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40kg 포대 벼의 운명

  • 입력 2017.12.01 16:08
  • 수정 2017.12.01 16:10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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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2005년도부터 쌀에 대한 정부 수매제를 폐지하는 대신 공공비축미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쌀시장 개방에 대비해 국내 쌀 농가들의 경쟁력 제고를 위함이라고 거창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쌀값폭락의 주범이 되고 말았습니다. 타 작물로 생산을 전환해 농산물의 전반적 가격이 하락하는 등 농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구점숙(경남 남해)

정부의 부실한 양곡정책이 쌀값을 폭락시키자 시장격리미곡이라는 이름으로 또 별도의 정책을 수립했습니다. 공공비축미이든 시장격리미곡이든 농민들은 여전히 정부수매로 인식하며 시중보다 조금 비싸다는 이유로 어쨌거나 꼭 출하를 해냈습니다. 심지어는 도지로 받은 나락을, 답주가 공공비축미로 내려는 농가도 있어 뒷말을 듣고는 하지요.

올해 우리 마을은 처음으로 시장격리미곡 출하물량을 못 채웠습니다. 약정물량을 채우지 못 하면 ‘못 채운 물량만큼’ 내년 배정물량이 없어진다는 규정이 있지만, 40kg 포대 벼를 들고 나르기가 너무 힘들어 포기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무겁게 건조 포대 벼를 드는 대신 생산과 동시에 산물 벼를 차떼기로다가 출하를 하는 것이 대세가 됐으니 이미 창고는 비워져 있으니까요.

한 때 나락 한 가마니에 80kg 무게를 자랑하던 전설의 시대도 있었다 하지요? 그 무게를 지게로 지고 다닐 만큼 장사였던 농민들이 이제 40kg 무게도 감당이 안 된다합니다. 지게차로 톤백 나락을 출하하는 고장에서야 코웃음 칠 얘기지만 핵심은 ‘쇠락'에 관한 것이지요.

농기업의 농업 진출을 반대한다고 목 놓아 외쳤건만 이러다가 농기업의 진출을 대놓고 기다릴 판입니다. 더는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지고 있으니까요. 귀농인이 농업의 기반을 갖추기에는 녹록지가 않으니까요.

비싼 땅 값과 비싼 농기계 값이며 비싼 창고건조비용에 품목마다 과잉생산구조로 농산물 값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고, 무엇보다 기후변화로 농업전망이 불투명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금도 수확기 이후 두 달 가까이 가을가뭄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으니 모든 것이 예측불가입니다. 그렇다고 도시에서 생활하는 농민의 자녀들이 지금과 같은 농업환경에서 가업을 물려받으려 하는 이들은 축산업을 빼고는 극히 드문 상황이지요.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절박하게 고민해야할 시점입니다. 농산물시장을 개방하면 농업이 망하게 된다던 농민들의 경고성 예언들의 증거가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미 늦었지만 지금 손을 쓰지 않으면 회복불능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농업은 생명체처럼 하루아침에 목숨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무너지는 것이고 이제 그 막바지에 서 있는 듯합니다. 아이들 목소리가 골목길에서 사라졌고 젊은 여성들의 꿈이 사라졌고 드디어 장정들도 사라지는 황량한 농촌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시장격리미곡을 출하하지 못 하는 것을 개별 농민들의 문제로 본다면 큰 오산입니다. 이것은 농업환경의 엄청난 변화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몸보다 삶을 귀하게 여기는 농민들이 더는 몸으로 농업을 지탱하는데 한계에 부딪쳤다는 것이고 더 빠른 속도로 와해될 것입니다.

그 뒤에는 생명의 윤리는 뒷전이고 오로지 이윤추구에만 눈이 먼 자본들이 치고 올라올 것입니다. 거기에서 여성농민의 권리며 농업의 지속가능성이 어찌 빛을 발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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