동농업' 안젤리카농장

  • 입력 2017.12.02 11:04
  • 수정 2017.12.06 13:05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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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대산농촌재단(이사장 오교철) 해외농업연수 올해의 주제는 ‘상생과 협력’이다. 지난 14일부터 23일까지 9박 10일간 호주와 뉴질랜드의 농업현장 연수를 동행취재하면서 농업강국이라는 명성을 낳은 사회 곳곳의 농업 중시 현장, 지속가능한 농업을 실천하는 농민들의 노력을 지면에 담는다. 

 

대산농촌재단 연수단은 조나이팜을 둘러보기 전 태미 대표로부터 유기양돈농장을 하게 된 계기, 현황, CSA 등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백남기와 백민주화를 아는 호주 농민, 농업의 지속가능성 실천

호주 멜버른 시내 중심에서 북서쪽 외곽에 위치한 데일스포드 지역에 있는 ‘조나이 유기양돈농장’은 돼지 100마리, 소 20마리를 28ha(9만평)에서 자연방목 하는 곳이다. 6년째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태미(Tammi Jonas, 47) 대표는 ‘호주 식량주권연합(Australian Food Sovereignty Alliance, AFSA)’ 회장으로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농사짓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태미 대표는 특히 지난 7월 스페인 빌바오에서 열린 비아캄페시나(세계적 농민단체) 총회에 참석했으며, 당시 ‘백남기 농민의 딸 백민주화씨’가 발언한 것을 기억한다고 말해 뜻밖의 반가움을 선사했다.

태미 대표가 이 농장을 시작하게 된 배경도 흥미로운데, 멜버른 근처 도심에 살던 태미 부부는 시골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서 농장을 고민했다. 특히 미국 전역을 다닌 후 동물복지농장 구상을 구체화 했고, 양돈이 가장 좋지 않은 환경에서 사육되고 있기 때문에 역으로 양돈을 선택했다.

호주 멜버른시 외곽 데일스포드 지역에 있는 ‘조나이 유기양돈농장’은 28ha(9만평)에서 돼지를 자연방목 하면서 CSA(공동체지원농업) 방식으로 회원제 소비자를 두고 있다.

탁 트인 그림 같은 농장에는 까만돼지가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겨울철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 한 거의 1년 내내 초지를 뛰논다. 구역별로 어미돼지 한 마리와 새끼돼지들을 놓아 사육하는데, 이탈리안 라이그라스를 뜯어먹을 뿐 사료를 공급하는 일은 없다. 대신 맥주를 발효하고 남은 찌꺼기를 준다거나 가끔 날달걀로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해 주는 정도다.

태미 대표가 동물복지와 환경보전을 고민하는 것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CSA(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즉 ‘공동체 지원농업’이다. 농산물 값을 미리 내고 수확 후에 공급받는 방식인 CSA는 농민들에겐 안정적인 소득을, 소비자에겐 안전한 먹을거리를 공급하는 ‘상생’ 프로젝트다. 우리나라도 최근 CSA가 확대되고 있는데 소비자들이 어떤 먹거리가 공급되는지에 무게를 둔다면, 호주의 CSA는 소비자가 농장 공동경영주라는 인식이 짙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조나이 농장 CSA 회원은 80명이다. 40가구씩 나눠 한 달에 두 번 총 12마리 분량의 고기를 공급한다. 인근 도축장에서 도축된 신선육은 태미 대표가 직접 손질을 해 가격부담을 낮추고, 가공업 면허도 있어 햄 등 숙성제품도 제공한다. 새로운 CSA 회원으로 가입하기 위해선 20년을 기다려야 할 만큼 ‘신뢰’로 다져진 소비자층이 매우 두텁다.

태미 대표는 “소비자를 직접 만나고 싶었고, 베이컨 등도 오래 숙성시켜 방부제 없이 유통하고 싶었다. 육가공에 필요한 농산물, 예를 들면 와인이라든가 채소 등은 이웃 농가에서 구입한다. 지역농민들과의 협업구조도 자연스레 조성된다”고 설명했다.

CSA 회원들에게 농장의 경영실태도 남김없이 공개하고, 가격도 협의한다는 점은 특히 인상 깊다. 태미 대표는 “CSA 회원들이 비록 도시에 살지만 내 농장이라는 소속감과 책임감이 있다. 평상시에는 이메일을 통해 사육 상태, 품종 등 내가 먹는 고기에 대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공유한다. 땅을 살리는 건강한 농업과 농업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소비자그룹이 자연스레 탄생하는 배경이다”고 강조했다.

6년째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태미 대표와 남편 스튜어트씨. ‘호주 식량주권연합' 회장인 태미 대표는 지난 7월 스페인 빌바오에서 열린 비아캄페시나(세계적 농민단체) 총회에 참석했으며, 당시 ‘백남기 농민의 딸 백민주화씨’가 발언한 것을 기억한다고 말해 뜻밖의 반가움을 선사했다.


유기농 체험, 유기농 식단

조나이팜 이웃 농가인 캡틴스 크릭 유기와인농장과 안젤리카 유기농장 역시 CSA에 적극 나서고 있다. 캡틴스 크릭 유기와인 농장은 호주의 대표적 유기농 복합영농모델로 지난 1985년 호주 지속가능농업협회(National Association for Sustainable Agriculture Australia)에서 최초로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100년 이상 된 농장은 4대째 이어지고 있으며 80ha 규모로 와인용 포도, 다양한 계절채소 농사를 비롯해 육우와 젖소 등을 사육한다.

농장주인 더그 메이(Doug May, 44)씨는 “과거엔 도매시장에 내다가 지금은 직거래로 농산물을 거래한다. 농민직거래 시장에 5%, 나머지는 CSA 판매가 중심이다”고 말했다. 이곳은 유기농장 체험과 와이너리 방문객 수가 증가하고 있고 유명세가 확산돼 주말에는 식당도 연다. 더그씨는 “주중에는 밭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식당에서 일한다”고 농담 섞인 푸념을 하며 “최소 30명에서 최대 100명까지 식사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농장에서 생산되는 신선한 농산물과 이웃 농가에서 생산한 유기농제품으로 간단한 점심식사를 제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기농의 최고봉 ‘생명역동농업’ 전환

안젤리카 유기농장 팀 와트(Tim Wyatt, 47) 대표는 지난 2006년 유기농업을 시작한 이후 2년째 ‘생명역동농업’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농장규모는 3ha로 이모작을 한다. 흙 묻은 작업복 차림 그대로 연수단을 맞은 그는 생명역동농업의 가치에 대해 설명했다.

“농장이 너무 작아서” 농장견학 요청에 선뜻 응하지 못했던 안젤리카 유기농장, 팀 와트(Tim Wyatt, 47) 대표는 지난 2006년 유기농업을 시작한 이후 2년째 ‘생명역동농업’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농장규모는 3ha로 이모작을 한다. 흙 묻은 작업복 차림으로 연수단을 맞는 그는 흙가루가 날리는 손까지, 가장 ‘농민스런’ 모습이었다.

생명역동농업은 1924년경 오스트리아의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가 시작한 농법으로 우주와 지구의 관계, 달과 지구와의 관계 등을 깨우치고 그 내용을 농사에 적용한다. 팀에게 유기농 보다 한 단계 높은 ‘생명역동농업’을 시작한 것에 대해 물으니 “자연스러운 선순환 농업과 땅에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실제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면서 “또 유기농 제재 구입에만 1만5,000불(호주달러)이 들던 농사가 올해 185불로 극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생산되는 농산물은 역시 CSA 방식으로 판매 중이다. 20여명으로 시작했지만 내년에는 70여 회원이 예상되고, 목표인 300여명 확대도 자신했다. 앞으로 4ha 땅을 더 임대할 예정이라고 팀이 포부를 밝히는 가운데, 한국 연수단의 농민들은 안젤리카 농장의 비옥한 흙을 만지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대규모 수출농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호주에서 소농들은 농업을 생각하는 소비자들과 CSA로 더 견고하게 뭉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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